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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이 Sep 22. 2022

싱어송라이터, 음악인

취미일기, 다섯 번째 취미 ~ 악기 연주 ~

정말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네이버 검색창에 내 이름을 치면 내가 제일 먼저 나온다. 예전에는 독립운동가, 사업가 등이 나왔는데 검색 결과 페이지를 개편해서인지 아무튼 지금은 내가 가장 상위에 노출이 된다. 몇 년 전에 낸 디지털 앨범 덕분이다. 그래서 인물 분류는 음악인으로 되어 있다.


한참 방황하고 방랑하던 20대 중반, 알고 지내던 사람이 좋은 중고 기타가 들어왔다며 싸게 해 줄 테니 사지 않겠냐고 물었다. 예술가를 동경해서 인디밴드를 쫓아다니던 시절이었기에 덜컥 사겠다고 했다. 현금 10만 원. 그렇게 내게 온 '미도리'. 무슨 좋은 브랜드 기타라고 했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가깝게 지내던 기타리스트 삼촌이 기타의 상태를 한 번 보곤 좋은 기타네,라고 평했었다. 기타 코드 짚는 법, 크로매틱 연습하는 법도 알려주었는데 도저히 C 코드를 잡을 수가 없어 금방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기타는 곧 처분했다. 마지막 날에는 조율을 하다가 줄까지 끊어 먹었다. 쇠줄이 스치고 간 자리에 방울방울 피가 솟았다.


첫 우쿨렐레는 선물 받았다. 좋아하던 인디밴드의 매니저를 자처하며 어울려 다니던 때였는데 모두 또래들이라 참 즐겁게 지냈었다. 그들은 공연 행사비를 모아 나에게 우쿨렐레를 사주었다. 기타는 쇠줄이지만 우쿨렐레는 플라스틱 줄이라 손이 훨씬 편할 거라면서, 기타보다 코드도 훨씬 쉽다면서. 그 마음이 고맙고 또 애틋해서 열심히 연습했다. 연주하기 쉽고 소리도 귀여워서 기분이 좋았다. 우쿨렐레를 치며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자 공연할 자리도 생겼다. 공연이라고 해봐야 작은 규모의 공간에서 지인들을 불러 모아 놓고 하는 재롱잔치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매번 진지했다. 그렇게 공연 레퍼토리가 생기니 부르기 편한 내 노래를 만들고 싶어졌다.


가장 쉬운 코드에 흥얼거림을 더하고 거기에 가사까지 붙였더니 제법 노래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당시에 일하던 곳이 공연 기획사라 녹음실이 있었는데, 회사 대표 -기타리스트 삼촌- 가 노래를 듣더니 선뜻 녹음을 해주겠다고 했다. 프로의 애절한 기타 반주에 컴퓨터로 입힌 몇 가지 악기 소리가 들어가니 만듦새가 뛰어났다. 이 노래는 이렇게 소장만 할게 아니라 발매를 해야겠다 싶었다. 찾아보니 그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대행사가 있었다. 심지어 공짜다. 음원 수익의 일정 비율을 대행사가 가져가고, 나머지는 내가 갖는 방식이다. 그림 그리는 언니에게 부탁해 앨범 표지도 만들고, 프로필에 들어갈 사진도 셀프로 촬영하고, 앨범 소개까지 작성해서 보내자 음원 등록은 곧 이루어졌다. 나는 한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싱어송라이터'로 불렸다. 그 후로 노래를 또 만들거나 하진 않았지만 우쿨렐레는 꾸준히 연주했다. 실력은 늘지 않았지만 즐길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욕심이 나서 그 뒤로 더 좋은 우쿨렐레 두 대를 더 샀다. 생각해보니 첫 우쿨렐레엔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다. 합판이 아닌 통나무로 만든, 멋진 자개 장식이 붙은 두 번째 우쿨렐레는 '링고'라고 이름 붙였다. 가수 시이나 링고의 링고. 고양이의 모양을 한 세 번째 우쿨렐레는 '나나'. 순정만화 나나의 주인공 이름이다. 지금은 다 처분하고 링고만 남아있다.


최근에는 베이스를 배우고 있다. 밴드 하는 사람들 사이에 '금 드럼', '은 베이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귀하고 구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나는 온라인 게임을 할 때에도 가장 인기 없는 직업을 택하는 편이다. 희소성 그 자체가 매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베이스가 배우고 싶었다. 드럼은 자기 악기를 들고 다니지 못한다는 점에서 매력이 반감됐고, 베이스라면 해볼 만할 것 같았다. 뭐 거창하게 버킷리스트까진 아니더라도 그냥 막연하게 베이스 한 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유튜브 추천 영상 목록에 등장한 '베이스 그녀'(https://youtu.be/O1 LlFOmtiac).

너무너무 좋았다. 하루에 백번씩 들었다. 이 노래를 연주하고 싶어서 우쿨렐레로 시도해봤지만 맛이 안 났다. 결국 베이스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직장이 시내에 있어 직장 근처에서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베이스 학원도 있었다. 그것도 악기 없이 다녀도 되는 곳이다. 당장 한 달 레슨을 등록했다. 처음으로 베이스를 잡아본 소감은, '무겁다'였다. 생각보다 꽤 무거웠다. 우쿨렐레와는 비교도 안된다. 그냥 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점도 신기했다. 앰프에 연결하니 둥둥거리는 저음이 심장을 움켜쥔다. 기본적인 이론과 악기의 원리를 배우고, 운지법을 익히고, 지금은 '슬기로운 의사생활' 버전의 캐논 변주곡을 연습하는 중이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연주하기 어렵지 않았다. 매끄러워지려면 아직 멀었지만.


장은 나에게 1000일 선물로 베이스를 사주었다. 너무 소중해서 아직 이름도 붙이지 못했다.


좋아하는 일에 10분만 딱 몰입하면 스트레스 수치가 많이 줄어든다고 한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베이스를 연주하다 보면 어느새 겨드랑이에 땀이 난다. 악기를 연주하는 동안은 박자며 음정, 오른손과 왼손의 위치 등등 신경 써야 할게 너무 많아 잡생각이 모두 사라진다. 그러고 나면 기분 좋게 잠들 수 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와 합주할 날이 올까. 작지만 설레는 무대에 서는 날이 또 올까. 오늘도 망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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