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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이 Oct 06. 2022

현실을 도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

취미일기, 일곱 번째 취미 ~ 독서 ~

현실이 지치고 버거울수록 책에 파고든다. 한참 직장 생활이 힘들 때 구매한 책의 내역을 봤더니 두 달여간 100권이 넘었다. 대부분 소설이나 에세이다. 정말 마음이 힘들 때는 답을 찾고자 철학이나 심리학 책을 읽기도 한다.


책장은 이미 꽉 찬 지 오래라 2년 전쯤 전자책으로 갈아탔다. 종이책이 100% 전자책으로 출간되는 건 아니어서 전자책에 대해 조금 회의적이었지만 짝지가 일단 써보라며 덜컥 리더기를 선물해주어서 본격적으로 전자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래도 최근 전자책 시장은 꽤 활기가 있는 듯하다. 구독 경제의 활성화가 한몫한 듯 전자책 구독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전자책 출간도 늘었다. 특히 좋아하는 분야인 소설과 에세이는 대부분 전자책 출간이 종이책 출간과 동시에 이루어진다.


소설을 읽으면 등장인물에 동화되곤 한다. 묘사가 구체적일수록, 인물이 입체적일수록 몰입하게 된다. 때로는 '이 정도는 나도 쓰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 마구 들뜬다. 흥분으로 열이 오른 채 생각나는 대로 문장을 늘어놓아 보지만 그렇게 안일한 태도로 소설을 쓸 순 없다. 소설을 읽으면 작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한 발짝 떨어져서 현실을 바라보고 눈앞의 장면을 소설 속 문장으로 치환해본다.


에세이는 정말 좋아하지 않는 장르였는데, 어느 글을 읽고 뜻밖의 위로를 받아 크게 감동한 이후로 즐겨 읽게 되었다. 개인적인 체험을 솔직하게 써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게 에세이의 매력인 것 같다. 나도 그런 에세이를 쓰고 싶지만, 역시 잘 안된다. 정말 재치 있는 문장으로 나를 웃기는 에세이도 있다. 글로 사람을 웃긴다니 엄청난 재능이다. 울리는 것보다 웃기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 상상력이 풍부해진다는데 내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인 것 같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쓸 수 없고, 무언가를 상상하는 일이 내게는 버겁다. 현실주의자는 정말 재미없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지독한 현실주의자다. 그래서 르포 소설을 좋아한다. 반면 가장 힘든 장르는 판타지다.


어느 술자리에서 좋아하는 영화 딱 한 편을 꼽아보라는 질문에 한참 동안이나 답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좋아하는 영화가 너무 많아서 그 후로도 며칠이나 고민했는데 결국 답을 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렇게까지 마음을 흔드는 영화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하나 꼽는 건 가능하다. 바로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


나에게 소설을 읽는 재미를 알려준 건 중고등학생 때 한창 유행했던 일본 소설들이다. <장미도둑>, <냉정과 열정사이>, <도쿄타워>, <플라이 대디 플라이> 등등. 어쩐지 가볍게 읽을 수 있어 지금도 일본 소설을 좋아한다. '일본 소설'이라는 게 하나의 장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독서 루틴은 대개 이렇다. 먼저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 위주로 읽기 시작한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본다. 단편선에서 습작까지 남김없이 모조리 찾아 읽는다. 작가의 말에서 동료 작가나 영향을 받은 작가가 언급되면 그 사람의 작품까지 모두 읽어본다. 그렇게 더디지만 조금씩 독서의 영역이 확장되어 간다.


그러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믿고 보는 문학상 중 하나인 나오키상 수상작으로 <이유>의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가끔 두꺼운 책을 읽고 싶은 기분일 때가 있는데 <이유>의 두께가 딱 적당해 보였다. 너무 얇지도 않고, 양장본도 아니었다. 한 가족이 집 안에서 모두 살해되었는데, 알고 보니 죽은 네 사람이 모두 서로의 가족이 아니었다는 책 소개를 보고 무슨 이야기일지 궁금해졌다. 등장하는 인물이 너무 많아서 놀라웠고 그럼에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이 모두 너무 입체적이어서 단 한 명도 헷갈리지 않아 경이로웠다. 살해한 사람과 살해당한 사람, 가족이 아님에도 가족처럼 모여 살아야 했던 그들 각각의 사연이 촘촘하게 엮여 소설의 줄거리를 이끌어나간다. 거기에 더해 부동산 버블 붕괴와 같은 사회 문제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그 과정을 낱낱이 추적하여 묘사한다. '사회파 소설'이라고도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은 이처럼 다큐멘터리의 형식과 비슷하다. 이렇게 치밀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과,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싶은 마음이 교차한다.


책을 읽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접할 수 있어 좋다. 가리지 않고 이 책 저 책 탐독하다 보면 내가 가진 문제는 어느새 희미해진다. 마치 진통제처럼,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온다.


소설을 시시하다고는 생각지 않아. 내겐 그저 좀 미적지근할 뿐이야. 단 한 줄의 진실을 말하려고 100페이지의 분위기를 꾸미거든.


밑줄을 좍 긋고 무릎을 탁 쳤다. 바로 그거다. 그게 독서의 매력인 것이다. 이 책이, 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단 한 줄의 진실을 찾아나가는 과정. 그 문장을 찾아냈을 때의 그 감동.


하지만 진통제는 문제의 근원을 해결해주진 못한다. 아픔을 잠시 잊게 해 줄 뿐. 설령 그것이 절대적 진리라 하더라도 남이 쓴 문장으로 된 진리는 별 의미가 없다. 결국 나는 스스로 사유하고, 내 손으로 써 내려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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