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레스와 그로밋 - 화려한 외출
영화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부산국제영화제의 남포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포동은 당시 살던 곳에서 엄청 멀고도 낯선 동네였다. 차만 탔다 하면 잠이 들었던 어린 나는 비몽사몽한 상태로 비프(그때는 피프였던) 광장을 걸었다. 고구마 스틱이며 쥐포, 오징어 다리를 팔던 가판대가 늘어선 생경한 풍경이 뿌연 기억으로 남아있다. 극장에서 처음으로 본 영화는 바로 <월레스와 그로밋>. 달이 치즈라고 생각하는 주인공 월레스가 유능한 강아지 그로밋과 함께 우주선을 만들어 달까지 가는 귀여운 이야기다. 치즈도 크래커도 흔치 않았던 시절, 영화를 보며 그 맛을 궁금해했다.
월레스와 그로밋의 숨은 주인공은 바로 달에 사는 로봇이다. 동전을 넣으면 작동하는, 자판기처럼 생긴 그 로봇은 무심코 동전을 넣은 방문자 월레스와 그로밋에 의해 살아나게 된다. 내내 월레스와 그로밋을 귀찮게 하다가 지구로 돌아가는 그들을 따라가려고 안간힘을 쓰며 매달리는 모습이 꼭 유기된 강아지 같아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치즈 따위 다음에 와서 가져가면 되잖아. 저렇게 같이 가고 싶어하는데 좀 데려가주면 안되나. 매정하게 로봇을 떼어놓는 월레스와 그로밋이 야속했지만, 우주선에서 떨어진 잔해로 신나게 스키를 타며 노는 로봇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겨우 마음을 풀었다.
사실 나는 치즈를 잘 못 먹는다. 금방 체해버려서 컨디션이 안 좋을 땐 치즈 냄새조차 싫다. 하지만 달 치즈는 꼭 한번 먹어보고 싶다. 그 바삭한 크래커와 함께. 영원한 로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