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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영 변호사 Apr 21. 2024

착각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이 있다.

뭔가 진실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던 내용들을 바로잡게 된다.


아~ 그랬구나.


그렇게 하나하나 나의 착각들을 바로잡게 된다.



필자는 2010. 3.부터 2022. 2. 까지 국선전담변호사로 12년을 근무했다.

12년 동안 약 5천 건 이상의 형사사건을 변론하고, 1만 건 이상의 의견서를 작성하고 재판에 참여했으며,

약 150건의 사건에서 무죄를 받았다.


마치 재판하는 기계처럼 형사사건을 변론해 왔기 때문인지  

로스쿨에서 로스쿨생들에게 형사실무를 강의하고 있다.


필자는 로스쿨에서 강의를 할 때면 로스쿨 학생들에게서 필자를 볼 때가 있다.

(필자 역시 고시생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필자와 같은 공부를 하고 있는 로스쿨 학생들을 보면 그 모습에서 필자의 고시생 모습도 보이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강의를 마칠 때면,

강의하는 동안은 전하지 못했던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어 진다.

마지막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다음의 내용을 전달한다.



사실 공부하는 게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법조인이 되기 위해 공부하시는 거잖아요.
어떤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법조인에게는 일상적인 업무일지라도 그 당사자들은 일생일대의 한 번뿐인 중요한 순간을 지나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조인이 제대로 된 지식 없이 일을 한다면, 그 피해를 당사자가 받게 되고 당사자들은 법원, 검찰, 변호사를 신뢰할 수 없겠죠.

지금은 학생이지만 결국 실무자가 되셔야 하는 거잖아요.
힘드시겠지만, 이 과정을 잘 버텨내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건강입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습니다.
건강을 잘 챙기면서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필자는, 필자가 학생들에게 건넨 응원의 말 전체가 필자가 경험으로 알게 된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필자가 국선전담변호사 시절 피고인들로부터 받았던 편지들을 읽다가,

필자가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내용의 일부가 온전한 필자의 생각이 아니라,

피고인의 편지에 담겨있던 내용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그 편지를 받은 시기는 필자가 수원지방법원에서 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했던 2011년경이었던 것 같다.).


그 피고인은 합의부에서 재판받은 피고인이었는데, 필자의 변론을 받고는 필자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변호사님들이 저희를 만나면, 저희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듯이
저희들도 변호사님들을 만나면 그 변호사가 어떤 변호사인지 파악합니다.

대충 형식적으로 일하는 변호사인지,
진심으로 저희를 걱정해 주는 변호사인지 파악합니다.

변호사님들에게는 일상적인 업무일지라도
저희들에게는 일생일대의 한 번뿐인 중요한 일입니다.

변호사님의 변론을 받고는,
변호사님은 진심으로 변론해 주시는 변호사님이신 것 같아서 이렇게 감사의 편지를 드립니다.

 


그 편지를 읽고 필자는 깜짝 놀랐다.


"변호사들에게는 일상적인 업무일지라도 피고인들에게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일"이라는 그 내용이 피고인의 편지에 적혀 있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 편지를 읽기 전까지는 필자 스스로 경험으로 깨우쳐서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필자 스스로 깨우친 것이 아니라 필자가 변론했던 피고인이 서신으로 필자에게 알려준 내용이었던 것이다.

분명히 피고인의 서신을 읽고 필자에게 남아 있던 내용이었을 텐데,

피고인의 서신을 읽은 기억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랬구나.
피고인이 서신으로 알려줬었구나.



필자는 그렇게 또 10년 넘게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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