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의 속마음을 알려 준 최후진술

by 김혜영 변호사

May 10. 2025

필자는 31살인 2008.3. 에 처음 변호사로서 업무를 시작했고, 2010.3. 에 처음 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처음 국선전담변호사가 되어 배정된 재판부가 1심 합의부였다.

1심 합의부에서는

살인, 강간, 특가법위반 절도, 강도, 현주건조물 방화 등 흔히 법정형이 높고 죄질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범죄를 범한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을 담당한다.

처음 국선전담변호사가 되어 합의부에서 재판받는 피고인들을 변론했을 당시에 필자는,

범죄를 저질렀으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건데, 어떻게 변호를 하지?
피해자도 있는데…‘

라는 생각에 피고인을 변론하는 것이 어색하고 서툴렀다.

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특가법 절도죄를 저지른 42세 여자 피고인을 변론하게 되었다.

(특가법상 절도죄란, 절도로 이미 처벌받아 실형을 선고받은 전과가 수 회 있는 피고인이 출소 후 누범기간 내에 절도죄를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을 하는 범죄를 말한다.)

범죄를 저질러 처벌받아야 하는 피고인들을 변론하는 일이 서툴고 어색했던 필자에게

그 피고인은 최후진술로,

필자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피고인의 마음속 이야기를 알게 해 줬다.

(변호인이 아무리 열심히 기록을 파악해도 변호인으로서 기록을 파악하면, 그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의 진짜 속마음을 알기 어려웠다.

필자는 위 피고인의 최후진술을 들은 후부터, 기록을 파악할 때 변호인의 관점을 유지하되 필자 스스로 피고인이 되어 보며 기록을 파악하는 습관이 생겼다.

필자가 스스로 피고인이 되어 사건으로 들어가 보면서부터 그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의 진짜 속마음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필자가 기록과 접견을 통해 파악한 바로는,

그 피고인은 어린 시절 양육자의 부재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성장했고, 양육자가 없기에 스스로 생존을 위한 방법을 배워야 했다는 것이었다.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어 절취를 시작했고, 절취해서 생계를 유지하다 처벌받고, 출소 후 또다시 절취해서 생계를 유지하다 또다시 처벌받는 생활이 반복됐다.

필자 나름대로는 그 피고인이 어린 시절 양육자의 부재 등의 사정으로 생계유지 능력을 배울 기회가 없었으며, 절취금액이 다소 경미했다는 양형요소들을 강조해서 변론했다.

필자의 최후 변론이 끝나고 그 피고인이 최후진술을 시작했다,

"저에게도
제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게 해 줄
작은 방 한 칸만 있었다면
저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피고인은 자신의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한다고 말했다.

필자 나름대로는 열심히 기록을 파악하고 피고인을 접견하고 변론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위 피고인의 최후진술을 듣자 머리를 뭔가로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뭔가 뭉클함을 느꼈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내 한 몸 하나 누울 공간 없이,
나를 양육해 줄 부모님 없이
어린 나이부터 혼자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면,
내가 그 피고인이라면, 난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필자가 그 피고인이었다고 상상해 보니, 상상만으로도 고달픔과 피곤함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부터 보호해 줄 사람도 없이, 피곤한 몸 하나 누울 곳 하나 없이 42세까지 홀로 살아왔을 피고인의 고달팠던 인생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위 피고인은 1심 선고를 받고

1심을 변론했던 필자에게 서신을 보냈다.

그 서신에는

변호사님께서 변론을 맡아 준 사람이에요.
이름은 기억하실는지 모르겠지만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
이렇게 두서없는 글을 몇 자 적어 보네요.

내 나이 42살이 되고 보니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런 것도 해 놓은 것도 없고
남은 것은 벌만이 남아 있을 뿐
그 무엇도 남은 것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답니다.

변호사님 하지만 지금부터
정직하게 그리고 바른 삶을 살아갈까 해요.

변호사님께서도
내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 주세요.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