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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하 Apr 20. 2023

막막한 콘텐츠 제작자가 잡기 좋은 지푸라기

장근우, <콘텐츠의 정석> 리뷰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뛰어들었지만 시작도 못한채 머리가 굳는다. 나만 그런게 아닐거라고 마음을 다독여봐도 막막함은 가시지 않는다. '수학의 정석'을 떠올리게 하는 야심찬 제목이 그래서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제목처럼 이 책은 초보 크리에이터에게 기획부터 홍보까지 콘텐츠의 A to Z를 알려준다는 컨셉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 책에서 얻은 건 '어떻게'보다 '위안과 용기'다.




이 책에서 위안을 얻은 이유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좋은 콘텐츠에는 어떤 식으로든 창작자다움이 배어있다고 믿는다. 자기 이야기를 쓰는 에세이는 물론이고, 심지어 의뢰를 받아 제작하는 브랜디드 콘텐츠에도. 전자는 진솔함의 형태로, 후자는 클라이언트가 제시한 조건 안에서 고민하고, 협의하며 콘텐츠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창작자의 인장이 새겨진다.


근데 틀리지 않은 그 생각을 제대로 밀어붙여본 적도 별로 없다는걸 깨달았다. 책이나 강연 영상 같은걸 자주 접하다 보면 겹치는 내용이 나오는데, 점점 '다 아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며 흘려버리는 빈도가 늘어난다. 냉정히 돌아보면 다 아는 '그것'을 실제로 하진 않는다.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면 '콘텐츠는 창작자의 개성을 담아, 꾸준하게 연재하는게 가장 중요하다' 이다. 모든 콘텐츠 제작자가 이미 알고 있고, 대부분은 실패하는 지점이다. 그 당연한 게 무척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할만한 형식과 내용으로 계속 발전해야 하고, 콘텐츠를 독자에게 도달시키는 방식도 고민해야한다. 다만 그런 노력도 콘텐츠를 발행하는 꾸준한 루틴의 그릇이 일단 존재해야 그 위에 쌓을 수 있다. 훗날 거대해질 내 콘텐츠의 성을 생각하며 토대부터 다져야겠다.


아래는 <콘텐츠의 정석>에서 기억해둘만한 구절들과 그에 대한 짧은 생각.






1. 꾸준한 콘텐츠 생산에 필요한 오프라인 활동


제가 일하며 배운 콘텐츠 인사이트(Contents Insight)는 아래와 같습니다.

• 온라인에서 보여준 콘텐츠는 오프라인에서도 동일해야 한다. 즉, 콘텐츠는 곧 ‘나’가 돼야 한다.
• 온라인 콘텐츠의 지속적인 생산을 위해 오프라인에서도 그와 관련한 활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콘텐츠로 풀어야 한다.
• 꾸준히 소재를 만들려면 일상에서 시작해야 한다.
• 콘텐츠는 예쁘게 꾸미는 게 다가 아니다.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먼저다.

- 프롤로그 중


다른 내용은 평소 생각과 다르지 않으니 콘텐츠 제작에 비교적 잘 반영할 것 같은데, 두번째 항목 '생산하는 콘텐츠와 관련한 활동을 오프라인에서도 꾸준히 해야 한다'를 읽으며 좀 아차 싶었다.


회사를 그만둔 후 지금까지 내 일은 '생계비를 버는 기능만 있는 아르바이트'와 '혼자 생각하고 글 쓰는 시간'으로만 이뤄져 있다. 그럼 기껏해야 다른 콘텐츠를 보고 그 내용에 기대서 뭔가 쓴다거나, 고여있는 머릿속에서 나온걸 쓰게 된다. 소재 고갈에 부딪히기 딱 좋은 환경이다. 소재 고갈이 반복되면 의욕도 쉽게 떨어진다. 당장은 주 2회 업로드 안착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슬슬 소득 원천을 다변화하고 여러 활동을 병행해야겠다. 일상이 다채로워져야 쓸 소재가 생긴다.




2. 그렇다고 '바이럴 법칙'을 배제해야 할까


문제는 이미 많은 크리에이터 사이에서 “돈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된다”는 게 공식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략) 지금까지의 콘텐츠 관련 법칙들은 머릿속에서 모조리 지웁시다.

단순히 ‘좋아요’나 ‘하트’를 많이 받기 위해 무슨 요일, 어떤 시간에 올려야 할지 고민하는 습관은 이제 버려도 좋습니다. 개성도 없이 그저 유행하니까 쓰는 해시태그(#)와도 당당하게 안녕을 외치세요. 검색 결과에 많이 노출되는 콘텐츠보다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콘텐츠를 만들어보는 겁니다.

- 프롤로그 중
스타가 되려는 사람들은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바이럴 법칙'에 중점을 두게 됩니다. 단시간에 쭉쭉 오르는 조회수와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원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법칙을 나만 알고 있을까요? 누구나 알고 적용하기도 쉬운 이 법칙은 콘텐츠가 범람하고 있는 시대에서 얼마나 효과적인지 증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더더욱 크리에이터로서 오래 활동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면, 이러한 법칙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 chapter 1, 사람은 살아서 기록을 남긴다 중
콘텐츠 제작을 시작한 사람은 무척 많았지만, 현재까지 자신만의 이야기를 멋지게 이어가는 사람은 몇 없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면 하나같이 이렇게 대답하죠. “나는 콘텐츠랑 맞지 않는 것 같아”라고요.

(중략)  눈에 보이는 성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아 속상한 마음 이해합니다. 하지만 성급한 마음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럴 경우 자기만의 차별화된 소재나 주제, 컨셉 등 콘텐츠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 고민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극적이고 노출이 잘 될 수 있을까’만 머릿속에 맴돌게 되거든요. 그 생각이 잦아질수록 결국 매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터의 일이 지루해질 테고, 그만두게 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이르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급할수록 천천히 돌아가라”는 말처럼 목표 설정부터 기획, 제작, 홍보까지 기본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에필로그 중


위의 구절들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의 저자는 소위 '바이럴 법칙'에 무척 비판적이다. 저자의 논지가 큰 거부감없이 다가오는 걸 보니 심정적으로는 나도 동의해버리고 싶은 듯하다. 하지만 '바이럴 법칙'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내 성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콘텐츠에서 배제하는 것도 찜찜하다. 낯선 기술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나의 편향이 반영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추진하면서 복수의 가치를 동시에 가져가야할 때 '1, 2순위 병행론'이라고 이름 붙인 논리구조를 애용한다. 2순위 가치가 1순위를 해치면 안 되지만, 1순위에만 집중하느라 2순위에 아예 소홀해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그냥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한다'고만 하면 가장 중요한 하나 빼고 나머지에 다 소홀해지는 게으른 나를 감안해 만들어본 사고구조다. ㅎㅎ


목표 설정, 기획, 창작자의 개성 반영 등 콘텐츠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바이럴 법칙을 적용할 방법은 없을까. 둘 모두를 가져가겠다는 발상은 간편한 절충주의인걸까. 뭐 그렇게 만들려고 시도하다보면 알게 되겠지. 아무튼 바이럴 법칙에만 매몰돼서도 안되지만 쉽게 배제해버리는 것도 패착이지 않을까 싶다. 기껏 마음을 담아 열심히 콘텐츠를 만들어놓고 잘 안보이게 방치할 필요는 없다. '바이럴 법칙'을 알려주는 콘텐츠가 보이면 그냥 가볍게 슥 읽어야겠다. 그렇게만 해도 여러 번 반복되면 은근히 기억에 남는다.




3. '누가 내 콘텐츠를 볼까' 구체적으로 상상하라


이번에 소개할 비밀은 뜨는 콘텐츠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비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독자 설정’입니다. 사실 이 작업은 마케팅을 활용한 시각디자인 수업이나 광고·홍보를 전공한 분들이라면 다 아는 ‘페르소나(persona)’와 유사합니다. 페르소나는 특정 제품 또는 서비스를 사용할 만한 가상의 인물을 뜻하며, 목표 고객이나 고객의 니즈를 가상의 인물을 통해 구현해보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콘텐츠에 대입해 말하자면, 자신의 콘텐츠를 볼 가상의 독자를 구체적으로 떠올려보고, 그 독자에게 딱 맞는 콘텐츠를 상상해보는 작업이라 할 수 있어요.

(중략) 이렇듯 예상 독자를 정했을 뿐인데, 하고 싶은 말도 생기고 할 수 있는 콘텐츠도 마구 늘어납니다. 굉장하지 않나요? 독자 설정은 콘텐츠의 주제를 흔들리지 않게 도와주고, 유행에 휩쓸리지 않도록 중심을 꽉 잡아줍니다. 예상 독자를 정의했기 때문에 독자에게 할 말도 쉽게 정할 수 있죠.

- chapter 3, 누가 내 콘텐츠를 볼까 중


스포츠 의류 브랜드 룰루레몬은 타겟 고객을 이렇게 설정했다고 한다. '우리 고객은 콘도 회원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여행과 운동을 좋아하고 패션에 민감한 32세 전문직 여성이다' 브랜드 컨설팅 회사 다닐 때 대표님이 즐겨 인용하던 마이크로 타겟팅의 사례다. 회사에서 요가원 브랜딩 과정에 PM으로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과정에도 적용했었다. 이 책에서 다시 보니까 아는거다 싶어서 괜히 반갑네 ㅎ..


내 콘텐츠의 독자는 어떻게 설정하면 좋을까? 잠깐 가볍게 생각해봤다. 꼭 인구통계학적인 세분화가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 지나온 인생의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내린 '멀티버스의 류민하들':

첫 에세이집을 쓰고 나서, 철저히 나에게만 집중해 쓴 글인데도 또래들이 공감했다며 장문의 리뷰를 보내오는 걸 보고 놀랐다.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내 글이 일종의 마중물이 돼서 각자의 경험에서 공통되는 부분을 발견한 게 아닐까 싶다.


기자를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회사를 나오지 않고 지금까지 다녔다면, 퇴사하고 이런저런걸 공부하고 경험했더라면, 같은 생각을 종종 한다. 당연히 어떻게 살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멀티버스의 나'에게 이 길을 택한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를 전해주는 컨셉. '멀티버스의 나'라고 했지만 그게 곧 나와 다른 삶을 사는 또래들이지 않을까.


- '글쓰기'를 붙들고 어떻게든 살아 보려는 사람들:

나도 아는 게 별로 없고 막막하니 당장 '정보 제공'이나 '노하우 전수' 콘텐츠는 어려울거고, 생생한 생존도전기 정도가 되겠군. 이런 콘텐츠는 나중에 잘 돼야 좀 더 의미를 부여받으니까 '이렇게 살아도 되더라'를 증명하기 위해 좀 더 열심히 살고, 기록할 것이다.


음.. 타겟 설정 이렇게 하는게 아닌가? 좀 더 생각해보면 되지 뭐 ㅎ




4. 콘텐츠 100개를 만들어봐야 하는 이유


뭐든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오래 끌기만 하면 병이 됩니다. 이럴 때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 일단 끝까지 해내는 게 낫죠.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에게 빨리 알려지면 더 좋겠다’ 하는 미련이 생기는 것은 크리에이터로서 안정기를 찾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목표를 ‘100개 연재’로 정하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기가 아닌, 노력만 하면 달성할 수 있는 목표로 불안 심리를 환기시켜 제작하는 데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만드니까요. 그러면 정말 거짓말처럼 숫자는 따라오게 될 겁니다.

무리한 홍보를 하기보다는 독자가 여러분의 콘텐츠를 앞으로도 볼 수 있도록 만드세요. 계속해서 자신을 드러내고, 미처 전하지 못한 이야기는 다음 화에서, 또 그 다음 화에서 계속 이어지게 만들어 궁금증을 유발하는 겁니다. 그렇게 오래 지속하면 반드시 여러분의 든든한 팬덤이 생길 거예요.

- chapter 7,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 중


100개 연재하라는 말을 처음 읽을 땐 결국 꾸준히 발행하라는 식상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넘겼는데, 이 부분에서 왜 '100개'인지 설득됐다.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가 불안한 나를 진정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걸 올려도 되나' 같은 회의의 늪에 빠지지 말자. 자꾸 늪에 빠지다 보면 그만두게 된다. 부족하고 아쉬운 점은 다음 편에서, 그 다음편에서 개선하면 된다. 가령 지난주 업로드 예정이었으나 마무리 못한 ㅎ 간만의 정통 에세이 한 편도 어떻게든 끝내야겠다. 뭐 정 글이 맘에 안들면 다음 편으로 왜 아쉬웠는지 구체적으로 해부해보는 자가 피드백 기획하면 되지.


유명인들은 자기가 쓰지 않아도, 기자 등의 타인이 기록을 남겨준다. 그렇지 않은 나는 스스로 기록하는 수밖에 없다. 기록해야 나를 보여줄 수단과 기회가 생긴다. 최소한 망가지지 않을 수 있다.


자 이제 100개 중에 4번째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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