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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호 Nov 20. 2023

할머니가 끓여준 된장찌개

나의 밥 이야기_첫 번째

브런치 작가가 되려면 글을 써서 브런치스토리 운영진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운영진은 심사 기준에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하면, '이번에 모시지 못해 죄송하다'는 뜻의 글을 보내온다.


난 브런치 작가 심사에서 4차례 떨어지고 다섯 번째 붙었던 것 같다. 심사를 받으려면 글을 써서 올려야 하는데, 그때 썼던 글을 동생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동생은 그 글이 아직 브런치에 있는 줄 알고 내게 말했다.


"오빠가 쓴 글 중에는 그때 그 글이 제일 좋아."

"그게 뭔데?"

"그 지난번에 딸이랑 3분 짜장 먹고 나서 쓴 글 있잖아."

"아 그거? 그 글 지운 거 같은데."


맞다. 그 글은 브런치 작가 심사에서 떨어진 뒤 삭제했다. 동생은 '할머니가 끓여준 된장찌개'라는 타이틀을 지어주며 말했다.


"오빠는 그런 글을 잘 쓰니까, 앞으로 음식과 사람, 사연에 대해 써봐."


난 동생 말대로 매거진 제목을 '할머니가 끓여준 된장찌개'로 정했다. 그리고 브런치 작가 심사에서 떨어진 그 글을 기억나는 대로 복원해 써보려 한다.



딸이 7살 때였다. 아마 2년 전쯤. 딸내미 저녁밥을 챙겨주려고 부엌을 둘러보는데, 3분 짜장이 보였다. 국수를 좋아하는 딸에게 소면을 삶아 짜장 반을 부어 주었다.


딸은 맛있다고 한 그릇 뚝딱했다. 남은 짜장은 밥을 비벼줬다. 싸구려 짜장이 뭐가 그리 맛있는지 딸은 밥까지 다 먹고 기분 좋아했다.


그렇게 딸이 짜장을 다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는데, 옛 생각이 났다. 동생과 둘만 같이 살 때였다. 우리는 생활비가 넉넉하지 않았다.


슈퍼마켓에서 3분 카레나 쇠고기짜장을 사다 두곤 했는데, 카레는 혼자 먹기에 적당한 양이었다. 짜장은 양이 많아서라기보다 조금 짜서 혼자 먹기보다 동생이랑 반을 나눠 먹었던 기억이 있다.


동생과 내가 먹던 3분 짜장, 정확히는 3분 쇠고기짜장. 3분 쇠고기짜장이 3분 짜장보다 더 저렴했다.


3분 짜장 하나 더 살 돈이 없어서라기보다, 그렇게 나눠먹는 정(情)이 있었다. 반찬은 김치에다 계란프라이 정도였다. 그렇게 둘만 살다 처음 우리는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아파트라고 해봐야 20년이 넘은 5층짜리였다.


아파트로 이사하면서부터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할머니는 4남매를 키우느라 항상 바빴다. 그래서 요리를 잘 못하셨다. 항상 메뉴는 된장찌개와 김치였고 계란프라이는 가끔 해주셨다.


된장찌개는 365일 끓여졌는데, 한 번 먹고 나면 또 된장과 야채를 보충해서 끓이는 식이었다. 마치 씨간장처럼 '씨된장'이 남은 냄비에 계속 찌개를 끓였다.


가끔은 된장찌개인지, 청국장인지 구분이 안 갈 때도 있었다. 어느 날은 너무 끓여서 냄비가 탔는지, 살짝 탄 맛이 나기도 했다.


이때 이상하게도 그 졸아붙은 된장찌개는 마치 짜장을 먹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탄맛 때문인지 된장찌개에 밥을 비벼 계란후라이를 올리면 짜장밥을 시켜 먹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끓인 된장찌개는 정말 단출하다. 들어가는 재료는 된장, 고추, 무, 호박, 양파. 이게 다다. 된장은 할머니 고향인 남원에서 이모할머니가 보내줬었다.


이야기는 딸에게 짜장국수와 짜장밥을 해주고 동생과 짜장을 나눠 먹었던 추억이, 할머니가 끓여준 된장찌개로 이어진다.


앞으로 음식이랑 추억, 이야기가 어우러진 글을 꾸준히 써보려고 한다. 동생은 이 글이 소소해서 좋다고 하는데 쓰면서 나는 가슴이 아프기도, 안경의 습기가 차기도, 코가 찡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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