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엄마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고집 많고 융통성 없던 종갓집 종손이었던 할아버지에 의해 사육(?)이 되었다고 했다. 본인의 의지 없이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살아온 천하의 둘도 없는 효자이며 한 번도 할아버지에게 반항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버지에게 할아버지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종갓집 차남이었지만 공부에 뜻을 두고 일찌감치 서울로 상경하신 큰 아버지와 자유롭게 사셨던 작은 아버지의 중간에 끼어 형제들의 학비, 생활비, 결혼 비용까지 대셨던 본인의 원가족에 철저히 이용당하셨던 분이셨다. 고부 갈등의 극에 달해 도망치듯 분가한 뒤로 집안과 형제들에게 부모 버린 천하의 불효자식이 되어버렸고 아버지는 자신의 희생을 알아주지 않고 비난만 하는 형제들에 대한 원망이 크셨다.
나의 애증관계 엄마.. 불 같은 성격에 폭력적이셨던 외할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엄마의 모난 성격은 이모들과 맞지 않아 형제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본인 친정에서 쫓기든 결혼을 선택했다. 사람 착한 것 하나 보고 결혼했다고 했는데 그 결혼이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격이었다고 했다. 본인의 시어머니(나에게는 애착의 대상이었던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다고 했다.
아버지랑 이혼하려다 내가 임신이 되는 바람에 못했다, 동생에게는 너 낳다가 죽을뻔했다 이런 이야기를 수시로 했다. 자식들의 출생부터 부정하는 저 말에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불쌍한 엄마한테 잘해야 된다'는 과도한 책임감을 가졌다. 자신의 삶에 대해 항상 남 탓만 하는 사람이며 자신의 인생에 대해 불행 자랑을 조금만 친해졌다 하면 하는 사람이다.
자기 삶이 안 풀린 것이 본인의 선택이었고 아버지와 이혼할 용기 없음이 아니라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 자식들 탓인 것처럼 항상 주변 사람들 원망을 했다.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원망, 분노를 40년 넘는 세월 동안 쌓아놓고 살지만 상담이나 치료를 통해 변화할 의지가 없는 사람이다. 본인의 우울증, 분노를 어린아이였던 나에게 참 많이 풀었던 미성숙한 사람이고 미성숙한 엄마였다.
오프라 윈프리의 말. "엄마에게서 배울 것이 없다면 세상을 통해 배워라." 이 말이 20-30대 나에게 와닿았던 이유였다.
나의 부모에게서는 배울 것이 없음을, 그릇이 자식보다 작은 사람들임을 어렴풋이 느꼈고 부모로서 든든한 울타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슬펐던 기억이 있다.
브리타 테켄트럽의 '빨간 벽'.
빨간벽은 "이 벽을 넘지 마시오"하고 경고하는 것 같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겁이 많았던 나의 부모는 항상 세상은 위험하다고 했다. 나와 동생이 서울로 가던 날에도..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할 때도.. 하지만 나의 청년기 서울에서의 삶은 감사한 순간이 정말 많았고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을 해가며 내 삶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계기였다. 부모가 말한 나쁜 사람도 만나지 않았고 나쁜 일도 겪지 않았다.
나의 부모는 빨간 벽 바깥쪽은 위험하고 믿는 고양이, 자신의 삶의 일부라고 말하며 무관심한 척하는 곰, 체념하고 행복한 척 살아가는 여우, 우울하고 멍한 눈으로 허공만 바라보는 사자이다.
하지만 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호기심 많은 꼬마 생쥐가 되려고 노력한다.
"여기는 껌껌하고 으스스할 거라고 생각했어. 내 친구들이 그렇게 얘기했거든."
"그 친구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봐서 그래. 넌 정말 용감했어. 진실을 스스로 찾아 나설 정도로 말이야. 꼬마 생쥐야, 네 인생에는 수많은 벽이 있을 거야. 어떤 벽은 다른 이들이 만들어 놓지만 대부분은 네 스스로 만들게 돼."
"하지만 네가 마음과 생각을 활짝 열어 놓는다면 그 벽들은 하나씩 사라질 거야. 그리고 넌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발견할 수 있을 테고."
나는 나의 아이들이 빨간 벽에 갇혀 스스로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엄마인 나는 나의 부모로부터 받은 고장 난 안경을 고치는데 많은 시간을 썼지만 나의 아이들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내면의 갈등 없이 온전히 누렸으면 좋겠다.
나는 절대로 나의 아이들에게 나의 부모로 부터 받았던 고장난 안경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