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스터디하면서 직장 동료한테 들은 얘기가 있어요. 중학교 시절 엄마가 초등학교 때 사 주신 100권짜리 전집 속에 용돈을 넣어두었대요. 돈이 생길 때마다 책 속에다 끼워두고 한 번씩 들춰보면서 뿌듯해하고 그랬었다고요. 전집은 번호가 붙어 있잖아요. 용돈을 10, 20, 30,40... 이런 식으로 10 단위 여러 책에 숨겼다네요. 아마 돈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하기 쉽도록 이렇게 숨겼나 봐요.
하루는 집에 왔는데, 전집이 안 보이더래요. 전집이 왜 안 보이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글쎄 이렇게 말씀하시더래요.
"너 그거 안 읽은 지 몇 년 된 거 같아서 파지 할머니 드렸지"
세상에나!
동료는 지금 생각해도 아까워 죽겠다고 합니다. 파지 할머니도 책장을 일일이 넘겨보시지 않았을 테니 그냥 사라진 거라서 더 아깝다고요.
동료가 이런 얘기를 하니까 예전에 들은 친구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주말부부인 친구였는데, 주말 지나고 평일에 친구 생일이었나 봐요. 그래서 남편이 주말에 와서 케이크를 사다 주고 갔대요. 남편은 초 봉투 안에 맛난 밥이라도 사 먹으라고 10만 원을 넣었나 봐요.
친구와 친구 딸은 둘 다 무덤덤한 편인데, 생일날 친구가 초에 불 켜는 게 귀찮다고 케이크만 먹고 초 봉투는 뜯지 않은 채 다 버렸답니다.
남편 입장에서는 10만 원을 발견했으면 고맙다고 연락이 올 뻔 한데, 안 오니까 서운했겠죠. 기다리던 연락이 안 오니까 10만 원 발견 못 했냐고 묻더래요. 당근 못 봤겠죠. 초 봉투는 열어 보지도 않았으니까요.
"아니, 돈을 넣었으면 말을 해야지."
친구는 이렇게 남편한테 오히려 따지고 들었답니다.
어떻게 보면 소통의 문제 아닌가 싶어요.
동료 어머니도 전집을 버리기 전에 딸에게 전집을 버려도 되냐고 물어보았다면, 친구 남편분은 이벤트이니 친구한테는 티를 안내도 딸에게라도 살짝 귀띔을 해줬으면 좋지 않았을까요?
저도 어릴 적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속상하네요. 일명 '누렁이 사건'입니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얻어다 주신 강아지였는데, 누런색이라 제가 누렁이라고 이름을 붙였거든요. 몇 년 지나니 덩치도 커져서 같이 있다 보면 든든했지요. 학교에 갔다 오면 저는 누렁이부터 불렀어요. 그때는 개를 풀어놓고 키우기도 했나 봐요.
집에 와서 누렁이가 안 보이면 "누렁아" 크게 부르면 어디선가 쏜살같이 달려와서 엄마보다 저를 더 반겨주곤 했거든요. 동네 구멍가게에 심부름이라도 가면 가게에는 한 발짝도 들어오지 않고 문밖에서 딱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늘 영리하고 착하다고 엄청 이뻐하던 개였죠.
어느 날 학교 갔다 오니, 얘가 없는 거예요. 누렁이가 안 보인다고 걱정했더니 엄마가 글쎄,
"네 동생 새 책상 사주려고 누렁이 팔았는데..."
이렇게 말하지 뭡니까.
이럴 수가!
뒷이야기가 많지만 생략하고요, 저 거짓말 안 하고 그때 일주일을 울었네요. 엄마는 그래서 이런 말까지 했죠. "내가 죽어도 이렇게 울 거냐?"고요.
엄마는 개나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거든요. 제가 시골 출신인데 당시에는 마을을 다니며 개나 고양이를 사러 다니는 아저씨들이 있었어요. 책상이 필요하던 참에 개를 산다는 아저씨가 보이니 그냥 팔아버렸던 거예요. 제 마음 따위는 생각도 않으시고요.
그때도 "누렁이 팔아도 되냐?." 엄마가 이렇게 물으셨으면 어땠을까요? 물론 저야 당연히 절대 팔면 안 된다고 난리를 쳤겠지만 누렁이가 제게 어떤 존재인지, 얼마큼 좋아하는지 엄마에게 어필할 기회는 있지 않았을까요? 누렁이가 좋아서 죽고 못 사는 딸 모습이 엄마 눈에는 안 들어왔나 봐요. 심하게 아들, 아들 할 때라서요.
결국 소통, 소통이 참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서로 간 소통을 하지 못해서, 소통을 안 해서 잃어버린 것들. 직장 동료와 친구는 돈을, 저는 누렁이를.
아마 이것 말고도 소통의 부재로 잃어버린 것들이 차고 넘치게 더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는 우리 모두 소통 달인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