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
사람이 세상을 살다 보면 때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다면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제 맘대로 세상을 살 수는 없다. 한국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그런 상황이 생기면 불특정 다수에게 하소연을 한다. 나는 요새 스레드라는 sns에서 남들의 글을 읽는데, 스레드의 절반 정도는 별것도 아닌 일에 파르르 떨면서 '스친들 나만 이거 이상해?' 하면서 자기 억울한 사정을 들어달라고 징징거리는 내용들이다.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바라는 건 지극히 한국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린애 같은 행동이기도 하다. 부모님은 어렸을 적 내가 어디서 맞고 들어오면 "네가 알아서 해야지 엄마한테 징징거리면 뭐 어쩌라고" 하고 타박을 줬다. 그래서 나는 힘든 일이 생겨도 남에게 말하지 않는 버릇이 생겼고 그 덕에 주위 사람들은 내가 아주 편하게 사는 줄 알고 있다.
나는 기숙사 룸메이트와 일 년 정도 살면서 싫은 사람과 같이 지내는 법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 룸메이트는 주말마다 부모가 있는 벌링턴이라는 토론토 외곽의 도시에 다녀왔다. 일요일 저녁 즈음 룸메이트가 돌아올 시간이 되면 룸에이트가 탄 기차가 탈선해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길 매일 내심 기대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요행과 달리 불행은 조금만 원해도 쉽게 이루어질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불행은, 특히 남의 불행은 원하는 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룸메이트는 곱슬머리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전형적인 스코틀랜드계 백인이었다. 그는 전액 장학금으로 토론토대 물리학과에 입학한 천재였다. 천재답게 사회성도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 친구는 하나도 없었고 눈치도 없어서 자신이 떠드는 이야기가 십여 분째 남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는 그런 사람이었다. 백인 너드의 스테레오타입 같은 친구였다. 그는 나보다도 더 세상 물정에 문외한이었다. 19살의 그가 듣는 음악은 20세기 초반의 재즈 싱어인 Al Jolson이 유일했다.
그는 부모가 탐탁지 않아 하는 고교 동창과 연애를 하고 있었고 부모의 눈을 피해 연애를 하려고 기숙사에 나와서 살기로 한 것이었다. 여자는 뭔가 팀버튼의 영화에서 튀어나온 인물처럼 눈이 기괴하게 크고 젓가락처럼 마른 몸을 가지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말을 했고 항상 자신의 남자친구를 존경스러운 눈으로 쳐다봤지만 그가 다른 여자와 이야기하는 기미만 보여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나는 룸메이트에게 네 여자친구도 물리를 좋아하니? 하고 물어봤고 그는 여자친구에게 단 한 가지의 아쉬움이 있다면 공부에 별로 취미가 없다는 것이라면서 자신의 고교 동창 중 물리를 자기만큼 잘하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그녀와는 대화가 너무 잘 통했다면서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여자친구는 룸메이트를 면밀히 감시했기 때문에 그가 다른 여자를 만날 가능성은 없었다.
가끔씩 룸메이트는 자기 여자친구가 방에서 자고 가도 괜찮냐고 물어봤고 나는 딱히 거절할 건더기도 없고 나도 나중에 무슨 신세를 지게 될지도 몰랐기 때문에 허락을 했다. 2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그의 침대에서 둘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뭔가 서로 중얼거리다 쪽쪽거리는 소리를 내곤 했다. 그때까지도 여자친구가 없었던 나였지만 왠지 부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찐따들도 인싸들만큼 연애를 많이 한다. 찐따라고 마냥 모쏠로 지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찐따들의 연애에는 단순히 둘이 눈이 맞아서 사귀는 것 이상의 정치역학이 있다. 커플의 어느 한쪽만 찐따인 경우는 극히 드물다. 외모만 보고 사귀는 경우는 대개 오래가지 못한다. 외모보다 중요한 건 성격이다. 연애의 목적은 남녀가 다르다. 주로 여자의 경우에는 어디다 내보이고 자랑할 수 있는 남자를 원한다. 자기보다 못한 남자와 사귀고 싶어 하는 여자는 없다. 평강공주가 바보온달과 결혼한 이유는 이거 잘만 다듬으면 물건이겠구나 싶어서 결혼한 거지 그냥 바보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니다. 적지 않은 여자들은 자신이 사귀는 남자의 위상으로 자신의 가치를 정의한다. 하지만 찐따들은 제각기 이상한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 남자를 두고 경쟁하거나 하는 일이 흔하지는 않다.
남자 찐따들은 우선 자신의 억눌린 성욕을 해소해 줄 여자를 원하기 때문에 초반에 여자가 질려서 떨어져 나가는 수가 많다. 게다가 남자들은 어머니처럼 자신을 모두 이해해 주고 허물을 덮어 줄 여자를 원하지만 세상에 맨입으로 그럴 사람은 없다. 남자 찐따들 중에는 일부러 초반에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 그걸 다 이해해 줄 여자를 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것은 잘못된 접근방법이다. 동물의 짝짓기 과정에서는 수컷의 허세와 가식은 필수이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보다 급이 높아 보이는 여자에게는 웬만해서 다가가지 않는다. 무난하게 생긴 여자가 아주 예쁜 여자보다 인기가 좋은 것은 이 때문이다. 통념과는 다르게 대화가 통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상관이 없다. 사실 마누라랑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은 남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룸메이트와 처음 몇 달은 그럭저럭 지냈지만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그렇듯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서로를 탐탁지 않게 여기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물어보지도 않고 여자친구를 자주 방에 데려왔고 나도 시끄러운 음악을 틀거나 룸에이트의 심기를 건드리는 횟수가 늘어났다. 학년말이 될 즈음에는 우리는 그다지 대화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는 천재답게 보통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물어보지 않을 질문들, 이를테면 "동양 인종은 사실 지난 천년 동안은 인류에 기여한 게 별로 없지 않나?" 혹은 "장애자들은 태어나면 국가가 데려가서 처리하는 게 맞지 않을까?" 등의 주제로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그런 대화를 하고 있으면 짜증도 났지만 한편으로는 반박을 시원하게 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내가 뭔가 모르는 것이 많다고 느꼈다.
학기가 끝나가는 어느 주말 나는 과제를 다 끝내고 혼자 술을 왕창 먹었다. 롱 아일랜드 아이스 티라는 술이었는데 아이스 티니까 약한 술이겠지… 생각했으나 그건 보드카로 만드는 칵테일이었다. 내일 아침에는 룸메이트가 여자친구를 데리고 오겠다고 말을 해 놓은 상태였다. 젓가락 같은 년이 자주도 들락날락하네 하고 술김에 짜증이 난 나는 옷을 모두 벗고 잤고 그다음 날 비명소리 같은 걸 듣고 깼다. 룸메이트가 뭔가 주섬주섬 챙겨서 나가고 있었다. 그 후로 그의 여자친구는 다시 볼 수 없었다. 룸메이트도 그 후로는 나와 말을 많이 섞지 않았다. 몇 년 후 나는 캠퍼스에서 그를 다시 마주쳤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는 물리학 박사과정에 진학 예정이었고 말라깽이 여자친구와는 결혼해서 근처 아파트에 세 들어 살고 있다고 했다.
기숙사에는 룸메이트 외에도 갖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많았다. YJ라는 나보다 두어 살 많은 한국 형이 있었는데, 기숙사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겉돌았다. 어느 날 다른 기숙사 선배가 밥을 먹다가 나에게 물었다. "어... 그냥 물어보는 건데, 한국에도 동성연애 하는 사람들이 있지?" 나는 왜 그러느냐고 물었고 그는 "아니 YJ 말로는 한국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게이가 될 수 없다는 거야, 백인들이나 호모짓 한다고 그러던데" 하면서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국에서 내가 다니던 바이올린 학원은 낙원상가 앞에 있었다. 그 주변은 유명한 동성연애자들의 놀이터였다. "남과 남", 혹은 "금지된 사랑" 같은 야릇한 제목의 다방들이 있었고 , 그 근처 극장은 그런 커플들이 데이트를 하는 곳이었다. 아마 그 무렵 시인 기형도가 그 극장에서 심장마비로 죽은 채 발견되었을 것이다. 나는 중학생이었지만 쓸데없는 걸 많이 아는 소년이었다.
YJ앞에서도 하우스메이트들은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흥분된 한국말로 나에게 "야 너도 얘기 좀 해줘, 한국에는 그런 새끼들 없다고, 대한민국에 호모가 어딨어."라고 소리쳤다. 그 형은 덩치가 매우 크고 우락부락했기 때문에 나는 차마 아니라는 말은 못하고 아하하 어색하게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