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열망이라는 텅 빈 형식
1.
회사 서가에서 버릴 책을 골라내던 후배가 낡은 책을 발견했다. 1993년에 발행된,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 전대협 6년사 사진집. 후배는 귀한 책이라며 집에 가져가고 싶다고 했고, 나는 그전에 잠깐, 책을 빌려달라고 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왠지 그 책에 그의 사진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스쳤다. 책장을 넘겨, 화염병을 던지는 학생, 교문에 바리케이드를 친 대학교 시위 현장, 물대포가 터지는 도로를 지나 A로 추정되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곳에 물대포를 맞고 다른 학생들과 함께, 눈살을 찡그린, 20대 초반 A의 얼굴이 있었다. A는 당시 모대학 학생회장으로 전대협 활동을 하다가 1991년에 구속된 바 있다.
2.
그로부터 15여 년이 흘러, 미국의 한 대학 영화과 교수가 된 A는 내가 다니던 학교에 교환교수로 왔다. 학과장이자 내가 가장 따랐던 스승인 K교수는 A의 대학 선배였는데, “같이 학교 다닐 땐 안 그랬는데 미국 가서 영어가 많이 힘들었나 봐. 머리가 많이 빠졌어”라고 학생들 앞에서 A를 향한 애정이 담긴 디스를 했고, 나는 그 말이 오래 잊히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들을 겪으면 그렇게 되는 것일지 그 나이의 나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아무튼 그해, 타국에서 머리숱을 잃은 대신 교수직을 얻은 A교수가 한국에 돌아와 대학에서 처음 맡은 강의는 현대일본영화 강의였다. A교수는 미국에서 아마 한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아시아영화 연구자로 자리 잡았던 것 같다. 나는 그 강의 수강생 중 한 명이었고, 우리 학생들은 매주마다 그가 과제로 내준 일본영화를 1편씩 보고 짧은 페이퍼를 제출해야 했다. 그는 교수님이라기보다 우리보다 덕력이 훨씬 더 높은, 이보다 더 성공하기 힘들 덕후 선배 같았다. 저작권을 가볍게 무시하는 한국의 불법 파일공유 프로그램에 신기해하고 일본의 컬트와 악취미 영화를 얘기하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그런 사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에서 나오는 천진한 눈빛이 약간의 불쾌감을 일으키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보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A교수는 내가 낸 페이퍼를 보고 혼잣말처럼 무슨 말인가를 던졌고, 학생운동, 운동권, 엥겔스, 옛날 뭐 그런 말이 나왔던 것 같은데…. 한참 기억이 나지 않던 그 말이 떠오르자 지금 나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그 말은 “이거 완전히 맑시스트들의 얘긴데요”였다. 나는 일본 학생운동의 쇠퇴와 관련 지어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에 관한 페이퍼를 썼다. “1979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아사마 산장 사건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아버지를 부정하려는 아들(들)의 움직임은, 인간에 내재된 폭력성에 의해 자멸해버렸다. 이 영화의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은 바로 이곳일 것이다. 왜 그들의 시도는 실패했는가?” 아마도 A교수는 그의 세대의, 아니 그의 시대의 언어가 여전히, 한 학생의 페이퍼에 살아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 같다.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언짢았다. 학생운동이 흔적기관처럼 남은 그해, 내가 맑시스트들의 유산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걸 권위 있는 사람이 알아줘서 기뻤지만, 나는 그렇게 낡은 언어에 갇힌 사람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사실, 내 페이퍼는 맑시스트들의 이야기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그가 학생운동에 깊이 관여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K교수의 애정이 담긴 디스가 이어진 건 이 말 다음이었다. “학부 때 내내 운동만 하다가 다쳐서 한쪽 눈도 안 보이는 사람이 갑자기 미국으로 영화를 공부하러 간다고 해서 놀랐었지.” 지금에서야 학생운동을 하다가 돌연 유학을 떠났던 문화예술계 86세대의 이야기가 꽤 흔한 서사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조금 신기했다. 그 후였을까. A교수에 대한 짧은 기억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이따금 내 삶에서 돌출되었던 것은.
3.
아주 가끔씩, 잊을 만하면 다시, A교수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떠올랐다. 나에게 했던 말은 희미해도 그 눈빛만은 또렷했다. 그것은 늘 어떤 질문을 포함하고 있었다. 왜 그는 고작 학생이 쓴 페이퍼 따위에 동요했던 것일까? 어느 날엔, 그가 내 페이퍼에서 어떤 열망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고 타국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아마 그에게는 그때의 일도 그 당시의 열망도 희미해지고 있는 중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다시, 그 무렵의 자신 그리고 동지들이 품었던 것과 비슷한 강도(強度)의 열망을, 그것과 닮아 있는 무언가를 그 짧은 페이퍼에서 발견해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에겐 아직 “불완전 연소의 에너지”가 남아 있었을 것이다. 불완전 연소의 에너지는 또 다른 불완전 연소의 에너지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낯 뜨거운 자기 고백이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열망을 숨기고 있는 학생이었다. 겉으론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듯이 냉소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내 안에는 격렬한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항상, 아주 멀리 있는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고, 그 무언가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엔 왜인지 거대한 부끄러움과 죄책감과 두려움이 뒤따랐다. 모든 게 복구 불가능하게 망가질 것이고, 내가 모든 걸 망쳐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A교수가 내게서 어떤 열망을 알아보았다 하더라도, 그가 나에게 같이 글을 써보자고 제안했더라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에 그쳤다. 아마 그가 내게 가장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었던 질문은 이런 종류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넌 여기서 왜 이러고 있니?
4.
열망의 정체에 대해 생각한다. 열망을 숨기고 있던 나는 열망을 품은 존재들에게 자주 매료되곤 했다. 열렬한 바람. “불완전 연소의 에너지.” 열정이라고도 불리는, 맹목적 광기와 폭력으로 변질되기도 하는, 강렬하고 폭발적인 그런 힘들. 시대착오적 맑시스트들, 정신병에 사로잡힌 광인들, 실패하는 혁명가들, 구석에 몰린 이단들, 몸에 불을 지르는 순교자들, 적당을 모르고 선을 넘으려는 예술가들, 예술가나 마찬가지인 철학자들,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시간과 장소를 갈망하는 몽상가들, 다시 말해 열망의 숙주들.
하지만 열망은 그 자체만의 힘으로 무엇을 행할 수 없다. 드물다고는 말할 수 없을 수의 사람들이 열망을 품고 살아갈 테지만, 열망은 시대적 조건에 따라, 개인이 어떤 존재들과 마주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 그것이 “화학반응” 여부와 그 폭발력을 결정한다. 아마 A교수가 1980년대 후반에 대학에 입학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를 만났던 그해, 또는 지금 2022년에 20대를 보내고 있었다면 그는 분명히 행복한 ‘일뽕’, ‘씹덕’, ‘영덕’였을 것이다. 아니, 갈 곳을 잃은 불완전 연소의 에너지는 우울증과 불안장애의 양상으로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아니, 목적지 없이 표류하던 에너지는 디시 갤러리의 ‘갤창’ 네임드, 마블영화의 충성 고객, 성착취물 중독자의 삶에 정박했을 수도 있다. 나 역시, 지금과 같은 강도의 열망을 품고 있었더라도, A교수와 같은 세대였다면, 또는 지금이 아닌 다른 시대를 살고 있었더라면 내 삶은 분명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A교수는 그저 우연히, 그런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열망을 표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건 그의 행운도 불행도 아닌 것, '나'가 어찌할 수 없는 것, 즉 운명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열망이야말로 낭만을 규정짓는 것일 테다. 열망은 그것을 채우고 흘러넘치게 할 내용을 기다리는 텅 빈 형식, 그 자체로 아무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낭만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5.
그러므로 다시, 그로부터 15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거 완전히 맑시스트들 얘긴데요.” 그 탄식은 내가 맑시스트들의 관점과 언어를 빌려온 문장들을 썼다는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내 페이퍼가, 그가 경험했던,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을 통과했던 한국의 맑시스트 대학생들에 관한 얘기처럼 읽힌다는 말이었다고, 이제야 나는 생각한다. 그들의 시도는 정말 실패했던 것일까? 그들의 열망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그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유학을 결심했을 때 선생님은 실패했다고 생각했습니까? 왜 정치적 혁명을 꿈꾸던 선생님은 고작, 영화를 선택했습니까? 나는 그렇게 묻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그가 그 당시 어떤 생각을 했고 그동안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으며 그때 무엇을 믿고 있었는지 나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머리카락이 수없이 빠지고 더 이상 새로운 머리카락이 돋지 않으며 조금은 백치처럼 보였던 눈빛을 갖게 되기까지의 시간을. 하지만 명백하게 결례가 될 저런 질문을 던졌더라도 그는 결코 솔직한 대답을 들려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서툰 짐작, 끝없는 착각과 오해의 영역에 남아 있다. 나는 어떤 열망들과 그것들의 전환, 또 사라짐을 상상했다. 그런데 곧이어 나를 파고드는 섬뜩한 생각이란 이런 것이다. 그때 A교수가 내 페이퍼에서 본 것은 그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아니었을까. 어른이었던 그는 이미 내가 갖고 있는 어떤 두려움을 모두 보고 만 것은 아니었을까. 나를 원하는 열망을, 현실의 이름으로 그것이 지쳐버릴 때까지 온 힘을 다해 밀쳐내는 어리석은 겁쟁이들의 세계, 도망자들끼리의 은밀한 공모, 어떤 못된 유대감이 거기 있었던 건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내가 A교수에 대한 기억에서 오랫동안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진실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 사진 속 얼굴이 A교수가 아니어도 큰 상관은 없다. 청년은 머리숱이 아주 많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