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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룔룔 May 29. 2022

불완전 연소의 에너지가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1) 하다카노 라리즈

https://youtu.be/jxEvPguwxq4


1.

하다카노 라리즈(裸のラリーズ, Les Rallizes Dénudés)의 "White Awakening"(새하얀 각성)을 처음 들은 순간, 심장에 확 뜨거운 불이 붙었다. “나의 봄이 시작되었을 때 / 너 이외엔 원하지 않았어.” 과거 부정형 “않았어”(なかった)라는 말은 묵직하게 내리치는 슬픔이었다. 다른 것들을 모두 버리고 지우고 떠나보내고 남겨둔 것은 오로지 너뿐이었지만, 이제는 봄도 지나가버리고 너도 잊혀질지도 모른다는 슬픔. 아니, 슬픔이라는 말은 적절치 않다. 물에 흠뻑 젖은 솜을 질질 끄는 듯한 기타와 미즈타니의 절규하는 목소리에는 그 이상의 것들이 있어서 내 몸을 떨리게 한다. 그들의 곡명이기도 한 “氷の炎”(얼음불꽃)처럼, 여전히 물속에서, 아니 얼음 속에서 불을 지피는 음악, 아니 얼음을 불꽃으로 만드는 음악.


그러니까 그런 음악가들이 있다. 그 시대의 공기와 정서를 고스란히 흡수해버리는 음악가들, 그래서 청자들을 어느 시대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데려다놓는 음악가들.

 

2.

하다카노 라리즈는 1967년 일본 교토에서 결성된 노이즈 록‧사이키델릭 록 밴드로, 비슷한 시기 미국의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곧잘 비교된다. 이들은 30여 년간 영리 목적의 음반을 거의 발매하지 않은 채 공연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일본의 컬트 록 아이콘이 되었다. 이 밴드의 시작은 일본 학생운동의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하던 시기, 미군 격려차 베트남으로 출국하는 정치인을 저지하기 위해 2천여 명의 학생들이 하네다 공항에서 싸우다가 사망자가 생겼던 1967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1월, “일본의 음악 신에 혁명을 일으키는 밴드”를 만들자며 세 명의 도시샤대학 재학생들이 뭉쳤다. 초창기 멤버이자, 적군파에 가담해 1970년 요도호 사건(일본항공 351편 공중 납치 사건)을 일으킨 후 북한에 망명한 베이시스트 와카바야시 모리아키는 한 인터뷰(blog.naver.com/chch1997, Rallizes님 번역)에서 밴드의 첫 만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그런데 나는 뭘 하는 걸까, 뭔가 하지 않으면…. 두 사람[미즈타니 다카시, 나카무라 다케시]이 말을 건 것은 그 시기였습니다. (…) 저는 10월 8일 하네다 투쟁을 계기로 사회와 마주하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세 명의 불완전 연소의 에너지가 있었고, 그것이 화학반응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느낌인 듯합니다.”

 

세 사람이 가지고 있던 불완전 연소의 에너지가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세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 허례허식 없는 맨몸으로 나서겠다는 잠재의식”에서 ‘벌거벗은’(裸の), 그리고 당시 전공투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말 ‘라리루’(ラリる, 수면제를 과다 복용했을 때 몽롱해진 상태를 뜻한다)를 합쳐 밴드명을 지었다. 이들은 1970년대 도쿄에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하기 전, 교토 연극계의 혁신적인 움직임의 일부였던 현대극장과 협업하거나 교토대학 바리케이드 공연 등에 참여했다. 딱히 정치에 대해 말하고 다니는 밴드는 아니었지만, 와카바야시의 탈퇴 이후에도 미즈타니는 아나키스트를 의미하는 검정 헬멧을 쓰고 시위에 나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일본 위키피디아의 ‘하다카노 라리즈’ 항목 작성자는 “그들의 음악은 당시 전공투 운동 등으로 표출된 학생들의 심정적 급진주의와 강하게 공명하는 것”이라고 썼다.

 

3.

“White Awakening”은 최초로 공개되는 그들의 공식 디지털 음원으로, 이 곡이 언제 처음 발표되었는지에 관한 정보를 나는 찾지 못했다. 여러 부틀렉 버전의 “White Awakening”이 인터넷을 떠돌지만, 내가 뒤늦게 처음 들은 버전은, 로스앤젤레스의 리이슈 전문 레이블 템퍼럴 드리프트(Temporal Drift)에서 올해 정식 발매한 라이브 앨범 <오즈 테이프>(The OZ Tapes)에 실린 것이다. 포크 성향이 두드러지는 이 곡은, 훨씬 널리 알려진 버전(youtu.be/ch-TDGW-zXs)에 비해 노이즈가 덜하고 목소리 또한 덜 뭉개져 있다. 웅얼거리는 것이 아니라 힘껏 내지르는 탓에 가사는 아주 선명하게 들리고 감정은 매우 거칠지만 강렬하게 전달된다. <오즈 테이프>는 1970년대 초반 도쿄의 유일한 록 공연장이자 언더그라운드 반문화의 중심이었으며 하다카노 라리즈가 정기적으로 공연을 했던 기치조지 인근의 카페 오즈(OZ, 1972. 6 ~ 1973. 9)가 문을 닫게 되면서 5일간 이곳에서 펼쳐졌던 밴드들의 라이브를 녹음한 컴필레이션 앨범 <오즈 데이즈 라이브>(OZ Days Live, 1973)에 수록된 라이브를 포함해, 스카치 아날로그 테이프 상태로 반세기 동안 잠들어 있던 그들의 미공개 라이브를 엮은 앨범이다. 템퍼럴 드리프트의 공동설립자 패트릭 매카시(Patrick McCarthy)는 이렇게 썼다. “<오즈 테이프>는 수십 년간 이어질 커리어의 시작에서 이 밴드의 시간의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한다. 내게 이 레코딩이 가장 놀라운 건 하다카노 라리즈가 얼마나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 태도, 그 카오스, 그 아름다움, 이 모든 것이 온전히 여기 있다.”

 

1970, 초창기 멤버 와카바야시는 작별인사도 남기지 않고 북한으로 떠났다(훗날 와카바야시는  인터뷰에서 “저는 혁명을 일으켜 자신을 표현하고, 그들은 밴드로서 자신을 표현합니다. 각자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작별인사 같은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혁명을 꿈꾸었던 전공투의 봄은 1969 야스다 강당 사건과 1972 아사마 산장 사건을 거치면서 으스러져갔다. 그리고 1973, 오즈는 문을 닫았다. 그렇게 많은 것이 흩어지고 퇴색되고 망가졌고, 남겨진  일종의 '' 이후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곳에 열망을 품었고 열기를 뿜어냈고, 뭔가가 식어버렸다고 느껴지는 계절에도 계속해서 소음을 피워 올리면서  “네가 오기를 기다리”(“The Last One”) 여전히 남아 있는 “빛의 향기”(“White Awakening”) 보존하려고  음악가들이 있었다. 아주  시간이 흘러, 1973년이 그들의 ‘시작이며, 그들의 이후 행보가 일본과 전세계 음악계의 ‘혁명이었다고 기록되는 사건을 만들어갔던 이들의 이름은 하다카노 라리즈다.


4.

"White Awakening"으로부터 하다카노 라리즈의 앨범들을 차례차례 찾아 들으며, 나는 오시마 나기사의 영화들을 떠올렸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밤과 안개>(1960), <도쿄전쟁전후비사>(1970) 같은 영화들이 오래 내 마음을 사로잡았을 때를 생각했다. 그 시기 일본 청춘들의 열망과 광기와 배음처럼 깔린 슬픔은 어디서 온 건지 생각했다. 대중 학생운동의 쇠퇴와 1991년 5월의 분신정국을 경험하며 수많은 친구들을 잃고 그 이후를 살아가야 했던 한국의 청춘들을 생각했다. 그들의 존재가 1991년 전후의 시간을 잡지 기사와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접한 나에게 오랫동안 열병처럼 머물렀을 때, “나의 봄이 시작되었을 때”를 생각했다. 열망 속에서, 열기 속에서, 그리고 갑작스레 어떤 것들이 스러진 자리에서 슬픔 속을 헤맸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손을 모은다. 그 방향 상실과 절망의 계절을 헤쳐나오려 애쓰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정표처럼 붙들고 여기까지 왔다.

이제 나는 “불완전 연소의 에너지가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켰다”는 와카바야시의 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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