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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룔룔 Oct 11. 2021

음악취향이 맞는다는 것

1.

음악취향이 맞는다는 것. 같은 말을 쓰더라도, 당연히 사람마다 ‘맞는다’의 기준이 다 다르다. 음악취향이 맞는다는 것을 어떻게 의식/무의식적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기준과 허용 범위에 따라 음악취향이 맞는 사람의 수는 굉장히 달라지는 듯하다. 그리고 이 기준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음악취향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끼리도 여러 오해가 생겨난다.


아주 느슨하고 관대하다 못해 개방적인 사람은 장르 무관하게 상대가 음악에 애정이 있다면 말이 통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음악취향이 맞는다고 얘기한다. 좀더 선명한 선을 그을 줄 아는 사람들은 주력으로 파는 하위 장르가 같거나, 관심 갖는 장르가 한두 개 겹쳐야 한다는 기준을 둔다. 기대가 거의 없는 누군가와 호들갑을 잘 떠는 누군가는 동시에, 오아시스나 검정치마 같은 이름을 들어보기만 했어도 음악취향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음악취향이 맞는다는 것을 일치 여부로 판단하는 사람들있다.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일치하는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일치하는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 일치하는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의 가장 좋아하는 곡이 일치하는가? 일치에 대해 엄격하고 까다로운 기준을 들이대기 시작하면, 취향이 맞는 사람을 만날 확률은 제로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가장 좋아하는 앨범의 가장 좋아하는 곡이 일치하는 사람을 만나는 기적 같은 경험을 했다는 간증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는 우리의 기대를 만족시키며  사람과 사랑에 빠졌고 훗날 결혼했으며 ‘음반 합치기 해서 서로 중복되는 수십 장의 앨범을 만났지만, 지금은 집에서 음악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흔한 것은, 음악취향이 맞는다고 이야기하기 위해 고유명사의 겹침과 인지 여부를 따져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일치를 버리고 비슷함과 유사함을 붙잡는다. 좋아하는 장르들이 얼마나 겹치는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앨범이 얼마나 겹치는가? 좋아하진 않아도 그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티스트 이름이라도 알고 있는가? 긴 설명 없이 음악이야기가 통하는가? 물론 그 허용 범위는 사람마다 다르다. 탑스터라면, top4는 겹쳐야 하는가? 서로의 탑스터에서 3분의 2 이상은 겹쳐야 하는가? 3분의 1 정도면 충분한가? 아니면 음악을 들어보거나 앨범명은 알고 있으면 훌륭한 일인가?


그리고 나는 음악취향이 맞는다는 것에 대해 저런 방식으로 생각해왔다. 탑스터로 치자면, 각자 아끼는 아티스트나 앨범의 3분의 1만 겹쳐도 굉장한 일이라고, 다른 3분의 1은 음악을 들어보거나 이름만 알고 있어도 충분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어야 영향을 받으면서 내 음악취향이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음악취향이 맞는다는 것은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치나 겹침 여부와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데 나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인지도도 굉장히 낮고 아주 좋아하는 아티스트/앨범/곡도 아니지만, 자신은 특별한 감정이 드는 아티스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을 만나면 괜히 반갑고 친근감이 든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말은 잘 이해가 되었다.


2.

그런데 나를 포함한 어떤 사람들은 왜 이리 음악취향이 맞는 사람에 대해 과도한 호기심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음악취향은 관계 맺기에 전혀 중요하지 않고, 외모나 태도 같은 다른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은 정신건강이 이상할 것이라며, 또는 ‘나만의 특별한 취향’을 유지하기 위해 비슷함에 불쾌함을 내비치며 만남을 원치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음악취향이 맞는 이에게 호감을 품는 사람들이 분명히 적지 않은 수로 존재한다.


나는 열네 살부터 음악취향이 나라는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것과 닿아 있으며 나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이라는 해괴한 믿음을 갖고, 음악에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해왔다. 나와 음악취향이 맞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지, 만일 만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했다. 그리고 현실과 인터넷에서 어느 정도 음악취향이 맞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는데, 확실히 어떤 공통점이 보였다.

나와 음악취향이 맞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성향이 비슷한 것 같았다. 내향적이고 뭔가 꼬여 있고 폐쇄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특히 자신의 지적인 능력이나 감식안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냉소적이면서도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아니 서투른 면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나이와 무관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나와 음악취향이 꽤 비슷한 고등학생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음악취향만 아니라 다른 관심사, 사용하는 어휘나 문단 나누기 방식도 비슷한 게 놀라웠다. 그가 쓴 글들을 보면 내 십대 시절을 보는 듯해서, 참 귀엽고 흐뭇하다가도 곧 양 볼이 화끈거렸다.


사실, 음악취향은 성향이라기보다 개인적 경험과 관련이 깊다. 음악취향이 맞는다는 것은 비슷한 공연을 보고 비슷한 장소에 가고 비슷한 취미를 즐기고 비슷한 매체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 즉 비슷한 경험을 했고 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무튼 이러한 공통점은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말이 잘 통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리고 일치나 비슷함에 기반을 두고 음악취향이 맞는 사람들을 선호한다는 건 강한 자기애의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자기를 너무 사랑해서 다른 것에 그다지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고, 그럼에도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영역인 음악에 타인을 초대하고 함께 그 공간을 공유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 공간은 한 번도 이해받지 못한 마음이 있는 곳, 언젠간 발견되고 열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공통점이나 유사성이 있다는 것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고, 음악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한다고 해서 대화가 무지 잘 통하고 서로 잘 이해하고 이해받으며 획기적으로 신나는 일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걸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음악취향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면 좋은 일이 생기리라는 기대가 어린 나를 덜 슬프게 했고, 지금은 그런 사람들을 스치기만 해도 서로에 대해 더 들여다보게 되고 더 잘 알게 되는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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