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Octopus Teacher”- 푸른 심연 연체동물과의 조우
완성도 높은 감동의 수작.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푸른 심연 연체동물과의 조우, 나를 치유하다.
Netflix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My Octopus Teacher (2020)” (나의 문어 선생님). 2021년 아카데미상 장편 다큐멘터리 수상작이기도 하다. 감동과 재미, 그리고 여운까지 선물하는 이 작품은 90분 내내 그 어느 과거 다큐멘터리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소재를 통해 흡인력 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남아프리카 해안 푸른 바다 심연으로 잠수한다. 잠수복도 산소통도 없이 맨 몸으로 입수하는 Craig. 그는 전쟁 같은 일터에서 숨 쉴 틈 없이 살다 지친 다큐멘터리 감독. 일에 지쳐 목표를 상실한 채 무엇인가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온 고향 같은 바다. Craig 은 세상살이에 지친 자신을 자신이 알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 하지만 한때 자신에게 너무도 익숙했던 그 바닷속으로 자신을 내맡긴다. 그는 그 바닷속 밑바닥 구불구불 펄럭 펄럭 외계인 같은 모양새를 한 연체동물 문어와 조우한다. 그 후 매일매일 400일 동안 잠수를 하는 Craig, 그 반복된 여정에서 그는 놀라운 발견을 하기에 이른다.
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Craig과 문어. Craig 은 이 다큐멘터리의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내레이터이자 카메라맨이자 그 자신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나의 문어 선생님"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던 혹은 세상에 보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문어"에 대한 사실들, 과학적 진실들, 그리고 이런 진실 혹은 발견에 대한 과정을 Craig 자신이 몸소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여정을 생생히 담고 있다. 그 생생한 이야기는 "지식 전달' "객관적 관찰" 혹은 자연다큐, 야생동물 다큐, 혹은 해양 다큐멘터리가 카메라에 담아낸 색감과 구성이 제공하는 "시각적 매력"을 한 단계 뛰어넘어 더 깊은 울림과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느끼도록 한다. 그 이유는 뭘까.
첫째, 본 다큐멘터리 제작 동기의 우연성이다. 우리는 이 다큐멘터리 속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을 접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문어에 대한 과학적 관찰과 발견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자 미리 작정하고 만든 작품이 아니라는 것. Craig이라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세상에 지쳐 떠난 여정에서 그를 깜짝 놀라게 한 해양 생물에 대한 우연한 발견을 그리고 있다는 것.
둘째, 우리의 무지와 호기심에 대해 충분히 지적인 충족감을 제공한다는 것. 많은 시청자들이 '설마 아닐 거야, ' 혹은 '어떻게 문어가?'라는 단순 부정과 호기심으로 이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리라. 전문가가 아닌 이상 우리가 문어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나 지식은 매우 단편적이다. 다리가 여덟 개 달린 뼈가 없는 연체동물로 여러 개의 빨판이 있는 몸의 구조를 가지고 있고 적이 나타나면 검은 먹물을 뿜거나 보호색으로 색을 바꿀 수 있다는 정도. 게다가 문어는 기다랗고 구불구불한 여러 개의 다리에 툭 튀어나온 눈, 걷거나 뛰는 움직임 없이 흐물흐물한 움직임, 커다랗고 둥그런 머리에 몸체 없는 불균형한 형체 때문에 종종 징그럽고 무서운 괴물 혹은 악당의 캐릭터로 우리 안에 존재해 왔다. 또한 문어는 한국인들에게 쫄깃쫄깃한 식감을 가진 맛있는 해산물이자 식재료로 인식되어 있다. 즉, 문어에 대한 우리의 보편적인 이미지는 그저 물컹물컹 징그러운 해양 동물 혹은 식탁 위에 오르는 음식 재료에 불과하다. 따라서 문어에 대해 그 이상에 대한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설마'라는 호기심으로 이 다큐멘터리를 보기 시작하는 우리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문어의 세상을 목격한다. 이 해양 동물이 얼마나 높은 지능과 학습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 문어가 어떻게 해양 생태계에서 생존해 나가는지에 대해.
셋째, 이 다큐멘터리는 빠르고 효율적이며 바쁘게 일상을 살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우리들의 어깨를 다독인다. 우리는 일에 지쳐 모든 것을 놓아버린 Craig의 자전적 이야기가 매우 낯익게 다가온다. 어떤 보상도 해답도 보장되지 않는 깊은 바닷속으로 알 수 없는 무엇에 이끌려 매일매일 잠수하는 그에게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중첩시켜 바라본다. 우리가 세상살이로부터 일탈을 했건 하지 않았건 간에.
이 다큐멘터리는 문어에 대한 Craig의 관찰과, 그의 자기 성찰, 그리고 문어와의 교감을 통해 Craig 이 그간 방황하고 지쳤었던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가 자기 자신을 닫아버렸던 출발선. 그리고 떠난 여정. 바다라는 자연 그리고 그 생태계 안에 살고 있는 문어라는 해양동물의 일상, 시련, 극복, 그리고 죽음에 대한 관찰, 연구, 그리고 한 단계 나아가 문어와의 특별한 관계 맺음을 통해 그는 다시 인간 세계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다큐멘터리의 마지막에 그는 성장기에 있는 그의 아들과 함께 바닷속으로 잠수한다.
시각적, 청각적 재미와 감동을 주는 완성도 높은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은 지루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내레이션이 길고 정적인 카메라 샷의 반복적인 사용이 눈에 띌 때 우리는 다큐멘터리가 지루하다고 느끼게 된다. 움직이는 그림으로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주관적으로 그 메시지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액션 없이 의미 없는 B-roll 혹은 배경 화면을 한참 보여주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주입하듯 내레이션으로 읽는 경우, 우리는 다큐멘터리가 재미없다고 느끼게 된다. 다큐멘터리의 주요 인물/소재의 이야기가 실제 벌어지는 액션과 사건을 통해 직접적으로 카메라에 담겨 보여야 우리는 실제 존재하는 인물과 이야기라는, 허구가 아닌 '논픽션'이라는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에 대해 감동받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나의 문어 선생님”은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제목을 보고 그저 문어에 대한 다큐멘터리인가 보다 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하는 우리는, 점차 그 어느 다큐멘터리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우리는 Craig이 직접 바닷속에 들어가 문어를 관찰, 발견하고, 문어와 교감하는 매우 흥미진진한 장면들을 목격한다. 이는 예상 밖의 즐거움이며 놀라운 재미다. 분명 이 다큐멘터리의 화자는 Craig이고 다이빙을 하기 전, 혹은 마치고 나서의 느낌, 혹은 문어의 움직임에 대해 고민하고 해석하는 그의 내레이션이 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사실의 관찰을 보고하는 과학자 혹은 기록자의 내레이션에서 그치는 느낌이라기보다 문어가 해양 생태계에서 살아나가는 생존 방식, 그리고 예기치 않게 그에게 다가온 문어가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홀로 되묻는 일기와 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 즉, 그의 목소리는 가르치거나 결론을 정리해 전달하는 내레이션이 아닌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다큐멘터리는 ‘문어’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실은 ‘Craig’ 자신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Craig 은 뜻하지 않게 우연히 알게 된 이 해양 생명체에 대한 새로운 발견에 감탄한다. 호기심으로 문어에게 접근했던 Craig 은 문어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는 신호를 확인하게 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자기 성찰을 하는 ‘Craig’의 이야기이지만 그는 단순히 관찰자적 입장이 아닌 시네마 베리테처럼 직접 진실의 발견에 동참함으로써 ‘문어’는 이 다큐멘터리의 주요 캐릭터가 된다. 그도 그럴 듯 Craig 은 문어를 “it”이 아닌 "she"(그녀)라고 지칭한다.
바닷속의 세계를 조명한 이 다큐멘터리가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첫째, 바닷속 세계를 표현하는 시각적 효과와 간헐적으로 들리는 수중의 물결 가르는 소리, 혹은 효과음 등으로 우리도 모르게 바닷속 세계로 젖어 들어 그 신비로운 공간에 함께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 제작자/감독은 보는 내내 관객이 작품에 대한 흥미와 긴장을 잃지 않도록 시각적, 청각적으로, 이야기를 잘 풀어내고 있다. 일단 시각적으로 눈이 즐겁다. 햇볕이 쏟아지는 남아프리카 푸른 바다는 아름답다. 아름다움에서 그쳤으면 별 흡인력이 없었겠지만, 높은 지능으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나가는 문어의 삶, 또한 바닷속에서 인간과 교류하는 장면을 포착하여 보여줌으로써 우리는 그 이야기에 더 빠져든다. 게다가 바닷속에는 그 어떤 세상 속 소음도 사람들의 관계도 목소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움직임은 물의 저항, 압력, 그리고 물결에 따라 슬로 모션이 된다.
둘째, 매일매일 잠수복도 산소통도 없이 다이빙하는 모습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상징적이다. 숨이 가빠 수면 위로 올라 산소를 들이마신 후 다시 해저로 몸을 맡기는 그. 수영 바지 하나 입고 wetsuit 도 없이 그 차가운 바닷속으로, 때론 검은 암흑 밤바다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그의 자세가 물결을, 문어를, 자연을 마치 바닷속 물고기처럼, 맨 몸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겸허한 인간의 태도를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도록 하는 장면들이 있다. 바로 문어가 Craig에게 짧지만 매우 의도적으로 다가가는 장면들. 아마도 Craig 이 검은 잠수복과 산소통으로 온몸을 무장하고 있었다면 화면을 보는 우리는 자연과 동화된 Craig, 혹은 인간 세계에 한발 다가온 문어에 대해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혹자는 “다큐멘터리”는 철저히 꾸밈없는 진실만 보여줘야 한다라면서 혹시 몇몇 장면 ‘연출된’ 화면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다고 하지만, 사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은 들 지 않는다. 또한, 화면에 잡힌 문어의 움직임을 보고 Craig 이 느낀 감정과 해석은 그의 주관적인 견해와 해석일 수 있기 때문에 그 견해와 해석이 모두 정확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아마도 오히려, 시청자들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 긴 여운과 문어에 대한 증폭된 호기심으로 문어에 대한 자료와 정보를 찾아 읽게 되리라.
[본 다큐멘터리의 감흥을 충분히 느끼기 위해 되도록 주위를 어둡게 하고 시청하기를 권한다. 푸른 심연 연체동물과의 조우. “나의 문어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