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지우아빠 May 03. 2021

2. 사업자등록증을 받기까지

설립과정의 어떤 부분이 어려워서 창업을 주저하게 만들까?

제약사에서 근무하면서 같이 일했던 동료 네트워크, 바이오벤처에서 근무하면서 사업협력을 논의했던 파트너 업체의 지인 네트워크, 그리고 투자업무를 하면서 벤처캐피탈, 신기술금융사의 심사역이나 LP 네트워크... 이 모든 인적 네트워크 중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나에게는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그래서 나의 업무나 사업과는 연관성이 없더라도 직원을 소개해달라거나, 계약서 양식이 필요하다거나, 어떤 바이오벤처의 기술력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거나 등등의 도움을 요청받으면 꼭 기억해뒀다가 피드백을 드리곤 한다. 만약 알아본 후에 도움을 드릴 만한 건이 결국 없더라도 일정 기한 내에 답신은 꼭 드리는 것이 내 사업개발 경험 상의 원칙이고, 또 사회생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업상으로 이메일을 주고 받다가 마지막에 정성껏 보낸 이메일에 아무 이유도 없이 답신을 받지 못하고 논의가 끊겨 버리거나, 뭔가 문의하거나 요청했을때 맺음이 되는 답을 받지 못했을 때에는 내 마음 속에서 그 존재감을 절반쯤 지우게 된다. 같은 대접을 2번 받게 되면 에버노트에 따로 메모한 살생부 리스트에 올리고 그 존재감을 완전히 지우게 되며 인연이 닿지 않는 상대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혀 본다. (꼭 이렇게까지 따라할 필요는 없다.)


아뭏든 창업을 한 이후로 지인 네트워크로부터 가장 자문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 것은 당연히 창업 그 자체에 관한 것이고, 세부적으로는 창업의 동기, 가장 어려웠던 점, 투자를 잘 받는 비결 등등 다양했다. 그런 자문에 내가 생각하는 기준과 경험으로 답을 해주다 보니 의외로 내가 설명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부분은 정작 그 질문에 대한 답들이 아니라 인적 자원(조력자)의 확보와 사업계획의 수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창업의 필수 요건>


사업계획에 대해서는 나중에 글을 올릴 기회가 있을 것 같고, 이번 글에서는 설립 과정에서 인적자원의 중요성에 대해 중점적으로 말해보고 싶었다. 설립 시점에서 2인의 주요한 조력자가 내 앞에 불쑥 나타났다.


첫번째 인물은 앞서의 글에서 언급했듯이 창업 기회를 포착하고, 이를 권유했으며, 설립 과정에도 적극 참여하고 도움을 줬던 친구 K였다. 그는 설립 자본금을 통한 지분구조에서도 대주주 지위를 기꺼이 양보했고, 핵심인력의 참여를 위해서라도 내 지분을 너무 욕심낼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그래서 medi-chem 전문가 교수진, 특허 전문 변호사, 장기적으로 융합하고 진출해야 할 플랫폼기술을 가진 벤처 대표이자 과선배 등을 발기인으로 해서 지분구조를 짰다. 결국 medi-chem 교수진은 우리 회사와의 공동연구 등을 통해 초기 연구개발을 주도해 주었고, 특허 전문 변호사는 회사에 입사하여 특허전략을 수립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두번째 인물은 medi-chem 전문가 교수진을 이끌었던 동향 출신의 S였다. 그는 자신의 실험실에 근무하던 합성 전문 인력을 기꺼이 회사에 내주었고, 이들을 그 실험실에 파견보내어 회사 일을 하게 함으로써 자체 연구소가 없는 상황에서 초기 연구개발의 공백을 어느 정도 메꿔주기까지 했다. 다만 그와는 초반부에 의견을 일치시키기가 무척 어려웠다. 신규하지만 매력적인 약물 타겟을 발견하고 잔뜩 흥분해서 이걸 개발해보자고 하면 번번히 그는 "흠... O대표, 이건 (저분자)신약을 만들어야 하는 타겟인데? 어려울 거야..." 이렇게 답하곤 했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아무리 약물 타겟이 매력적이라도 단백질 구조가 밝혀지지 않았거나, 참조할 수 있는 다른 저해제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가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모든 것을 다 밝혀야 한다는 뜻이었고, 그렇게 되면 5년이 지나더라도 변변하게 진도가 나가고 있는 파이프라인을 못가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접근이 가능한 타겟 위주로 선도 파이프라인을 구축했고, first-in-class 계열의 신규 타겟은 그 뒤를 따라가는 파이프라인으로 구축하면서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했다. S는 또한 회사 연구소에 영입해야 할 medi-chem 리더를 소개해주면서 결국 현재 모습의 연구소를 만드는 것에도 기여했다.


<인적 기반 확보 흐름도>


앞서의 글에서 보면 <바이오 전공자의 인생 테크 트리> 중에서 "창업"은 유일하게 앞부분을 점선 공백으로 표시해 놓은 것을 기억할 것이다. 바이오벤처의 창업이 IT기업의 창업과 다른 점이라면, 아이디어 만으로 창업할 수 없고 오랫동안 전문적인 연구개발로 검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가로 구성된 인적 자원, 특히 연구개발 분야의 전문가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다시 이를 위해서는 창업자 본인이 그런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어야 하며 이는 최소한 석사 과정 이상의 학위를 통한 연구 경험, 업계 근무를 통한 사업 경험이 쌓이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된다.


최근 바이오벤처 설립 붐이 일어나면서 제약업계에서도 바이오벤처로 이직하는 사례가 많으며, 바이오벤처의 처우도 현실화되면서 그에 대한 시각도 많이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원래부터 한정적인 인력풀 속에서 그나마 매력적인 인력을 확보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므로, 만약 바이오벤처 창업을 계획하고 있다면 설립 이후에 핵심 인력들을 끌어들일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고 본인이 현재 어떤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또 어떻게 처음부터 참여시킬 것인지를 생각하는 편이 더 나을 것으로 보인다. 사업의 비전을 보여주든지, 본인의 인간적인 매력에 호소하든지, 물질적 보상을 약속하든지 설득하는데 쓸 수 있는 수단은 많지만 공통적으로는 본인이 변하지 않거나, 그 약속들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언급하고 싶다.


그러고보니 사업자등록증을 받기까지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서술하지 않았는데, 결론적으로 공유 오피스 등 자그마한 사무실을 월세로 계약하고, 이를 주소지로 해서 법무사를 쓰면 된다. 혼자 어떻게든 할 생각은 하지 말고 전문적인 법무사를 쓰기를 추천드린다. 그게 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 박퇴에서 창업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