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급식을 떼고 가족과 떨어져 처음으로
삼시 세 끼를 스스로 챙겨 먹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해 먹을 줄 모를 뿐만 아니라
야채 손질도 어려워했었다.
그때는 지금만큼 유튜브가 성행하지 않았을 시기인 데다가, 중국에 있었으니,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하기 편한 시절은 아니었기 때문.
중국은 식재료와 밥값이 꽤 싼 편인데,
직접 해 먹는 것보다 시켜먹는 것이 이래저래 이득이라
초반 몇 번 한국에서 가져온 레트로트 식품을
끓여먹어 보다 결국 배달음식을 선택했다.
그 당시 내 기숙사 방은 공동주방 바로 옆 방이었는데,
하루 종일 사람들이 요리하는 소리로 북적였다.
특히 내 옆방에 살던 커플은 우리 층에서
가장 요리를 많이 해 먹는 친구들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왠지 내가 그들에게서
주방 옆방을 뺏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의적으로는 아니고)
가끔 라면을 끓여먹거나 설거지를 할 때
그 옆방 친구와 자주 마주쳤었는데
하루는 검게 탄 파프리카를 보고 노심초사한 마음에
대신 가스불을 꺼주었었다.
이제는 알아요 일부로 태우는 중이었단 걸..
어쨌든, 저녁마다 창문으로 넘어오는 맛있는 음식 냄새와
검게 탄 파프리카가 요리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이었다.
기숙사를 벗어나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하고
매일 먹는 비슷한 음식들에 질려버린 나는
조금씩 스스로 요리를 해보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했던 요리들을 생각하면
지극히 생존과, 자극 강한 음식에 무뎌진 내 혀를
달래기 위한 요리였었다.
2년을 보내고 한국에 와 다시 할머니가 해주는
집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요리를 하지 않는 몇 년을 보내고
이태원에서의 첫 자취를 시작했다.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방에서 첫 끼니를 시켜먹으려는데
웬걸, 비싸도 너무 비싸다.
가장 저렴한 식사가 8천 원이었다.
하루에 세끼, 아침은 자주 안 먹으니 2끼만 먹는다 쳐도 하루에 만 육천 원.
그렇게 한 달이면 48만 원이다. 월세보다 더 나가네.
이 마음이 본격적인 요리의 시작이 되었다.
나는 마트에서 각종 조미료를 샀으며,
적당한 후라이팬(웍에 가까운)과 냄비, 그리고 밥공기와 넓은 접시를 가져왔다.
불어 터져 엉겨 붙은 까르보나라, 설익은 밥,
된장 향밖에 안나는 된장찌개 등
언제나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입안에 어찌어찌 욱여넣었다.
그래도 그렇게 하나 둘 요리가 완성되어갈 때마다
실력은 눈에 띄게 늘어갔다.
가끔은 앞치마를 벗고 맘에 드는 옷을 입은 뒤
식탁 앞에 앉아 내가 나에게 만들어주는 음식을
맛있는 술과 함께 즐기기도 하였고,
장장 4시간이 넘는 어려운 요리라도 포기하지 않고
주방을 서성거리며 완성시키기도 했다.
요리는 지금 이십 대 후반,
프리랜서라는 겉만 멀쩡한 이름 뒤
겨우 백수를 면하고 있는 나의 상황에 순식간에 들이닥치는 패배감과 무기력함을 이겨낼 수 있는 무기가 됐다.
지금은 다시 가족 집에 들어와 그전만큼 자주 요리를 해 먹지는 않지만, 가끔 무시무시한 좌절감이 나를 덮쳐올 때 나를 위한 요리를 정성스레 만든다.
마트에 가서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느끼고,
땅에서 나온 재료들의 향을 맡으며
손으로 하나하나 정성스레 손질하다 보면
어느새 잔잔해진 내 마음속이 보인다.
꽤 멋지게 만들어낸 요리를 입안 가득 음미하고,
나만의 시간을 오롯이 느껴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진 좌절감.
결국 나는 요리를 통해 작은 성취들의 중요성을 느꼈던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