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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질 Jun 14. 2021

요리는 즐겁다.





대학교 1학년, 급식을 떼고 가족과 떨어져 처음으로 

삼시 세 끼를 스스로 챙겨 먹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해 먹을 줄 모를 뿐만 아니라

야채 손질도 어려워했었다.

그때는 지금만큼 유튜브가 성행하지 않았을 시기인 데다가, 중국에 있었으니,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하기 편한 시절은 아니었기 때문.



중국은 식재료와 밥값이 꽤 싼 편인데,

직접 해 먹는 것보다 시켜먹는 것이 이래저래 이득이라

초반 몇 번 한국에서 가져온 레트로트 식품을

끓여먹어 보다 결국 배달음식을 선택했다.



그 당시 내 기숙사 방은 공동주방 바로 옆 방이었는데,

하루 종일 사람들이 요리하는 소리로 북적였다.

특히 내 옆방에 살던 커플은 우리 층에서

가장 요리를 많이 해 먹는 친구들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왠지 내가 그들에게서

주방 옆방을 뺏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의적으로는 아니고)



가끔 라면을 끓여먹거나 설거지를 할 때

그 옆방 친구와 자주 마주쳤었는데

하루는 검게 탄 파프리카를 보고 노심초사한 마음에

대신 가스불을 꺼주었었다.

이제는 알아요 일부로 태우는 중이었단 걸..

어쨌든, 저녁마다 창문으로 넘어오는 맛있는 음식 냄새와

검게 탄 파프리카가 요리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이었다.









금귤정과와 리코타 치즈 그리고 레몬필




기숙사를 벗어나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하고

매일 먹는 비슷한 음식들에 질려버린 나는

조금씩 스스로 요리를 해보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했던 요리들을 생각하면

지극히 생존과, 자극 강한 음식에 무뎌진 내 혀를

달래기 위한 요리였었다.


2년을 보내고 한국에 와 다시 할머니가 해주는

집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요리를 하지 않는 몇 년을 보내고

이태원에서의 첫 자취를 시작했다.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방에서 첫 끼니를 시켜먹으려는데

웬걸, 비싸도 너무 비싸다.

가장 저렴한 식사가 8천 원이었다.

하루에 세끼, 아침은 자주 안 먹으니 2끼만 먹는다 쳐도 하루에 만 육천 원.

그렇게 한 달이면 48만 원이다. 월세보다 더 나가네.

이 마음이 본격적인 요리의 시작이 되었다.

나는 마트에서 각종 조미료를 샀으며,

적당한 후라이팬(웍에 가까운)과 냄비, 그리고 밥공기와 넓은 접시를 가져왔다.


불어 터져 엉겨 붙은 까르보나라, 설익은 밥,

된장 향밖에 안나는 된장찌개 등

언제나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입안에 어찌어찌 욱여넣었다.

그래도 그렇게 하나 둘 요리가 완성되어갈 때마다

실력은 눈에 띄게 늘어갔다.









우니크림 파스타와 오이김밥




가끔은 앞치마를 벗고 맘에 드는 옷을 입은 뒤

식탁 앞에 앉아 내가 나에게 만들어주는 음식을

맛있는 술과 함께 즐기기도 하였고,

장장 4시간이 넘는 어려운 요리라도 포기하지 않고

주방을 서성거리며 완성시키기도 했다.


요리는 지금 이십 대 후반,

프리랜서라는 겉만 멀쩡한 이름 뒤

겨우 백수를 면하고 있는 나의 상황에 순식간에 들이닥치는 패배감과 무기력함을 이겨낼 수 있는 무기가 됐다.


지금은 다시 가족 집에 들어와 그전만큼 자주 요리를 해 먹지는 않지만, 가끔 무시무시한 좌절감이 나를 덮쳐올 때 나를 위한 요리를 정성스레 만든다.

마트에 가서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느끼고,

땅에서 나온 재료들의 향을 맡으며

손으로 하나하나 정성스레 손질하다 보면

어느새 잔잔해진 내 마음속이 보인다.

꽤 멋지게 만들어낸 요리를 입안 가득 음미하고,

나만의 시간을 오롯이 느껴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진 좌절감.


결국 나는 요리를 통해 작은 성취들의 중요성을 느꼈던 것일지도 모른다.




꽃비원의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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