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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질 Aug 15. 2021

차분함과 우울함, 그 얇은 경계.

제목과는 상관없는 얘기입니다. 그냥 제목을 이렇게 짓고 싶어서.







사람 없는 관광지를 선호한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한때는 흥했지만 이제는 유행이 지나 쓸쓸하게 남아있는 조형물이 있는 동네 거나, 휴가철이 지나 관광객이 다 빠져나간 마을에 애처롭게 걸려있는 현수막 같은 풍경을 좋아한다.

그런 동네에 가면 어쩐지 기분 좋은 우울함이 맴돈다.


우리 빼고는 아무도 없었던 10월 말의 고성 끝자락의 바다.


차분함의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우울함의 경계에서 나는 외줄 타기를 시작한다. 산만하게 쓸어 담던 시간이 오래 지나서 그런지 공허함만 남아 괜히 헛웃음을 친다. 이제 또 혼자만의 시간에 갇혀 스스로를 채워나가고, 사람들을 만나며 다시 소비하겠지. 소심한 외향인의 슬픈 굴레. 언제쯤 도망치는 일 없이, 겁내는 일 없이 차분하게 머물러있을 수 있을까.


 





매일 흐리고 비가 내렸던 상하이의 겨울. 몹시 추웠었다.


상하이에 지내면서 느꼈던 그 도시의 특징은, 너무나들 쉽게 떠나고, 또 쉽게 온다는 것이었다.

마음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공허하고 공허하고 공허하고...

살다 보면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특별한 이유 없이 정이 가는 사람, 잘해주고 싶고 예뻐해주고 싶은 사람.

그 도시에 머무르는 사람이었던 나는 셀 수 없는 사람을 떠나보냈고, 또 맞이했다.

그중에는 한국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떠나보내는 순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걸 어렴풋이 알아챈다.

나도, 그들도, 그 도시 속에서만 특별했던 관계였던 거지.

여행 같았던  관계를 일상  까진 들이고 싶지 않았던 거다.


왁자지껄한 시간이 지나고, 그 공허함을 짊어지는 건 서로가 아니라 나 혼자였다.

모두가 떠난 먼지  도시의 겨울에 홀로 차가운 바닥 위에 앉아  식어버린 밥을 먹었던 기억.

떠들썩한 시간이 있었기에 쓸쓸함은 배로 커졌었다.


해가 갈수록 나도 그들과 닮아갔고, 모든 마음을 쏟아붓지 않은 채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을 배워 갔던 것 같다. 온 마음을 주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이별하는 말보다 다신 없을 다음을 기약하는 말이 더 애달프다.

이제는 나도 쉽게 떠나던 그들과 닮아 뜬구름 잡는 소리를 툭툭 쉽게 내던지곤 하지만.






오늘 이유 없이 자꾸 정이가던 직원분을 떠나보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회가 되면 같이 맥주나 한잔 하자고 다신 없을 다음을 기약하는 말을 서로 던지면서.



마음은 묵직하고, 기분은 쓸쓸해진다. 가을을 맞을 준비를 하나 보네,라고 가볍게 넘기려 애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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