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가족 안에서 그녀가 가진 병명이나 차이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절대 안 되는 일이 었다. 가정에서는 김수현이 상처를 받을 것이 염려되어 질병에 관해 말하지 않았고, 계속되는 비 슷한 경험들은 그녀가 자신이 가진 차이가 잘못된 것이고, 나쁜 것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그녀는 가족의 지원과 애정이 큰 힘이 되기도 하고 긍정적인 정체성을 갖는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을 나약하게도 만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예쁜 첫 조카가 생겼다. 너무 예뻐서 내 딸 같은 기분이 들었다. 투정을 부려도 내 눈에는 너무 귀엽기만 해서, 언니가 주지 말라는 과자와 초콜릿도 언니 모 르게 많이 주었다. 조카가 서너 살 때쯤 인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여러 가지 단어들 을 배워오기 시작했다. 언젠가 크다는 것과 작다는 것을 배워왔는데, 내 방 소파에 올 라가서 두 팔을 하늘 위로 올리고는 크다고 말하고, 소파에서 뛰어내리면서 작다고 외 치면서 놀기도 했다. 지금도 그 모습이 그려질 정도로 귀여웠다.
엄마 생일이 돌아와 우리 가족은 아주 멋진 호텔 레스토랑에서 파티하기로 했다. 우 리 가족은 호텔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샹들리에 구경을 하면서 예전에 라스베이 거스 벨라지오 호텔에서 보았던 천장과 비슷하다고도 하고, 상점들을 돌아다니면서 캔 쿤 리조트에서 봤던 보석들 이야기도 하면서 가족들이 같이 보냈던 좋았던 시간들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그때 호텔 로비에서 우리 가족들 모두가 서 있는데, 조카가 우리들을 올려다보면서 자신은 작고, 수현 이모는 조금 크고, 어른들은 모두 크다고 여러 번 말했다. 엄마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이모한테 작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웃으면서 조카에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면서 형부가 한국에서 제일 좋은 국립대학 의과대학에 교수로 임용이 된 것을 축하해주었고, 나는 사위 자랑으로 우주에서 아무도 엄마를 이길 수 없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엄마는 너무 기뻐했다. 그런데 그때 조카가 다시 수현 이모 는 작고 어른들은 크다고 했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매우 화가 난, 조금 큰 소리로, 수현 이모가 작다는 그런 말은 절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조카를 혼냈다.
나는 어른이 된 지금에도 누군가 나를 속상하게 하려고 일부러 나의 외모를 지적하 면 너무나 상처받는다. 그건 사실이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아픈 것 같다. 그렇지만, 그날 조카의 말은 아무런 가치판단 없이 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말에 흔들리는 엄마를 보면서, 어쩌면 아픈 나와 살아오면서, 엄마가 더 마음이 아팠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