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장애로 인한 차이와 어려움은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연구참여자의 인식은, 특별 히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만난 어른들과 또래 집단 내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더욱 강화되었다. 장애에 관한 부정적인 사회적 통념을 경험한 김수현에게 질병, 장애, 손상은 그녀의 삶을 조금 불 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수치스러운 무엇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은 그녀에게 장애 와 질병은 숨겨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김수현은 어린 시절에 겪은 여러 사건을 통 해 장애와 질병은 약점인 것으로 사람들에게 말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녀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도록 만들었다.
나는 9학년 때 한국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 언니가 다녔던 여자고등학 교였는데, 공부를 잘하는 학생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엄마는 언니가 그 학교에서 전 교 회장도 하고, 공부를 매우 잘하는 학생으로 졸업했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잘 대해줄 것이라고 했다. 그 학교의 모든 아이는 부모님이나 기사 아저씨 차를 타고 등하교를 했는데, 정문 앞 백 미터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야 하고 학교 안으로 차를 타고 들어 오는 것은 어느 학생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다.
처음으로 등교하는 날에 같은 반 반장이라는 아이가 교문 앞에서 학교 소개와 구경 을 시켜준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색 여름 교복을 입고 있던 반장 아이는 단정 하고 똑똑해 보였다. 학교 건물은 붉은색 벽돌로 되어있고 담쟁이 넝쿨이 높이 자라있 어서 제인 오스틴의 소설책에서 읽었던 것처럼 멋있었다. 걸어서 학교 안으로 들어가 는 데 자동차가 우리 옆에 멈춰 섰다. 그리고 운전석에서 어느 아저씨가 나왔다. 아저 씨는 책가방을 들고 서 있다가, 차 문을 열고 나오는 여자아이의 등에 가방을 메어주 었다.
반장 아이는 나에게 그 아저씨는 강남에서 유명한 성형외과 원장이라고 했다. 그리 고 저 여자아이는 그 집 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여자아이가 장애가 있어서 아빠가 매일 등하교를 시켜주고, 저 아이만 우리 학교에서 유일하게 차를 타고 학교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학생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유는 저 아저씨가 학교에 기부금을 엄청 많이 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장 아이는 그 여자아이 부모님이 아이가 공부를 못해서 미술을 시켰는데, 그림은 더 못 그려서 예고도 떨어지고, 이 학교 운동장에 잔디를 깔 아주고 들어왔다고 했다.
그 여자아이는 여름 교복을 입고 있어야 했지만, 흰색 긴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고, 왼쪽은 셔츠 길이가 더 길어서 손을 가리고 있었다. 반장 아이는 그 여자아이의 손가 락 한 개는 작고, 한 개는 없다고 했는데, 사실 그 손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가 정말 못 돼서 왕따이고, 공부도 못하는데, 어느 선생님도 그
아이를 혼내지 못한다고 했다. 그 여자아이는 학생이 들어가는 길이 아니라 선생님이 들어가는 문을 통해서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건물로 들어갔다. 나는 이전에 한국에서 보조기를 하고 학교에 다니면서, 몇몇 친구들이 신문으로 나 를 치기도 하고, 나쁜 말을 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 등교하는 날,절대 나에 대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당시에 나는 보조기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내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없을 것이라서 다행 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걱정에 대해 엄마, 아빠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엄마가 교장선생님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해놓았다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었다. 엄마는 항상 어느 곳에서도 내가 마음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