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을 잘 살펴보면 진부한 것이 70%, 새로운 것이 30%일 때가 많다고 합니다. 신선한 무언가가 잘 먹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클리셰의 장점을 잘 이용하는 것 또한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일 겁니다. 필자가 생각했을 때 이러한 비율을 가장 잘 지키는 게임 회사는 닌텐도입니다. 그중 한 시리즈만 몇 번 해보면 특정 요소들이 안정적인 재미 방정식으로 오랫동안 고수되었음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닌텐도가 보수적인 회사란 평도 있다
이 때문에 그중 나이가 가장 많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시리즈](이하 마리오 시리즈)는 새로운 무언가로 혁신을 만들었음에도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모순적인 평가를 자주 받아왔습니다. 그렇다고 명작의 구성 요소 비율도, 닌텐도의 방정식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필자가 봤을 때 핵심적인 게임 플레이와 구성이 스스로 만든 클리셰에서 잘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원더](이하 마리오 원더)에서 큰 혁신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구성요소의 변화, 플랫폼 장르로서의 기승전결, 유저를 위한 편의성과 난이도가 달라졌습니다. 작품 개발 방향이 변화와 혁신이었다면, 그들은 이번 작품을 통해 성공을 이뤄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마리오 원더]를 통해 그들이 어떤 식으로 바뀌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 작품도 매너리즘에서 빠져나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양함을 만드는 방식을 다양하게
스테이지 구성 요소를 크게 주인공, 적, 환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존 [마리오 시리즈]에서 주인공은 변신 아이템으로 변화를 주었고, 적은 다양한 컨셉을 가진 장애물로, 환경은 플랫폼 장르를 기반으로 한 기믹 활용 맵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마리오 시리즈]는 이 무난한 구성을 오랜 세월 관습법처럼 유지해 왔습니다. [마리오 원더]가 꼭 바뀌어야 했던 부분 중 하나가 이 스테이지 구성 요소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워진 적도 많이 만들었고, 주인공과 환경에서 변화를 주었습니다.
주인공, 적, 환경은 게임에서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
이때 주인공에게 새로움을 더하겠다고 더욱 많은 변신을 주는 건 능사가 아닙니다. 어차피 주인공은 한번이라도 피해를 입으면 변신이 풀립니다. 즉, 변신 가짓수가 아무리 많아도 유저는 평범한 모습으로 플레이할 때가 많습니다.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려면 기본 형태일 때의 플레이가 달라져야 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배지 시스템이 추가되었습니다. 이것은 주인공의 기본 행동에 영향을 줍니다. 가령 벽 타기 점프가 가능해지거나 주변에 있는 코인을 흡수하는 것 등등이 있습니다. 사실 큰 변화를 일으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유저의 성향이나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혹은 환경에 따라 입맛대로 바꿀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자율성을 인정해 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달성률 100% 달성하기 위해 같은 스테이지를 2번 이상 반복할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배지를 바꾸면서 최적의 플레이를 찾는다면 나만의 정답을 찾는 과정이 추가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마리오 시리즈]는 개발진이 정한 답을 유저가 찾아야 할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배지 시스템이 이를 해결해 줬다고 생각합니다.
따로 연습도 시켜준다
두 번째로 환경도 달라졌습니다. 플랫폼 장르 기반인 건 똑같지만 컨셉이 더 다양해진 겁니다. 우선 앞서 언급한 배지 시스템으로 만든 배지 챌린지가 추가되었습니다. 배지의 기능을 토대로 스테이지의 난이도를 순차적으로 높여서 연습시키는 컨십입니다. 그 외에도 시간을 기록하며 꽃충이와 레이스를 하는 스테이지, 모든 적을 물리치는 스테이지도 추가되었습니다. 그래서 골인 지점에 도달하는 플랫폼 장르임에도 쉽게 질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월드마다 최소 하나씩 들어가서 괜찮았다
달라진 기승전결
닌텐도에서 만드는 스테이지에선 기승전결이 드러납니다. 처음엔 기믹을 소개하고, 그 후 그걸 어렵게 만들고, 다른 기믹과 섞어서 난이도를 더 높이고, 마지막에 마무리하는 이 과정을 대부분 지킵니다. [마리오 시리즈]는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기승전결을 설명할 때마다 등장해주는 스샷들
그러나 새로운 작품인 [마리오 원더]는 그 구성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기믹을 소개하고 난이도를 높이는 것까지는 똑같지만, 다른 기믹을 섞는 단계를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변형시키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이때 쓰이는 것이 원더 플라워입니다. 주인공이 원더 플라워와 접촉하면 가만히 있던 뻐끔 플라워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며 움직이기도 하고, 중력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초반에 소개한 기믹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다르게 활용되는 것입니다. 이러면 유저는 학습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도전 욕구도 자극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 많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변화와 혁신이라는 개발 방향을 생각한다면 과감하지만 성공적인 한 수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스테이지에서 급변하는 경우가 많다
마무리 단계도 달라졌습니다. 원래 [마리오 시리즈]에서 스테이지를 끝내려면 깃발에 접촉해 골인해야 했습니다. 꼭대기에 도달하면 1UP을 하지만 필수는 아닙니다. 그저 유저의 자유에 맡기는 편이었습니다. [마리오 원더]에서도 비슷하긴 하지만 강제성이 늘어났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스테이지에서 깃발 꼭대기에 도달하지 않으면 최종 스테이지가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깃발 꼭대기에 도달하는 게 매번 쉬운 것도 아닙니다. 적이 발판을 갉아 먹기도 하고, 적을 밟고 높이 점프할 타이밍을 잡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원더 플라워로 기믹의 난이도를 올리기 힘든 만큼 깃발로 긴장감을 더 유지시키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게임을 가볍게 즐긴다면 깃발 꼭대기에 꼭 도달할 필요는 없다
입문은 더 쉽게, 마스터는 여전히 어렵게
[마리오 원더]에선 새로운 오브젝트와 적이 많이 추가되었습니다. 다만 주인공의 변신 가짓수는 오히려 적어졌습니다. 기존 슈퍼 마리오와 파이어 마리오 외엔 코끼리, 거품, 드릴 정도가 다입니다. 변화와 혁신이 중요한 것에 비해 변신 아이템이 이렇게 줄어든 이유는 유저가 게임에 빠르게 익숙해지기 위해서입니다. 아까 언급했듯 [마리오 원더]의 적과 오브젝트 중 새롭게 추가된 것들이 많습니다. 언뜻 보면 유저에게 좋아할 부분이지만, 사실 너무 다양하기만 하면 실속 없이 난잡해지기 쉽습니다. 잘못하면 플레이어가 게임에 적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유저가 조종하는 주인공의 행동 가짓수를 적게 만들거나 천천히 늘리는 편입니다. 그래서 초반 튜토리얼 지역인 토관바위 평원에선 변신 아이템이 2가지만 등장합니다. 그것도 오랜 전통의 파이어 마리오와, 광고에서 자주 밀어준 코끼리 마리오 입니다. 새로운 변신은 그 이후에 등장하며, 배지도 조금씩 추가됩니다. 이것은 기믹이 다양해졌을 때의 단점을 어떻게든 줄이기 위한 노하우로 보입니다.
(오래된 시리즈의 관록으로도 볼 수 있다)
이번 신작의 간판 변신
변신 종류는 줄어들었지만 각자의 역할이 뚜렷하고 활동 범위에 빈틈이 없는 편입니다. 파이어 마리오는 원거리 공격, 코끼리 마리오는 근접 공격과 물 뿌리기, 거품 마리오는 횡이동의 확대와 벽 너머로 공격, 드릴 마리오는 종이동의 확대와 빈틈 파고들기를 할 수 있습니다. 스테이지도 각각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월드를 순차적으로 진행하지 않기 때문에 스테이지의 변신 활용도가 자유로운 편입니다.
각자 역할이 뚜렷하다
다만 마스터할 때는 난이도가 꽤 높습니다. 원더 플라워를 얻으면 플레이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려운 스테이지에선 변화를 초반부터 주었습니다. 이때 기승전결 구조도 이전 것을 취합니다. 특히 마지막 스테이지는 지금껏 사용한 배지를 전부 활용했는데, 분량도 많고 난이도도 매우 높아서 필자도 포기할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목숨을 최대로 모아도 모자를 수 있다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마리오 원더]는 기존 시리즈에서 큰 변화를 준 작품입니다. 특히 원더 플라워를 획득하면 게임 규칙이 급격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유저에게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바로 알려줘야 했습니다. [마리오 원더]는 이에 성공하여 유저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미리 낌새를 보이거나 설명하는 것도 있지만 필자는 눈에 보이는 것도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원더 플라워를 획득했을 때 주변이 일렁이고 환경이 달라지면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암시했습니다. 직후 무언가가 변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구성이나 연출 등이 달랐습니다.
사실 위로 올라가는 장면이 있었다
첫번째로 적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돌진뿌리 무리가 달려오거나 거대한 뻐끔플라워가 배관에서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이럴 땐 해당 적이 그 스테이지 초반부터 등장하여 컨셉과 위험성을 어필합니다. 그리고 유저가 원더 플라워를 획득하는 순간 그 위험성이 강화되어 주인공을 쫓아가는 편입니다.
[마리오 원더]에선 뻐끔 플라워가 걸어다니며 노래한다
두 번째로 주인공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뭐든지 먹어 치우는 와앙그리의 행렬'이란 스테이지에선 마리오가 굼바로 변신했습니다. 언뜻 보면 몬스터 무리 사이에서 위장 플레이가 가능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저는 스테이지 처음 시작할 때 굼바가 와앙그리에게 잡아먹히는 걸 봤습니다. 주의해야 할 적의 특징을 스테이지 초반부터 소개한 겁니다. 이후 플레이 방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예습한 유저는 적으로 변신한 후 플랫폼 게임에서 잠입 액션을 시도합니다.
굼바가 피포식자라서 나무 뒤에 숨었다
세 번재로 환경이나 게임 규칙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웰컴 투 플라워 왕국! 시작의 화원' 스테이지에선 가만히 있던 토관이 움직이고, '콱콘도르가 날아온다!'스테이지에선 탑뷰 시점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선 전개의 충격을 더하기 위해서인지 암시나 설명이 극도로 적은 편입니다. 그래서 유저가 상황을 이해할 정도의 시간을 짧게나마 주곤 합니다. 보통은 게임 전체 진행 중 초반에 이러한 배려가 보입니다. 그 이후로는 빠르게 시작할 때가 많습니다. 탑뷰 시점 전환은 '방향 전환 조심! 짜자룡 유적' 스테이지에서도 발생하는데, 그때 바로 용암이 주인공을 덮치려 합니다.
직접 움직일 시간을 준다
추천
닌텐도는 [마리오 시리즈]에 언제나 진심입니다. 매너리즘에 빠지긴 했지만 벗어나기 위해 언제나 노력했고, [마리오 원더]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내년이면 40주년을 맞이할 작품이면서 아직도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합니다. [마리오 시리즈]는 언제나 누구에게든 추천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마리오 원더]도 그러하지만, 최후반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편입니다. 어린 자녀분들과 함께 즐길 수도 있지만, 도전적인 플레이를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오 시리즈]의 매너리즘에 실망하신 분들은 놀라운 경험을 만끽하실 수 있습니다. 이 점만 주의하신다면 좋은 게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초보자를 위해 코인을 대량으로 주는 보너스 스테이지도 있다
다음편 예고
마리오의 변신은 성능별로 차이가 존재하지만 쓸모없는 것이 존재하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각 변신을 필요로하는 스테이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택지가 있으면 정답이 존재하듯, 게임에서 무언가를 필수로 요구하는 상황도 분명 나타납니다. 그래서 마리오의 각 변신은 대체할 수 없는 능력으로 밸런스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다른 게임의 직업도 보통 그러한 편입니다. 그러나 밸런스를 언제나 알맞게 조절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든 일입니다. 실제로 성능으로 기피되는 캐릭터나 직업은 흔히 찾을 수 있습니다. 게임 밸런스 작업이 워낙 어려워서 생긴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디서는 의도적으로 망치기도 합니다. 이는 개발자가 무능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리하고 과감한 노하우를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어느 게임을 통해 왜 특정 직업을 박해받도록 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다음에 다룰 작품은 [유니콘 오버로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