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 Dec 27. 2022

2022년의 8할, 프랑스

잘 가라 2022년.


2022년은 안 좋았던 일보다 좋았던 일이 더 많았던 해였다. 마음이 복작했던 올 초의 일은 별로 쓰고 싶지 않다. 그래도 덕분에 내 사생활을 인터넷에 적당히 공개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에 대대적 필터링을 했으니 하나는 배운 셈이다. 액땜으로 시작한 한 해였다. 



2022년의 8할을 함께한 프랑스


2021년 베를린을 떠나 바르셀로나로 이사해보겠다던 우리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서 부서졌지만, 그 덕에 2022년 우리는 제2의 옵션으로 프랑스의 곳곳을 다녀보게 되었다. 물론 결혼식 준비도 한창이었지만, 우리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고 싶었다.


툴루즈의 아기자기한 핑크벽돌 건물들
이런 베케이션하우스를 가지고 싶다고 소망해봤던 아비뇽의 서머 하우스


그중에서도 젊은 기운이 넘치는듯하면서도 가족들이 살기에도 아기자기한 핑크도시의 툴루즈가 너무 딱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지중해 날씨는 아닌 애매한 날씨와 너무 어린 학생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를린에서 느껴보지 못한 늙은이의 마음이 그곳에서 들은 걸 보면 확실히 학생들이 많은 도시가 맞다.


더군다나 무엇보다 여행을 즐기는 우리에게 교통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베를린을 돌아오는데만 비행기를 갈아타 6시간이 넘게 걸리니 한 번 가면 아무도 다시 못 만날 것 같았다. 아무튼 툴루즈를 여행하게 되었고, 이사까지는 못 가게 되었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도시가 하나 더 생기게 되었다.


그 밖에 가족과의 여행지로 갔던 아비뇽에서 이런 베케이션하우스가 있으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가 지냈던 에어비앤비 같은 곳과 도시에서 예산은 맞지 않겠지만 비슷한 삶을 살 수는 있을 것 같다. 






결혼하다


또 다른 가장 큰 얻음은 아무래도 6월에 있던 우리의 결혼식이 아닐까 싶다.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게 보내보자고 열을 다해 준비한 인생 파티. 힘들면서도 고된 준비과정이었지만 디데이가 다가오는 그 순간까지 은근히 이 과정을 즐겼던 것을 보면 역시 우리는 파티를 좋아한다. 베를린에 산다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본다는  디제이 셋까지 준비했고, 파티의 모든 데코를 손수 준비한 우리. 그 이후로도 이어진 프랑스와 한국 가족들과의 만찬행렬. 그리고 세 번의 혼인 신고. 잘 살아야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겼다.



대신 결혼을 하니 그다음은 뭐냐-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9년 연애 끝에 결혼을 한 것도 우리 결정이었고, 우리의 편의를 위해서였다. 누가 뭐라 한들 그동안 알아서 잘 살아왔던 우리의 인생이 혼인 도장을 찍었다고 달라질 일은 없다. 또 다른 변화라면 아마도 싸우면 -안 되면 헤어지고 말지,- 보다는 -안 되니까 다른 방법을 같이 찾아보자,-는 마인드가 조금 더 강해졌다는 것이 변화라면 변화겠다. 




캐나다, 한국, 그리고 논스톱 여행에 대한 생각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만나 같은 해에 결혼한 친구커플의 결혼식이 캐나다에서 열렸고, 덕분에 난생처음 캐나다에 가보게 되었다. 대자연의 끝판왕인 그곳에서 난생처음 캠핑카를 빌려 이틀간 샤워를 안 하고 물도 모자란 원시적인 경험을 해봤다. 결혼식 숙소에 도착해 따뜻한 물이 펑펑 나오는 샤워를 하면서 역시 문명은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역시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캠핑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캐나다 밴쿠버아일랜드에서의 캠핑.
경주 한옥스테이


캐나다를 갔다 온 지 2주도 안 되어, 한국에 다녀왔다. 3년 반만이었다. 얼마나 편하고 살기 좋은 나라였는지를 다시 깨닫고 돌아왔다. 물론 다시 돌아가서 일까지 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출출하면 편의점으로 쪼르르 내려가 각종 간식을 사 먹는 나를 보며, 나는 간식을 잘 안 먹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유럽에 내 입맛에 맛있는 간식이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각종 기술의 발전으로 더듬대는 나를 보며 -촌스런 유럽인이 다 되었네,- 생각했다. 한국은 아무래도 역시 빠르다. 


그렇게 기술이 발달한 한국에서 프랑스인 남편에게 한국의 미를 보여주고자 쉴 새 없이 한옥을 다녔다. 익선동을 매일같이 드나들었고, 경주도 갔다. 워낙 감정 표현이 없는 남편이 진짜 좋아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대신 익선동 카페에서 먹었던 바나나 크로플이 맛있다고 했고, 경주에서 먹었던 백순두부 백반에 반했다. 신촌에서 9년 전의 추억 장소들이 전부 없어져 다른 곳으로 바뀐 모습들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남편을 보면서, 대체 한국의 어떤 면을 기억하고 좋아하는 것인지 여전히 감이 잘 안 섰다. 다행히 홍대에서 처음 데이트 장소였던 치킨집은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시차가 2주마다 바뀌는 논스톱 여행은 몸 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만두기로 했다. 지난 10년 동안 쉴 새 없이 비행기를 탔던 것 같다. 어떤 해는 일주일에 세 번씩 모두 다른 국가와 도시에 있던 적도 있었다. 올해도 만만치 않았다. 이제 내년부터는 조금 우리의 건강과 지구의 건강을 위해 논스톱 비행은 잠시 쉬어갈 것 같다. 그 대신, 햇빛을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곳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여정은 2023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아무튼 우리의 지중해를 향한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2022년은 앞으로의 인생을 위한 재시동을 거는 시기였지 않았나 싶다. 잘 가라, 2022년. 

















매거진의 이전글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