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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Nov 07. 2022

3년 반 만의 한국.

"3년 반 만에 오셨네요, " 평소 같으면 자국민 찬스 한국인 자동출입국심사로 듣지 않았을 말. 프랑스인 남편과 들어왔던 '외국인' 출입국심사대는 사람을 거쳐야 하니 들었던 인사말이었다.


이번 한국 여행은 3년 반 만이었다. 물론 일을 하고 휴가는 주말에만 가끔 내어, 과감하게 한 달행을 계획했다. 유럽시간은 4시간만 맞춰주었다.


길에 치이면 있는 각종 편의점에서 사 먹던 바나나우유와 삼각김밥. 점심시간 상관없이 24시간 운영되는 김밥집에서 시키는 라면 김밥 만두. 평소에 집에서도 해 먹지만 그래도 오래 끓인 것이 더 맛있는 분식집과 장터 떡볶이. 보글보글 끓인 얼큰한 찌개와 소주 한 병. 지방에 내려가던 길에 들린 휴게소에서 사 먹는 소떡소떡 같은 간식. 아무 데나 들어가도 맛있는 백반집. 고깃집 된장찌개.


소소하지만 나 같은 외노자에게 한국에 오랜만에 오면 생각나는 음식들은 고등학교 때, 대학생 때 혹은 어릴 때 줄곧 먹던 지극히도 평범한 맛들이다. 그 맛이 가장 기억이 나고, 그걸 먹을 때 "아, 내가 고향에 왔구나."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한국 참 오래 멀리 떨어져 살아도 입맛은 그대로네 싶고.



음식도 음식이지만 이번 여행은 아무래도 내 사람이 다를 여러 번 느끼고 간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 왜 이렇게 친절한지. 베를린 너무 오래 살았다.


우리가 결혼식을 유럽에서 올린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제 유럽에 터를 잡은 우리가 한국에서 지인을 초대해봤자 얼마나 오겠느냐, 는 거였고 사실 새벽 늦게까지 축하하는 결혼식이 낯설만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올해 한국에서 적어도 인사는 올리자, 는 마음으로 가족들과 친한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정말 예상치 못하게 많은 축하선물과 축의금을 받았고,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먹고 싶어 했을 맛집을 찾아 데려가 주었고, 없는 시간을 쪼개 내어 우리를 만나주었다.


소주와 맥주를 기울이며 찌개 한 술을 뜨는 데 눈물이 찔금나던 적도 있고, 가족들과 드러누워 한국 TV를 보다가 깔깔 대며 맥주를 마시고, 친구들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아무렇지 않게 나누던 수다들. 갑자기 문득 "이런 소소한 일상이 이제는 소소하지 않은 특별한 일이 되었네, "라는 생각이 들어 먹먹한 기분이 잠깐 들기도 했다. 나이가 들긴 했나 보다.


"한국 살아도 정작 자주 못 만나, "라는 말이 가장 위안 아닌 위안이었다.


이 오랜 기간 동안 멀리 떨어져서 몇 번 만나지도 못한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어 참 다행이고, 우리가 한국에 혹여나 오더라도 만날 사람은 있구나 싶어 다행이고 감사했었던 이번 여행이었다.


다만 마지막 주에 있었던 큰 사고가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누구든지 당사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 끔찍하고, 20대 친구들이 날개도 펴보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간 것이 너무 애통할 뿐이다.



...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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