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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Nov 30. 2022

여행하며 일하기, 4년 전의 꿈.

2018년 여름, 무려 4년 전 일이다. 대학 다닐 때 한 수업에서 알게 된 성격이 아주 쾌활하고, 가끔 돌아이 같던 프랑스 남자애 하나가 있었다. 그렇게만 기억했는데 어떻게 하다가 같은 팀플을 하게 되어서 인터넷상으로 간간히 연락을 하고 있는 친구였다


딱히 아는 건 많이 없고 그냥 굉장히 외국에 나가고 싶어 하고 호기심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파리 출신인데 인별 그램을 보면 최근에 뉴욕에서도 사는 것 같고 동남아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 친구가 한 여름에 베를린에 놀러 온 것을 봤고, 딱히 할 일도 없어 연락을 해봤다.

-너 베를린이니?
-너 도야?

이 정도로 우리는 안 친했다.

- 나 베를린에서 산지 3년 됐거든.
- 만나자! 나 여기 한 달 동안 있을 거야. 여자 친구랑 우리 강아지랑!
- 나 바르셀로나 가는데.. 갔다 와서 보자. 일주일 뒤에.

그렇게 그때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내 남편을 데리고, 집 앞에 있는 힙스터가 넘쳐나는 비어가든에 나갔다. 내 남편이나 이 친구나 프랑스인이라는 공통점이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갔다. 친구의 여자 친구가 라틴계 미국인이었는데 성격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한 시간짜리 맥주라고 생각한 게 어느새 해가지고 밤이 깜깜해져 버렸다.

'여기 왜 왔냐. 요즘 뭐해먹고 사냐, '고 물어봤는데 역시나 리모트 잡을 가진 디지털 노마드로 산다고 했다. 그동안 거쳐온 도시는 수 없이 많지만 그들이 가장 좋아한 도시는 미국 뉴욕과 태국 치앙마이라고 했다. 철없는 줄 알았던 이 친구는 4년 전부터 본인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가 뭘 하는지 바로 알아듣길래 너희도 디지털 마케팅하냐고 했더니, 그것도 하지만 주로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한다고 했다. 코딩을 하는 친구들은 아니고 회사를 차렸다고 했다.


커플이 같이 일하면 괜찮냐 하니 아직까진 괜찮다고 했다. 여자 친구는 우스갯소리로 아직까지는-이라고 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질문에 질문이 쏟아졌다. 우리가 당시 꿈만 꾸던 리모트 삶을 살고 있는 커플인지라 이야기할 것이 산더미였다. 당시 이들은 디지털 노마드란 개념이 상당히 새로운 개념인데 우리가 관심 있어하니 굉장히 반가워했다.

그러면서 곧 많은 회사들이 이러한 업무형태로 바뀌어 나가는 게 굉장히 자연스러워질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물론 사람 성향마다 어떻게 업무 결과물이 나오는지는 달라지겠지만 회사로서는 확실한 비용절감이 되니 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 세계가 코로나가 터지며 집에 갇혀 재택근무를 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여행하면서 살게 되면 돈도 많이 깨질 텐데 왜 한 달 3천 달러가 넘는 렌트를 내며 뉴욕에 살았냐고 물어보니 친구의 로망이었단다. 한 번쯤은 꼭 살아보고 싶었다고. 뉴욕은 사람을 좋아하는 도시이고 일자리야 항상 있는 곳이라며 망설임 없이 직진했다고 했다. 그리고, 둘이 사업을 시작했다.

뉴욕을 떠나야 했던 것은 내 친구의 비자 문제였다고 했다. 리모트 생활 2년 이후 강아지도 생기고 여행이 점점 힘들어지면서 비자 해결을 위해 결혼절차를 밟는 중이라고 했다. 내년쯤 정착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다만 미국이 워낙 결혼비자 심사에 까다로워 1년 가까이 대기 중이었고, 거의 포기상태라고 했다. 이들은 결국 그다음 해, 프랑스에서 결혼을 했다.

그들은 우스개 말로 원래 일을 구상하고 남에게 시키는 전문가라고 했다. 1년 뒤엔 엔지니어를 고용하고 디자이너를 고용하고. 본인은 중요한 것만 하고 그 일을 특출 나게 잘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걸 맡긴다고 했다. 지금 이 커플은 최대 주 5회 하루 4시간 정도 일하는 게 고작이라고 했다.

그 대목에서 "4 Hour Work Week"!!!! 이라며 내가 요새 읽는 책 제목을 외쳤더니- 씩 웃으면서 너도 그 책 아냐고, 자기 삶을 송두리째 바꿔준 책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 친구는 말했다.

"너도 할 수 있어"라고.


서울에서 일하고 여행하기
프랑스 시골에서의 리모트 워킹.
그리스 크레테섬에서의 워케이션 스팟. workation: work+vacation


그리고 그 때, 나는 벼르고 벼르던 12월 방콕행 편도 비행기를 샀다. 나도 직진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는 가끔씩 여행하면서 일도 하는 일명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가 도왔는가도 싶지만, 코로나 이전에도 끊임없이 시도해본 것 같다.


그리고 요즘은 이 삶이 100% 좋지만은 않다고 느끼는 중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아주 잘 즐기고 있지만 말이다.

 

과테말라 안티구아 한 카페에서, 일하다가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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