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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Nov 15. 2022

아무튼, 아직 베를린.

작년 이맘때쯤 우리는 베를린을 떠나 바르셀로나를 갈 계획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스페인에 가겠다는 나에게 회사에서 프리랜서 방향으로 계약서를 짜주었다. 나는 에이전시 도움 없이 혼자서 그 수많은 서류 작업들을 진행해나갔다. 중간에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때도 많았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아파트 발코니에서 일 년 내내 햇살 가득한 아침을 맞으며 일을 하는 내 모습을 그리며 그 힘든 과정을 버텨냈다.


그리고 결과는 대 실패.


내 비자가 거절당했다.


뭔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실패라는 결과에 오히려 "아, 다행인 건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정규직에서 프리랜서로, 그 이후 스페인에서의 연봉, 여러 사회 복지 조건 등등 독일에서 쏟아부은 내 세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서류를 준비하는 내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비자 불합격 소식을 받았을 때, 회사에서 내 정규직 계약서를 스페인으로 바꿔줄 수 있고, 비자를 서포트해주겠다고 했지만 이미 내 마음은 스페인과 많이 멀어져 있었다.


그 수많은 세월을 함께한 유럽인 파트너는 당장 내일이라도 짐을 싸서 바르셀로나에 가면 그만이었다. 그 많은 시간을 유럽에서 지냈던 나는,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당연히 비거주자, 외국인,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비유럽인이었다.


'그때 당시 결혼을 했었다면 조금 더 모든 것이 순조로웠을까, '

'왜 다르게 시도해보지는 않았을까, '


까스떼야노, 까딸란 어, 영어로 쓰인 7장이 넘는 비자 거절 사유 문을 읽으며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서류 작업으로만 500유로 (한화로 당시 70만 원 정도)를 썼는데, 그 모든 서류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베를린에서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저께 나갔던 모임에서도 또 한 커플이 베를린을 떠난다고 했다. 올해만 벌써 두 번째로 친구들이 떠나간다. 다음 주에 만난다는 다른 친구들도 본국으로 돌아가는 계획을 짜고 있다고 이미 전해 들었다. 물론 모두가 베를린을 그리워할 것을 알면서도, 또 다른 인생의 챕터를 위해 떠나간다. 


베를린에 사는 수많은 외국인들은 그렇게 베를린을 살아간다. 대다수가 베를린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헤어짐을 미루고 미루면서 말이다.


1년 중, 나와 내 프렌치 남편이 고작 베를린에 붙어있는 기간은 다 합해 6개월이 안 될지언정, 그래도 우리는 우리 집을 베를린이라고 부르고 있다. 항상 우리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고, 나가 놀 친구들이 있고, 우리의 일상이 자리하며, 합법적으로 우리 둘 다 장기거주를 할 수 는 곳.


이번 주말에 베를린에 눈이 올 것 같다. 벌써부터 밤공기가 매섭고 차갑다. 어둑어둑하고 기나긴 겨울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며 또다시 비행기표를 뒤지고, 숙소를 알아본다. 지겨울 법도 한데 새로운 장소가 주는 묘미, 그리고 새로운 자극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니 계속 해본다.


그냥 이렇게 베를린을 주거지로, 여러 국가를 여행하고, 일하면서 계속 살까도 싶지만 우리도 안다. 우리도 그 끝을 미루고 있을 뿐,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이 도시에서의 마지막 날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무튼, 아직 베를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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