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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Jun 14. 2023

마르세유에서 새 집 꾸미는 한 달.

프랑스 마르세유 이야기 06


지난 몇 개월이 폭풍같이 지나간 것 같다. 프랑스에 새로운 집을 장만했고, 독일에서 일자리를 잃고 구하고의 반복, 그런 와중에 코칭을 계속했고, 개인적인 이유로 프랑스어를 매일 2시간씩 공부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하루에 나는 언젠가부터 쉬면서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항상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던 것 같다.


다행히 일자리는 금방 구했고, 나의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한 달간의 휴식기간을 가지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이직을 할 때면, 의도한 것은 아닌데 항상 6월쯤 쉬고, 7월에 일을 시작했던 것 같다. 참 다행으로, 지구 어디에 있던지 6월은 항상 나의 처진 기운을 알아서 북돋아줄 만큼 날씨가 좋았던 것 같고, 지금 내가 있는 남부의 마르세유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나의 성격상 완전히 늘어져 쉬는 것은 못한다. 이 넘쳐나는 나의 에너지를 새 집을 꾸미는 데 쓰기로 했다.


독일 베를린에서 부엌 같지 않은 간이 부엌을 부엌의 모습으로 만들기까지 5년의 세월이 걸렸다면, 이곳 프랑스 마르세유에서의 시작은 부엌부터 확실히 다르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주방. 한국에서는 너무 당연한 것들이 유럽에서는 왜 그렇게 힘이 드는지. 혹시라도 쇼핑 뽐뿌가 올 때면, 베를린에서 필요한 것들을 갖추기 위해 원하지 않지만 일단 필요해서 샀던 경험을 곱씹었다. 어둡게 칠해져 있는 벽을 밝은 색으로 채워나가느라 이런 것들을 조금 천천히 살 여유가 있었다.





배송 오류가 나서 아직 테이블이 없는 우리 새 집 발코니. 그래도 간이로 이용하고 있는 박스에 살시송과 치즈를 얹은 보드를 얹고, 새로 산 와인잔을 곁들이니 나쁘지 않다. 예전의 나였다면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은 것에 신경이 곤두섰겠지만, 지금의 나는 나의 소중한 한 달의 휴식기를 그런 예민함으로 망칠 수는 없다. 야외 테이블이야 나중에 사면된다.


그래도 대신 필요한 것들을 사려다 보니 역시나 한꺼번에 사고, 주문을 해야 했다. 다행히 베를린처럼 배송이 엉망진창이지는 않아 다행이다. 작은 사무실 겸 게스트룸에 먼저 소파겸용 침대를 가장 먼저 들이고, 큰 방의 침대, 작은 가구들, 그리고 내가 그린 그림을 예쁘게 담아 벽에 걸어둘 프레임까지 사들이니 남편이 '이제 좀 집 같네, '한다. 내가 "예쁜 집, "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소파와 의자 등 집에 와서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페인트칠을 하느라 샀던 간이 의자밖에 없었던지라 그 어디에도 등을 대고 편히 쉴 수 있는 의자가 없었다. 서둘러 소파와 식탁 의자 등등을 샀는데 부피가 크다 보니 배송이 느렸다. 의자가 없다 보니 항상 식당이나 바에 가서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 지친 몸을 쉬곤 했다. 그때 당시 4월. 시작하기로 했던 회사가 나의 계약을 취소하면서 나는 몸도, 마음도 참 피곤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에 한 가지씩 집안일을 마치면, 나는 의식의 흐름대로 움직인다. 매일 같이 배달원들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온라인 쇼핑몰에 배송 관련 이메일을 쓰고 하면서 프랑스어는 자연스럽게 늘어가는 중이다. 처음에는 구글 번역기에 의존했었는데, 델프 공부를 한다고 지난 몇 개월을 매일같이 공부한 것이 헛되지는 않았나 보다. 남편이 고쳐주던 문장들이 10개에서 5개로, 어느 순간 고칠 것이 없는 순간까지 되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지만 말이다.


가구를 조립할 때는 노래를 듣는 것도 지겨워 유튜브에서 한국 예능들을 틀어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나 혼자 산다, '인데, 같은 것을 또 보고 또 보니 은근히 그들이 하는 말속에 숨긴 의미가 가끔 보인다. 왠지 모르겠지만 같은 공감으로 위안을 사는 느낌이랄까. 자꾸 보니 지겨우면 예전에 즐겨봤던 스페인 시리즈 '빠끼따 살라스'를 본다. 보고 또 봐도 너무 재밌는데, 문득 내가 프랑스어를 잘하게 된다면 이런 문화나 문맥을 명백하게 이해하며 프렌치 시리즈를 볼 날이 오기는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야 할 식당들도 리스트가 빼곡히 채워져 간다. 이제야 베를린도 맛있고 세련된 식당들이 생겨나고 있어 다행이지만, 이런 곳들도 프랑스에 비하면 평균치인 것 같다. 요리를 꽤나 하게 되면서 식당에 가면 따라 할 수 없는 레시피를 구사하는 곳이 진짜 맛있는 곳이라고 여기게 되었는데, 프랑스는 내가 아직 범접하기 힘든 레벨이다. 어떻게 이렇게 요리를 잘하지. 예전에 무역일을 할 시절, 한국에서 프랑스 식재료 수입업에 종사하는 분이 나한테 '생각보다 프랑스가 요리를 잘한다는데, 맛있는 것이 딱히 없다, '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1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프랑스 남편 덕에 나는 이제 프랑스 음식이 너무 맛있다고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분을 다시 만나면 꼭 다시 이야기해주고 싶다. 조금 더 드셔보시라고.


밖에 나가지 않는 날이면 저녁마다 새로운 요리법을 찾아본다. 새로 산 요리책이 너무 예뻐서인지, 아니면 지금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우리 주방이 요리할 맛이 나서인지는 모르겠다. 베를린에서 한국 요리 인스타그램을 한창 했는데, 아마 도구빨이 갖춰졌다면 조금 더 번창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도 잘 커가고 있으니 도구는 딱히 필요 없다는 프렌치 남편. 집 앞 3분 거리에 있는 슈퍼, 프랑프리(Franprix)에 가면 베를린에서는 찾기 힘든 치즈, 버터 등 프랑스만의 재료들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작은 슈퍼에도 다양한 와인과 크래프트 맥주들이 다양하다. 살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와인과 맥주를 마셔본 사람이 이 지구에 존재하기는 할까 싶을 만큼 종류가 대단하다.



주말에는 열심히 바다에 가고, 깔랑끄에 간다. 자연이 맞닿은 큰 도시에 오길 정말 잘했다. 물론 일부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니 얼씬거리지도 말아야 할 곳은 곳곳에 존재하지만. 베를린도 이런 위험이 없는 도시는 아니다. 생각하면 끝이 없으니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야지.


6월 말이면 다시 베를린에 가야 한다. 놀 땐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5월 말 전에 왔는데 벌써 6월도 일주일이 지나간다. 1년 전에 프랑스에서 결혼식을 할 때만 해도, 우리가 마르세유에 집을 살 것이란 생각은 못했었는데 이렇게 지중해를 주말마다 만날 수 있는 곳에 우리의 따뜻한 보금자리가 생겼다. 남은 시간을 얼마나 더 행복하게 보내고 충전기간을 가질지 이것만 생각하기로 한다. 좋은 생각만 하면 좋은 일이 생길 테니까.






프랑스 마르세유 이야기 01. - 사직서는 됐고, 지중해나 가자.

프랑스 마르세유 이야기 02. - 새로운 회사의 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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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마르세유 이야기 06. - 새 집 꾸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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