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세유에 세 번째 찾아 왔다. 1월에 온 마르세유는 쌀쌀했지만, 햇빛이 쨍쨍하게 비추고 있었다. 베를린에서 친하게 지냈던 두 프랑스인 커플마저 전부 재작년, 올해 프랑스 남부로 이사를 갔다. 한 커플은 엑상프로방스, 그리고 다른 커플은 칸으로. 베를린을 오랜 시간 지낸 사람이라면 이들이 왜 남부를 선택했는지 너무 잘 알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르세유에 기회를 주고자 온 우리는 이 곳 출신이 아닌, 이 곳에 이주해 정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역시 베를린에 사는 친구를 통해 소개받은, 마르세유에 이사 온 지 몇 달 되지 않은 프랑스인 커플, 토마와 이사를 만났다. 둘 다 마르세유 출신은 아니었지만 이들이 마르세유에 이사 온 목적은 베를린을 떠나가 남부에 정착한 우리의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베를린에서 다음 목적지를 정할 때 대부분의 기준들이 세워지는데 남부 유럽으로 오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1순위가 날씨다. 그만큼 베를린의 날씨는 특히 겨울이 너무 힘들다. 오늘 만난 커플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르세유에 한 번도 와보지 않았지만 베를린 이후 다른 작은 도시에 가서 사는 것보다는 그래도 조금 더 다이내믹한 마르세유가 낫겠다고 생각했단다.
이곳에 살지 않는 우리가 여행 중에 베를린에서, 파리에서 온 프랑스인들을 벌써 세 번째로 만났으니 리모트잡으로 인한 삶의 변화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오늘 만난 커플도 베를린 회사의 일자리를 유지하고 프랑스에서 리모트잡으로 일하고 있었다.딱히 독일을 좋아하지도 않아 여행을 간다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를, 독일에 쭉 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베를린이 좋아서 꽤나 많은 시간 동안 베를린에 있던 그들은 우리와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서로서로 이야기하는 내내 무릎을 탁 치며 "내 말이 그 말이야, "하고 외쳤다.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곳에 이사를 왔다는 것이 이것저것 재고 고민하고 있는 우리와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그들의 리스트가 툴루즈, 바르셀로나, 몽펠리에 등 우리와 딱히 다르지 않았다는 것에 알 수 없는 동지애가 느껴졌다.
"이런 과감한 결심을 어떻게 했냐,"고 물었더니, 최근 토마가 몸이 안 좋았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베를린에서 병원을 전전하며 잘 되지 않는 독일어로 얼버무리는 자신이 한심스러웠고, 병원을 나와 회색빛인 하늘을 보며 '이게 내가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르세유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참 별 것 없다.
아직은 그들도 마르세유에 아는 친구들이 많이 없고, 도시 자체를 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들과 그들 지인에 의하면 매년 파리에서 마르세유로 이사 오는 프랑스인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이사 온 뒤로 가장 좋은 것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매일 아침을 맞는 것이란다. 베를린처럼 이곳 사람들의 시민의식이 뛰어나진 않아도, 자전거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지는 않아도, 날씨가 항상 좋은 것이 꽤 큰 장점이 된다고 했다. 마음만 먹으면 오픈 테니스 코트에서 테니스를 치는 삶이 좋다고 했다. 곧 보트 운전사 자격증이 나와 보트를 빌려 마르세유 근처에 널려있는 칼랑크(calanques: 바다로 둘러싸인 좁고 긴 만을 뜻하는 코르시카어, '칼랑카'에서 유래한 단어)들을 돌아다닐 계획이라고 했다. 베를린은 회사 일로 1년에 2,3번 간다고 했다. 낯선 곳에서 고향사람을 만난 기분이 이런 것일까. 베를린의 인연은 역시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