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을 통해 열심히 살고,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했다. 다른 방식으로 산다면 나도 참 빼놓을 수 없는 한국인 중 하나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나도 유럽에서는 이들처럼 살아갈 뿐이네-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꼿꼿이 자기 의지대로 사는 사람들이 신기해 보였고, 한편으로는 대단하다 싶다.
20대의 나는 한국에서 꽤나 청개구리 같았다. 한국의 이런저런 모습이 싫고, 정형화된 것이 답답하고, 각 잡힌 모습이 싫었다. 그렇게 해외에서 살기를 오랫동안 꿈꿔왔다. 새로운 곳에서 멋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전 세계인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 한국에서만 있기에는 너무 답답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랬다고.
그렇게 스페인에서 유학을 보냈고, 일을 했다. 스페인 남자와 스페인에서 평생을 살 것처럼 하던 나는 온 데 간데없고, 프랑스 남자와 10년을 지지고 볶으며 팍스에 결혼까지, 독일과 프랑스를 왔다 갔다 살며, 독일어를 하니 프랑스어를 하니 하며 아직까지 0개 국어인 채로 유럽에서 잘 살고 있다.
코로나로 리모트잡이 활성화 되기 이전에도 나는 리모트 잡을 꿈꿔왔다. 이때 당시의 난 유럽에서도 유럽인들과 조금은 다르게 살기를 바랐었나 보다. 나와 플로는 배낭을 메고 동남아를 여행하며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되어 여행하고 일하며 다닌 국가와 도시는 셀 수 없이 많아졌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우리가 꿈꿔왔던 그대로, 거의 전 세계에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멋진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런데 머릿속에 그렸던 진짜 멋진 사람들은 세상에는 생각보다 아주 많지는 않았다. 대신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많이 만났다.
그렇게 많은 곳을 여행한 우리도 어느 순간 부터 점점 힘든 여행은 그만하고 싶어졌다. 프랑스 남부에 집을 사기로 결정했던 그때부터였을까. 사실 그전부터 우리의 여행의 방향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예측 불가능한 문제가 벌어져 우리 관계까지 힘들게 하는 그런 여행들은 이제 하지 말자고 했다.
'우리의 삶, 가치관'이라고 운운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놀랍다. 언제부턴가 나에게 '나는 이렇게 살고 싶어, ' 보다는 '우리는 이렇게 살자, '가 되었는데 처음에는 이게 너무 힘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혼자 잘만 해오던 것들이 파트너라는 변수에 의해 어긋나는 것만 같았다. 고집센 프랑스인에 유럽인은 덤이다.
아무튼 무려 2,3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둘은 꽤나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며 새로운 것을 계속 추구한다고 생각했고, 나이 들어서도 그렇게 살겠거니 했는데 그것도 역시 나이가 한몫했었나 보다.이제는 조금은 안정적이고 싶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만 살고 싶어졌다. 외국에 오래 살다 보니 생긴 감정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로부터 물음표를 가지지 않는 삶이 가끔은 생각보다 편할 때가 있다.
한국의 있는 친구들이
-너는 평생 커리어우먼으로 결혼 따위라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라든가,
유럽의 있는 친구들이
-이제 내년엔 어디에 있을 예정이야?
-아직 계속 파티하고 여행하는 거 아니었어?
라는 식의 질문들을 연 차례 받는 것을 보면 나는 꽤나 반전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맞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들이 하니 다 하는 식의 삶은 앞으로도 절대로 살지 않을 것 같지만. 적어도 완전히 청개구리였던 그 시절은 저 멀리 20대의 우리가 다한 것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