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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Mar 02. 2023

마르세유에서 집을 사기로 했다.

독일과 프랑스를 오가는 삶의 시작.

결국 마르세유에서 우리집을 사기로 했다. 몇 년간 고민하고, 여러 방향들을 알아보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앞 뒤가 딱딱 들어맞는 옵션이라고 생각되었다. '이사를 가자,'고 생각했던 마음이 '휴가를 보내는 집을 마련해보자,' 고 바뀌니 결정이 꽤 쉬워졌다.  


심경의 변화는 지난 여름, 가족들과 함께 아비뇽을 여행하면서 머물렀던 수영장이 딸린 예쁜 별장같은 숙소에서 문득 남편에게 '우리도 베케이션 하우스가 있으면 좋겠다,' 고 말하면서 시작되었다. '원래 살 집도 없으면서 무슨 베케이션 하우스를 생각하나,'라고 웃어 넘기려 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딱히 순서가 정해진 것은 없었다.  이동이 용이한 직업을 가진 우리가 딱히 지금 나쁘지 않은 베를린을 뒤로하고, 다른 곳으로 훌쩍 이사를 갈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지난 7년 동안 매년 수많은 곳들을 여행하던 목적은 단 하나였다. -베를린의 잿빛 겨울을 피해 햇빛이 있는 곳에서 행복하게 보내는 것.-


'지금 베를린의 삶이 좋고, 마르세유의 따뜻한 햇살이 좋다면 둘 다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마르세유로 아주 이사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베를린의 부족한 햇살을 채워주는 도시가 될 수 있을까?'가 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게 마음을 바꾸니 낯설기만 했던 마르세유도 점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도시가 워낙 크다보니 세번째 왔는데도 가지 못한 곳이 더 많았다. 이곳은 툴루즈처럼 학생들만 있지도, 몽펠리에처럼 작은 마을같지도, 니스처럼 할아버지,할머니들만 있지도 않았다. 베를린에서 자주가던 크래프트 맥주집들, 개성 있는 카페들이 많이 보였다. 베를린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라 덜 낯설었다. 물론 베를린만큼 국제적인 도시가 되기에는 아직까지 많이 멀어보이지만, 이런 것이 또 남부의 매력이 아니겠냐는 생각을 했다.


1월의 겨울. 두꺼운 외투를 내려놓고, 셔츠만 입은채 햇빛이 내리쬐는 바깥 테라스에 앉아 카푸치노를 마시며 '여기 나쁘지 않은데,' 싶었다. 같은 시기의 베를린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큰 돈이 들어가고, 신경 쓸 것이 한 두군데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지구상 어딘가에 우리집이, 그것도 우리가 그렇게 바라던 지중해 근처에 생기게 된다는 사실은 걱정도 되지만 설렘이 더 가득했다.


심지어 그렇게 돌아가고자 했던 바르셀로나가 처음부터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이곳에서는 살면서 도둑을 두 번, 아니 세 번은 맞은 것은 일도 아니었고, 인종차별을 수시로 당한 것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 도시에 돌아가고 싶어했던 것은 분명 나에게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이 더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베를린으로 이사오기 이전, 이 도시도 지금만큼이나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지금 뜨고 있는 베를린," 이라는 막연한 이야기만 무성했었다. 그 때만해도 길을 다니면서 가끔씩 인종 차별 발언을 듣거나, 그래도 독일어를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요새는 그런 일이 덜한 느낌도 없지 않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이웃들이 혹시라도 우리 집에 맡겨진 택배를 픽업할 때면 대뜸 먼저 영어로 이야기를 건넨다. 곳곳에 즐비했던 맛없는 식당들은 이제 옛날 이야기 같다. 베를린에 각종 세련되고 맛있는 식당들이 늘어난 것도 또 다른 변화라면 변화다. 예전에는 일본 라멘을 먹고 싶다면 지하철 우반(U-bahn)을 타고 에스빈(S-bahn)을 갈아타 겨우 식당에 도착해야 했다면 이제 구글맵에 일본 라멘을 검색하면 꽤나 그럴싸한 식당들이 베를린 곳곳에 여러 곳 뜬다. 우리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한국 고깃집 체인 2호점이 생긴 것만 봐도 그렇다. 집 앞 대형맥주집에서는 바텐더며 손님들이며 모두가 시끌시끌 영어로 이야기를 한다. 여기가 런던인지, 베를린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다.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도심 인근의 낙후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인과 돈이 유입되고, 임대료 상승 등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이 문제라고는 하지만, 사실 지금의 베를린은 그만큼 또다른 매력이 있는 도시가 된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여기는 이 도시들이 처음부터 그렇지는 못했듯이, 지금 마르세유라는 이 새로운 도시도 우리의 새로운 매력덩어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눈여겨 본 아파트의 오퍼를 받았고 몇 주 뒤 바로 계약서를 썼다.


그렇게 바라던 지중해 근처에 드디어 우리집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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