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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일하고, 육아하고, 이직하고, 이사준비.

죽을 만큼 힘들었던 지난 3개월.

by Sun

지난 7월. 이직에 성공했다.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는 육아휴직 이후의 복직, 어린이집 적응, 돌잔치, 국가 간 대이동 준비가 함께 있었다.


3월부터 나의 삶은 전체적으로 대혼돈 그 자체였다.


현재 있는 회사와 네고를 통해 프랑스 계약서로 옮길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봤지만, 은근히 신경질적인 새 매니저. 일주일에 한 번은 오피스에서 보면 좋겠다며 은근히 들어오는 압박 등.... 나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였다.


몇 년 전부터 최종까지 가더라도 안 뽑히는 경우도 자주 있었기에 한번 시도나 해보자는 식으로 이직 준비를 했다. 그러나 한번 시도나 해보자는 식으로 준비하기에는 너무나 치열했던 지난 두 달이었다. 코로나 이후로 너도나도 리모트잡에 대한 수요가 많아 경쟁은 예전과 달리 너무 치열했고, 딱히 일자리가 많이 없는 마르세유로 이사 가려는 나에게 리모트 잡은 유일한 희망이었으니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한 회사만 해도 적어도 5단계는 거쳐야 하니 여러 회사에 지원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직에 필요한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인터뷰를 준비하고, 과제에 발표까지. 매일매일 버텨내고 이겨내는 하루하루가 지속되었다.


6시 땡치면 하루일과를 마감하던 저녁이 있던 유럽의 삶은 아기를 낳고 졸업한 지 오래였다. 6시에 아기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밤 9시쯤 나는 거의 매일 같이 인터뷰 준비를 하고, 3시간은 족히 걸리는 과제들을 해나가야 했다.


프랑스에 이사 가고 나서 일을 구해도 늦지 않았을 텐데 나는 굳이 지금 이직 준비를 감행했다. 육아휴직으로 돌아와 드디어 다시 탄력 붙은 나의 일에 대한 감을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복직한 회사에서도 다시 인정받고 사회인으로 돌아가 나의 몫을 해내고 성과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행복감과는 또 다른 쾌감이 있었고, 나는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전부터 업계의 최고라고 여겨지던 사람과 1:1로 인터뷰를 보고 있었다. 마치 연예인을 보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엄청 똑똑한 사람 앞에서 시험대에 올라온 그런 기분을 정말 살면서 오랜만에 느껴봤는데 바로 그 분과의 인터뷰였던 것 같다. 이 회사에 떨어져도 이 사람과의 인터뷰는 통과하고 싶었다.


결과는 합격.

나 은퇴해도 되나 싶은 순간이었다.




어린이집 들어가고 적응하는 데 두 달 반이 지난 돌이 갓 지났던 딸은 들어가기 무섭게 감기를 달고 살았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문을 닫던 도움이 잘 안 되던 어린이집, 그리고 스트레스성으로 자주 아프던 나와 남편. 시간이 갈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아주 사람 속을 들들 끓게 하는 듯 수동적 공격성을 자주 보이던...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도 인간으로서 너무 별로였던 나의 새 매니저.


아이를 낳고 첫 1-2년은 여러모로 아프고, 힘들다고 했지만 주변의 도움이 필요해서 의지했던 어린이집은 툭하면 문을 닫고 우리에게 똥을 주었으니 그야말로 지난 3개월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결국 우리는 프랑스로의 이사를 조금 더 서두르기로 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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