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없는 문제가 싫은 이과 언니
인권교육을 시작으로 노동인권교육까지, 초등학생부터 성인 대상까지 강의밥 15년이다. 지금은 기본소득당 중앙당에서 사무부총장으로 일하며 펑크나는 강의를 때워주는 정도지만 한때는 나의 ‘업’이기도 했다. 오랜 경력만큼 언제나 자신만만했지만 유독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지는 부분이 있다.
바로 ‘노동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노동인권교육이 시작되면 학생들에게 묻는다. 여러분 인권은 뭘까요? 블라블라. 그럼 누가 노동자일까요? 나는 딱 여기서 멈칫한다. 답 없는 문제에는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국어사전과 법전은 노동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노동자 : 1.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 2. 육체노동을 하여 그 임금으로 살아가는 사람. (표준국어대사전)
노동자 :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고 하지는 않지만, 근로자로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①직업의 종류에 관계없이 ②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③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근로기준법 제2조 제1호). 또한 ④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근로 제공과 임금 지급의 실질적인 관계가 종속적이어야 한다. (판례에 의한정의)
노동자인데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
현관문을 열어 새벽에 배달된 택배를 집에 들여놓고 출근을 한다. 지각하는 바람에 택시를 탄다. 토론회 준비로 A 교수님과 통화를 하고 나니 오전 업무도 끝. 코로나 때문에 식당은 못 가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다. 점심시간을 아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영어회화 수업을 한다. 보험을 들어야겠다는 엄마의 전화에 한참을 보험설계사와 통화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주일에 두 번 있는 PT를 받고, 아파트 앞 떡볶이를 파는 노점상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택배 배달기사, 택시운전사, 대학교수, 배달음식 배달원, 영어회화 선생, 전업주부, 보험설계사, 헬스 트레이너, 떡볶이 파시는 분. 오늘 내가 만난 이 분들 중에 노동자는 단 한 명이다. 어떻게 된 걸까?
계약 관계에 있더라도 분명한 관리 관계가 없다면, 즉 종속적 관계가 없다면 노동자가 아니다. 이런 점을 이용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계약·용역계약·위탁계약’ 등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지 못하는 계약들이 횡행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일하고 있던 위의 9명 중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대학교수인 A 교수님 한 명뿐인 현실이다.
육체노동을 하고 대가를 받는 사람을 노동자로 부르고 핍박하던 것은 오래 전 일이 되었다. 하지만 노동자에 대한 법적 보호가 시작된 지금, 변화한 사회적 인식과 달리 ‘법정 노동자’가 아니라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넘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계약을 해지하고 퇴직금 하나 없이, 해고 사유조차 모른 채 쫓겨나도 아무도 그 책임을 묻지 않는* 게, 무려 합법인 것이다.
*물론 계약 자체가 잘못된 경우도 많기 때문에, 관리자의 지시로 일을 하고 있었다거나, 개인 업무 이외의 공동의 업무가 주어졌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면 못 받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법률공단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생산을 하지만 노동이 아닌 것들
운전을 하다 보면, 아는 길도 핸드폰 내비게이션 어플을 켜놓고 간다. 혹시나 모를 속도위반 감시카메라를 피하기 위해, 조금 더 빠른 길을 안내받기 위해서다. 매일같이 열일하며 길을 안내해주는 내비가 참 고맙다. 그런데 우리만 고마울까? 더 고마워해야 하는 건 사실 내비 쪽이다.
우리는 내비를 켜고 달리며 정체 정도를 계속 체크하고, 자주 가는 루트를 알려주고, 심지어 자주 가는 곳의 위치정보까지도 내준다. 거기에 광고까지 봐주면 완전 땡큐. 한마디로 내비를 이용하는 모두가 하나 되어 정보를 쏴주는 것이다. 우리는 운전하는 매순간, 어플에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한때 개그 소재였던 구글 번역기는 이제 꽤나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구사한다. 구글에서 한국어 능통자를 고용한 걸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수많은 한국어 사용자들의 접근이 AI를 훈련시켰다. 많은 정보로 수정과 업데이트가 거듭된 끝에 지금의 구글 번역기가 탄생한 것이다. 앞으로 AI의 번역은 더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이처럼 내가 입력하는 모든 것은 데이터값이 되어 기업들이 사람들의 삶의 패턴, 니즈를 분석·분류하고 시장을 파악하는 데 기여한다. 사무실 컴퓨터 검색창에 ‘백팩’이라고 타이핑한 날 내 스마트폰의 페이스북 어플에서 하루 종일 온갖 종류의 백팩 광고를 접하게 되는 것은 내 스마트폰에 눈이 달려서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우리가 제공한 정보들은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다. 카카오가 시장을 장악하게 되는 것, 네이버만이 그 적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가진 엄청난 데이터 때문이다. 그 데이터는 나와 당신이 열심히 뛰어다니고, 운전하고, 사진 찍어 쉬지 않고 손가락 노동을 한 결과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결과는 뭘까? ‘유료화’다.
재주는 곰이 부렸는데 공연료를 곰에게 달라는 꼴이다. 좋다. 그럴 수도 있지, 공연한 거 촬영하고 편집하는데 돈도 들고… 그럴 수 있지. 그 공연 영상 돈 주고 볼 수 있지. 근데 아무리 그래도 재주 부린 값은 치러야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그것을 노동이라 부를 수 있을지, 그런 우리들-즉, 우리 모두를- 노동자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정의가 알쏭달쏭해지는 이런 시대에서는. 하지만 적어도 그 대가는 이제 모두에게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답 없는 문제가 싫은 나의 대답은 기본소득이다.
문미정|기본소득당 사무부총장
당 상근자는 처음. 마음 복잡하면 수학 문제 풀며 마음을 달래는 이과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