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남세아 Jan 07. 2024

문명줄을 이어가다



일하는 환경이 바뀌자 일상이 흐트러졌다. 잠자는 장소와 시간이 달라지면서 평생 경험한 적 없는 불면까지 겪었다. 불면이라고 해봤자 평소에는 누우면 5분 내에 잠들다가 누운 뒤에도 한두 시간 뒤척이며 잠든 날이 며칠 동안 이어진 정도를 말한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니까 다시 오분컷이 돌아왔다. 잠시 멈춘 운동을 다시 시작한 게 도움을 준 듯하다. 여행과 일터 변화로 인해서 2주가량 운동을 못하니까 불안했고, 바뀐 일상에서 틈을 찾아내 유산소 운동을 즐겼다. 며칠 버티니까 다시 주 3~4일을 이어간다. 독서와 글쓰기 습관도 바뀌었는데, 새로운 일에 집중하면서 일과 관련된 글 외에는 읽지도 쓰지도 않았다. 한 주 두 개 글을 쓰던 약속도 한 달 정도 뒤처졌다. 다시 글을 쓰기 위해서 2024년 다이어리를 열어 연필을 들었지만, 금세 닫아버렸다. 결국,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사진 한 두 개를 올리며 한두 문장으로 문명줄만 이어갔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너의 작업실을 들렀다. 지금껏 글과 가깝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준 책방이자 아지트이다. 여전히 반갑게 맞아주는 탱사장과 여유롭게 놓인 책을 마주하며 다시 글세상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은한 조명 불빛아래서 멋진 글과 시를 쓰는 듯한 미지작가 부부(유병록 시인 죄송)와 인사하며 글 덕분에 만난 인연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책장에서 글벗이 고른 책 중에 마음에 드는 책을 하나 집어 들었고 서로 안부를 묻는 탱사장과 아내한테 다가가서 구매 의사를 밝혔다. 탱사장은 계산하며 글방식구들이 아쉬워한다는 말을 건넸는데, 순간 미안함이 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너스레를 떨며 스콘을 먹고 싶다는 막내 부탁에 스콘까지 주문했다. 여전히 탱사장은 자기 마음대로 한 개 주문에 두 개를 담는 이상한 행동을 이어갔다. 오 분 정도 책방에 머물다 작별 인사를 하고 책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주차한 차를 향해서 걸었다. 조금씩 내리던 눈은 하늘과 눈이 절반씩 차지할 정도로 펑펑 쏟아졌고 아내와 막내는 탱사장에게 감염되었는지 이상한 퍼포먼스를 했다. 퍼포먼스는 영상으로 담았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책방에서 찍은 사진 몇 장도 함께 담았다.





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불면 없이 잠들었고, 일요일 아침에도 일찍 일어났다. 새로운 일터를 향할 생각에 세수하려는데, 오늘은 특별한 상황이 없다고 울리는 카톡을 보고 3주 만에 늦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책상에 앉았다. 컴퓨터를 고 글쓰기 플랫폼에 들어가서 새로운 글쓰기를 무작정 눌렀다. 얼마 전 글벗 중 한 명이 다른 글벗 안부에 대답했던 게 생각났다. "어떻게 글을 매일 써요?" 필명이 늑대 같은 글벗은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그냥 쓰면 되죠. 글은 그냥 뭐든 쓰면 되잖아요." 대수롭지 않게 건넨 말인데, 나에게는 크게 와닿은 듯하다. 덕분에 일상을 기록하고 흐트러진 생각과 감정까지 표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글은 그냥 쓰면 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힘들다는 변명으로 글을 못 쓴다는 착각으로 스스로 글과 멀어지려 했다. 쓰면 가까워지고 가까워지면 다시 풍성해지는 게 글인 듯하다. 글 양과 질을 걱정하기보다는 우선 뿌려놓고 다듬던 날들을 기억하면서 뭐라도 끄적여 본다.



환경이 바뀌고 복잡한 상황에서도 문명줄을 이어간다. 어렵고 힘들고 불편한 세상에서 다양한 이유 때문에 생명줄을 끊을 수 없는 것처럼 내 글 수명도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연결된 질긴 인연 덕분에 늘어났다. 상쾌한 아침이다.



* 한 줄 요약 : 생명줄이 이어지는 한 문명줄도 이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스토리에서 인스타그램 소개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