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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Feb 13. 2024

누가 주연인가?

유치원 발표회 주인공은 000이다



막내 유치원 발표회에 다녀왔다. 명절 연휴 하루 전 오후 두 시라서 많이 의아했지만, 자기 자식이 한 해 동안 열심히 준비한 공연을 뒤로한 채 명절 따위에 정신 팔릴 순 없었다. 덕분에 명절 하루 전 고속도로나 인천공항이 붐비지 않게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유치원 발표회는 다른 일정을 모두 차치할 만큼 우선순위가 높은 행사이다. 일정이 이상해도 구시렁거리며 열일 제쳐두고 발표회에 참석하는 게 당연하다. 어찌 되었건 간에 일정을 맞추려고 오후 육아 시간을 세 시간 사용했다. 근무지를 옮긴 후 첫 외출이었다. 아무도 눈치 주지 않았지만 연휴 하루 외출이라서 혼자 불편한 마음으로 허겁지겁 서둘렀다.



막내 발표회 참가 여부는 불확실했다. 내가 근무지를 옮기면서 1월부터 4월 사이에 이사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일찍 이사라도 다면 발표회는 불가능했는데, 다행히 이사가 늦춰지면서 참석할 수 있었다.



사실 작년 연말 유치원 선생님이 2월 초에 발표회 때 막내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니 반드시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 말에 만약 이사하더라도 발표회는 참석할 생각이었다. 여하튼, 4월 이사로 결정하면서 부담 없이 발표회를 준비했고 추첨으로 선정된 적당한 자리에 앉아서 관람했다.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이 준비한 발표회는 앙증맞고 사랑스러웠다. 우리 아이가 아닌 공연도 힘껏 응원했다. 유쾌한 사회자 입담에 부모들은 운동회 때 못지않게 텐션을 유지하며 공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정작 막내가 출연할 때는 공연을 즐기지 못하고 아이의 한 동작 한 마디에 집중했다. 미안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뿌옇게 흐려지며 사라졌다. 노래와 악기 연주에 이어서 치어리딩으로 멋진 공연을 마무리하자 가슴 벅찬 감동까지 남았다. 다른 부모 눈에도 자기 자녀만 보였을 것이다. 모두 마찬가지였다. 주인공을 주목했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릴 이유가 없었다.



그때였다. 공연하는 내내 아이들 에서 혼신을 다해 지도하는 선생님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손을 어가며 아이가 부모 눈에 예쁘고 사랑스럽게 비치기를 바라는 열정이 담긴 모습이었다. 남기고 싶어서 조심스럽게 영상에 담았다. 한참 선생님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덧 발표회가 끝났다. 혼신을 다한 선생님들은 무대 뒤에서 주인공들을 옷까지 갈아입힌  부모에게 인계했.



우리는 악기를 연주하고 영어로 노래를 부르며 격렬하게 치어리딩 한 아이에게 꽃다발을 전해주고 축하했다. 나 역시 멋진 공연을 펼친 막내를 목말태우고 나와서 피자를 먹으러 갔다. 하지만, 공연 때 촬영했던 선생님 뒷모습이 머릿속에 계속 남았다.





발표회가 끝나고 아이와 부모가 모두 떠난 뒤 텅 빈 공연장에 남은 선생님 심정은 모르겠지만 뿌듯하고 행복하지만은 않을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표현도 못하고 나와서인지 고생한 선생님들께 죄송한 마음이 몰려왔다.



누군가를 빛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이글저글에 써댄 부끄러운 흔적이 떠올랐다. 밝게 비추고 싶다며 너스레 떨었위선까지 생각났다. 오직 내 자식만 바라본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연히 발견한 모습에서 발표회 주인공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한 해동안 고생한 진정한 주인공들 아이들을 주연으로 만들면서 누구보다도 보람되고 뿌듯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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