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저장소 만들기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 집 안에 들어서기도 전에 담배냄새가 진했다. 오늘도 묻지 않아도 집안에서 담배를 피웠음을 알 수 있다.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도록 약속하고 또 다짐한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집을 나서며 어김없이 약속도장을 꼭 찍으며 '담배는 꼭 밖에 나가서 피우세요.'라고 당부하는 말에 매번 같은 대답을 하셨다.
"집에서 안 피울게. 오늘은 안 피웠는데."
현관 입구에 들어서며 눈으로 재빨리 살펴보니 오늘은 혼자 계셨다. '어머니는 어디 가셨어요?'라고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서며 여쭈었다.
"아침에 나갔어. 요즘은 밥만 먹으면 어디를 가는지 나가서 돌아다니다 저녁 때나 들어와."
"식사는 하셨어요?"
"밥이야 잘 먹지. 맨날 내가 밥을 다 해서 먹어. 하루 세끼 밥 챙기는 것도 힘들어. 이젠 아예 밥도 안 하고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나 들어와."
아내와 둘이서 살고 있는 어르신은 이젠 밥이며 청소며 모든 집안일을 혼자서 도맡아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두 분은 모두 치매 진단을 받았고, 아내가 더 중증으로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집안일뿐만 아니라 공과금과 은행일, 관공서 일 등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것도 남편의 몫이었다. 지난번 전화요금이 납부되지 않아 전화가 끊겼던 것이 생각나서 여쭤봤다.
"전화요금은 잘 내고 있어요? 전화가 또 끊기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그것 때문에 힘들었어. 이제는 내가 다 알아서 해야 하는 데 자꾸 까먹어서 어떻게 되는지 모르니까. 그게 힘들어. 나는 글도 모르니까 뭐(우편물)가 와도 뭔 말인지 모르겠어."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고라도 날까 봐 걱정돼서요."
"돈이 없어서 입원도 못해. 둘이 다 병원에 가면 돈이 얼만데. 누가 일을 하라고 시켜주지도 않아서 지금은 돈을 벌 수도 없어."
"네..."
2인가족 기초연금이 수입의 전부였다. 그걸로 식사와 병원비, 약값, 공과금 등을 해결해야 했다. 살기가 빠듯하다고 병원은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더 이상 어떤 말도 '돈이 없다.'는 말 앞에서는 할 수가 없었다. '두 노인네 먹고사는 것도 힘들고 세끼 챙겨 먹는 것도 힘들어."라고 단칼에 잘라 말씀하시는데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오토바이는 이제 안 타시죠? 넘어질까 봐 그것도 조심하셔야 돼요.?
"안 탄지 오래됐어. 이제 오토바이 못 타. 입구에 세워 놓기만 한 지 벌써 한참 됐어. 누가 싹수도 않아. 고물상에 갖다 주기나 하면 모를까."
한 번은 얼굴과 손과 팔에 상처 딱지가 져 있고 멍이 들어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넘어져서 바닥에 쭉 쓸렸다는 것이었다. 이만큼만 다쳐서 다행이라며 웃어 보였었다. 어르신 댁을 나오며 1층 입구에 오토바이를 살펴보니 예전의 사고로 여기저기 깨져있는 상태 그대로 세워져 있었다. 오토바이는 더 이상 어르신의 교통수단이 되어주지 못했다. 어르신의 기억력도 오토바이를 제대로 운전하기에는 어려운 상태인 듯했다.
잘 지내시라는 안부인사와 약은 잊지 않고 잘 챙겨드시라고 말씀드리고 현관을 나왔다. 그때까지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르신 댁에서 돌아 나오는 마음에는 답답함만 가득했다. 날씨가 추워지는데 올 겨울은 또 어떻게 난방을 해결하고 지내실지 걱정이 앞섰다.
#치매 #기억 #사회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