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저장소 만들기
몇 번의 전화를 시도했지만 받지 않을 때, 기어이 집에까지 찾아가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보호자에게 연락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소식하나 듣지 못할 때 정말 난감했다.
몇 년 전엔가 어르신 댁을 방문하던 한 생활지원사 선생님은 굳게 닫힌 대문에 전화벨 소리가 집 안 어디에선가 들려왔다며 사색이 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어떤 판단이든 결단을 내려야 했다. 주변 이웃에게 수소문해서 이장님 연락처를 알아냈고 급기야 이장님은 사고가 있는지 생사를 확인하려고 담장을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 소동이 일어나고 있던 순간 저 멀리서 집주인인 어르신이 동네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해 듣고 급하게 집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르신은 '방문 일정을 깜빡 잊었다.'며 마을 친구 집으로 마실을 나가면서 휴대 전화기를 집에 두고 갔다고 했다. 다행히 어떤 사고도 일어나지 않고 넘어갔다. 아직도 그때의 아찔함과 사색이 된 담당 선생님의 목소리는 두고두고 잊히지 않았다.
오늘은 다음 주에 만나기로 한 어르신에게서 소식이 날아왔다. 보호자인 딸이 와서 어르신의 사망 소식을 전해주고 필요한 서류를 받아갔다는 쪽지로 비보를 전해 들었다. 출장에서 돌아와 쪽지를 보는 순간 머리가 '멍'해지고 말았다. 영원한 이별을 고하는 소식을 마주할 때마다 의연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써야 했다.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벌써 몇 번째 이별인지... 지난 8월 처음 만남에서 3번째 만남까지의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역시 쉽지 않다.
노인정에서 고스톱을 친다며 세명이라 지금 빠져나갈 수 없으니 집으로 오지 말고 노인정으로 찾아오라는 어르신을 만나서 고스톱 치는 모습에 한참 웃었던 일도. 그림 그리는 것이 어렵지만 다시 가져가는 것은 싫어 '나 잘할 수 있어. 안 가져가도 돼. 어려워도 할 수 있어.'라며 컬러링북을 가슴 쪽으로 당기며 놓치지 않으려던 어르신의 모습도. 앞니 빠진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밥도 잘 먹고 있고, 약도 잘 챙겨 먹고 어요.'라며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는 어르신의 얼굴도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지나 가장 끝에 있는 집으로 걸어 들어갈 때 저 멀리 쌓여 있던 어르신의 흔적들이 깨끗하게 정리된 복도를 보고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던 그때의 느낌이 살아났다. '아! 왠지 이상한데'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 혼자서만 되뇌었다. 불길함은 현실로 다가왔고 병원에 입원해서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으로 마주했던 영원한 이별 소식에 한 동안 힘들어했던 날들이 생각났다.
가족과의 이별, 친구와의 이별, 타인과의 이별까지 쉽지 않다. 어느 날 부지런하고 착해빠진 어렸을 적 친구를 떠나보내고 1년이 지나서였다. SNs를 잘하지 않았지만 어느 날 무심코 들어갔던 얼굴책에서 소식 메시지가 올라와 있었다. '생일을 맞은 친구'라고 그 친구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갑자기 말문이 막혀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고, 차마 친구의 얼굴책 피드로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어느새 따뜻한 느낌이 눈가에 느껴지며 눈물이 핑 돌았다.
가장 춥고 시리고 아픈 가을이 되어버린 나의 계절은 누군가를 떠나보낸 후유증으로 생긴 상처랄까. 2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그때의 그 시리고 아픈 기억은 내 온몸이 기억하고 있어서일까. 은행잎이 떨어지는 길가를 보고 있자면 그냥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염없이.
#치매 #이별 #죽음 #사회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