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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지릴 뻔한 순간들

너무 위급하면 똥도 안나온다

by 애셋요한

■ 아이를 키우다 보면,


진짜 똥 지릴 뻔한 날이 있다. 말 그대로 심장이 덜컥 내려

앉고, 온몸에 땀이 흐르고,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드는

쌔한- 그런 순간.

놀이터 그네에서 갑자기 뛰어내리는 큰 애,

킥보드를 타다가 갑자기 활강으로 언덕을 내려가는 딸,

올라가지 말라던 난간 위에 올라가서 형제가 서로 밀치다가

떨어지는 순간…


그 순간, 곁으로 달려가면서 속으로 외친다.

“제발, 제발, 아무 일 없게 해주세요.”

대부분은 다행히, 눈물 몇 방울과 약간의 타박상 정도로

끝났지만, 한 번은 정말…그냥 울며 똥 지릴 뻔한 하루

있었다.


'딸아이의 손가락 사고'

(지금도 수년이 지났지만 생각만하면 가슴한켠이 쓰리다)

구정 날 아침은 유난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은 늦잠을 자고, 나는 애들 준비와 도착시간에

쫓기고, 아내는 애들 달래랴 가방 챙기랴 정신없고…


그 혼돈 속에서 나는 딸아이의 손가락이 문틈에 있다는 걸

보지 못했다. 문을 닫는 순간, 기분 나쁜 느낌과 함께 아내는

비명을 질렀고,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다시 급하게 문을 열었을 때, 딸의 오른 약지 손가락

끝이 잘려 있었다. 그 몇 초가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도 몰랐고, 아이는 당황한

상황에 울지도 않고 잘려진 손가락을 나에게 보여주고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피는 멈추지 않았고, 나는 숨이 안 쉬어졌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라 응급실은 포화 상태였고,

소아 정형외과 수술 일정도 잡기 힘들었다.

그래도 겨우 대형병원에 외래로 아내와 딸만 안으로 들여

보내고 인원 제한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난, 병원 밖에 주저

앉아 정신이 아득해진 채로 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내가 왜 그걸 못 봤을까… 내가 조금만 조심했으면…'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

의료진은 최선을 다했고, 딸아이도 용감하게 잘 견뎠다.

하지만 지금도, 그 손가락 끝의 작은 흉터를 볼 때마다

내 손가락을 잘라서 대신 붙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한동안 정말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확인하고 통제하고

일일이 갑섭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이내 다시 마음을 고쳐

먹고 무엇이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다짐했다.

아이들은 자란다. 뛰고, 넘어지고, 다치고, 실수하고,또 다시

도전한다. 그게 성장의 과정이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부모

로서 얼마나 감싸고, 어디까지는 놔줘야 할까?


물론 누구도 다치는 걸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듯’ 과잉보호만으로는

아이가 자라지 않는다. 너무 꽁꽁 싸매놓으면 몸은 멀쩡할지

몰라도 도전하는 근육, 실패를 견디는 힘은 자라지 못한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나는 아이에게 더 조심하라고 하면서도,

너무 움켜쥐지 않으려 애쓴다.

손을 뻗되, 조금은 거리를 두고, 넘어졌을 때 먼저 달려가기

보단 잠시 지켜보고. 그리고 내 마음의 똥지림은 내가 알아서

소화해낸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매일 똥 지릴 뻔한 상황을 넘기면서도

그럼에도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다. 지키고 싶고,

보호하고 싶지만 그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일.


오늘도 딸의 손을 꼭 잡고 걸으며 생각한다.

“아빠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해. 하지만 너는, 그날 이후

훨씬 더 강해졌구나.”

그리고 다짐한다. 또 똥 지릴 뻔한 날이 오더라도 나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시 한 걸음 내딛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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