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다고 피할수만은 없는 간절함
■ 가끔 누가 똥이고 누가 오줌인지 가리기 보다는 싸움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경우도 있다.
“거기서 거기야, 똥이나 오줌이나.”
말하자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두 존재가 싸우는 걸 볼 때
쓰는 말이다. 조금은 비하의 뉘앙스도 있지만,
실은 우리 삶의 갈등 대부분이 그런 ‘똥과 오줌의 싸움’
아닐까?
뉴스를 틀면 연예인 가십에 열애설, 이혼설, 조작설…
정치판을 보면 여당이니 야당이니 싸우느라 민생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장모님과
아내가 말다툼을 하고 있고, 나와 아들은 묘한 신경전으로
말끝마다 부딪힌다.
누가 더 맞고, 누가 더 틀렸는지?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른다.
장모님의 말에도 일리가 있고, 아내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
된다. 아들은 조금 일찍 찾아온 사춘기 감정으로 욱한 거고,
나는 피곤해서 참을 여유가 없었을 뿐.
결국엔 누가 똥인지, 오줌인지를 따지고 있는 꼴이다.
둘 다 지저분한 건 맞고, 피하고 싶은 것도 맞다. 그렇다고
피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똥도 오줌도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걸.
그렇기에 때로는 더럽다고 외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
그 싸움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고, 때로는 말리고, 때로는
정리하고, 때로는 껴안아야 한다.
언젠가 장모님과 아내가 아이 방이 엉망인 것을 두고
이야기를 하다가, 왜 안치웠는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 언성을 높이신 적이 있다. 옆에서 듣는 나는 처음엔
조용히 내가 청소 하고 아이들에게 알려 주려고 하였지만
끝날 기미가 안보이는, 과거 이야기 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냥, 제가 가르쳐 주면서 할테니 두분도 그만 하시죠.”
그리고 그 말을 하는 내 목소리도 살짝 흔들렸다.
또 한 번은, 아들이 게임 시간을 넘겨서 나와 충돌했다.
나는 ‘약속된 시간을 어겼다’고 생각했고, 아들은 ‘아빠는
이해를 안 해준다’고 느꼈다. 누구의 말이 더 맞았을까?
사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 나는 사용시간 자체에 의미를,
아들은 숙제를 위한 검색과 게임시간을 분리하여 이야기
했다. 정말 아무의미 없어 보이는 다툼이었지만 서로 똥과
오줌이 되어 '싸움' 자체에 쓸데없는 자존심과 상한 기분이
해소되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똥도 오줌도 본인의 입장에선 절박하다.
문제는, 우리는 자꾸 구경꾼이 되려 한다는 거다.
‘누가 더 잘못했지?’
‘이건 내가 끼어 들어야 하는 상황인가?,
괜히 말 섞었다가 내가 손해 보는 거 아닐까?’
하지만 그런 생각만 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그 똥과 오줌은 바닥에 퍼지고 냄새만 진동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구경하는 바보보다는 똥과 오줌 범벅이
되더라도 뛰어드는 바보가 되려고 한다.
물론 피곤하다. 감정도 상하고, 억울할 때도 있고,
가끔은 그냥 못본 척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들어가서, 상대의 말을 듣고,
때로는 사과하고, 때로는 안아주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싸움은, 누군가에겐 정말 절실한 싸움
이기 때문이다. 남이 보기엔 별일 아닐지 몰라도, 그 순간
그 사람에겐 세상 전부일 수 있다. 그래서 똥과 오줌의 싸움
이라도 그 안에서 진심을 담고 이해해주는 사람은 필요하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그리고 아들로서 직시해야만 한다.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내가 지금 편을 들어야 하는 건 똥인가, 오줌인가.”
그리고는 조용히 마음의 신발끈을 묶는다.
뛰어들 준비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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