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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상담시간 내려고 피똥싼 썰

하지만 결국, 아내만 참석했다.

by 애셋요한

■ 올해도 어김없이 새 학기가 시작됐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아이 셋이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첫째 아이가 인근 사립학교 추첨에서 떨어진 이후에,

쌍둥이를 다른 학교에 보내서 등하교를 시킨다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벌이고 보자는 심정으로

쌍둥이 전형으로 두 아이를 사립학교에 등록해 보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쌍둥이도 추첨에서 떨어져 세 아이는

인근 공립 초등학교에 모두 같이 다니고 있다.


한동안 헛된 기대도 품었다.

“그래도 셋 다 한 학교 다녀서 좀 나아지겠지~”

…라는 말은 첫 학기의 시작과 함께 물거품이 되었다.

학년마다 제 각각인 등,하교시간과 돌봄, 방과후 교실

선착순 등록은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순간 이었다.



그 절정은 학부모 상담 시즌에 와서였다.

상담 공지가 떴다.

첫째 월요일 오전 10시(지방가는 나는 뺄수 없던 날짜)

둘째, 셋째는 수요일 오전 10시 30분,

아...

이건 뭐, 일주일을 통째로 상담주간으로 설정하라는 말인가.

이럴 거면 차라리 휴아휴직을 내는 것이 마음이 편하겠다.


맞벌이 부부에게 이런 시간 분할 스케줄은 물리적 불가능에

가깝다. 회의, 마감, 출장, 아이 라이딩, 공개수업, 장보기...

그 와중에 점심 시간쯤 슬쩍 빠져나가 학부모 상담까지

한다는 건, 진짜 말 그대로 ‘피똥 싸는’ 일정이었다.


생각해보면,

작년 겨울, 둘째 셋째(쌍둥이)를 사립학교에 보내보자고

막연히 “그래도 좀 더 다양한 교육환경에서…” 하는

마음으로 지원했었던 치기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만약 애들 셋이 다른 학교에 다녔으면 그건 혼돈과 카오스,

그리고 택시비 지옥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누군가는 회사를 지키고, 누군가는 아이 셋의 상담실을

돌고 돌아야 했다. 그리고 그건, 주말부부였던 우리

부부에게 늘 그렇듯, 아내의 몫이 되었다.


나는 출근했고, 아내는 교문을 두 번 넘었다.

첫째 담임 선생님“집에서는 어떤 모습인가요?” 묻고,

둘째, 셋째의 담임 선생님

“둘째는 동생을 많이 챙겨요, 집에서도 그런가요?” 하고,

“셋째는 친구들과는 잘 지내요! 근데, 말이 많아요.”

하며 웃었다지만 정작 아내는 그 웃음 뒤에 체력 고갈과

정보 과잉으로 살짝 멍해져 돌아왔다.


나는 미안했다.

정말 미안했다.

회사일도 중요했고, 물리적인 거리도 있었지만 아내 혼자

세 아이의 상담을 모두 도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기에 그리고 한편으론 서운했다.

학교는 왜 이토록 ‘가정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걸까.

상담시간을 한 날로 묶어 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우리 부부 중 한 명이 하루 휴가를 내고

효율적으로 다녀올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세상이 우리 스케줄에 맞춰 굴러가줄리가 없다.

학원 시간도, 마트 세일도, 회사 회의도, 아이들의 감기

타이밍도 절대 우리에게 맞춰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린 오늘도 피똥 싸듯 쪼개고, 뛰고, 맞추고, 미루며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누군가에겐 별거 아닐 수 있는 이 ‘학부모 상담’이 우리에겐

온 가족이 회의 돌리고 스케줄 맞추고 고민해야 하는 큰

프로젝트였다. 그걸 해낸 것도, 결국은 살아낸 거다.


다음 상담 땐, 조금 더 잘 조율할 수 있기를 바라고,

무엇보다 그날 돌아온 아내의 얼굴에 “고생했어”라는 말은

꼭 전해야지.

그건 아무리 바빠도 빼먹지 말아야 할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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