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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광내기

그래도 똥은 똥이다

by 애셋요한

■ 요즘은 '인스타그램어블(Instagrammable)'

이라는 말이 있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을 때 얼마나 예쁘고, 멋지고,

공유할 만한가를 뜻하는 용어다.

음식도, 풍경도, 심지어 육아마저도

‘사진빨’이 전부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깔끔하게 세팅된 유아식, 아이와 손잡고 걷는 햇살 좋은 오후, 책상 앞에서 집중하는 아이, 그리고 그 옆에서

미소 짓는 부모의 셀카.

이 모든 건 아름답고 평화롭다. 겉보기엔.


하지만, 그 한 장의 사진을 찍기까지 얼마나 많은

난리와 혼돈, 그리고 약간의 광기가 있었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유아식 찍기 전, 첫째는 “내가 이거 안 먹어!” 하며 소리

지르고, 아이 엄마는 “딱 한 입만! 진짜 한 입만!” 하며

협상과 협박을 한다.

뒤에선 막내가 포크를 던지며 울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필터를 씌우고, 썸네일을 단다.

“우리 집 평화로운 아침식사.”

이쯤 되면 거의 똥에 광을 내고 있는 수준이다.


악취나고 질퍽한 현실 위에 샤이니한 필터를 덧씌우고

보기 좋게 다듬는 그 노력. 그걸 우리는 매일 한다.

그것은 육아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은오00 박사님 말씀대로’가 육아의 정석이 되었다.

감정 공감, 긍정 훈육, 아이의 자율 존중.

누가 봐도 멋지고 바른 방식이다. 나도 해본다.

아이에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말해보고,

“그건 네가 선택해보는 건 어때?” 하고 유도도 해본다.

하지만 정작 현실은

“지금 몇 번째 말했어? 당장 그만해!”

“울지 마! 뭘 잘했다고, 그거 갖고 왜 울어!”

그리고 스스로 머쓱해져서 조용히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그게 현실 육아다.


사진 속에서 아이는 책을 읽고 있지만 현실에선

책을 던지고 있고, 사진 속 나는 여유로워 보이지만

현실에선 숨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그래서 문득 든 생각.

이건 똥 광내기와 다를 게 뭐지?

고급스럽고 근사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그 속은 여전히 치열하고, 지치고, 현실적인 삶.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 똥에 광을 내며 산다.


특히 보여줘야 하는 삶을 사는 사람일수록.

SNS든, 가족 모임이든, 회사 회식이든.

“괜찮아 보이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걸 진짜라고 착각하는 순간 생긴다.

사진처럼 살아야 할 것 같고, 나만 뒤처진 것 같은 불안이 찾아오고, 나만 왜 이렇게 못하나 자책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 똥에 굳이 광을 안 내려고 노력한다.

광내지 않은 삶에도 진짜 웃음과 진짜 눈물이 있고,

실패하고 고생하면서도 나름대로 단단하게

살아가는 ‘진짜 냄새 나는 인생’이 있다.


아이와 갈등하고, 때로는 소리 지르고 후회하고,

그걸 껴안고 다시 잘 해보려는 마음.

그게 진짜 육아다.

고상하지 않아도, 엉망이어도 괜찮다.

필터 없이도 충분히 의미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아이와 대치하고

식은 커피를 다시 데우며 조용히 생각한다.


“그래, 똥은 똥이지. 굳이 광까지 낼 필요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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