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맡아도 적응이 안된다
■ 앤디 워홀이 말했다.(..고 한다)
“일단 유명해져라 , 그렇다면 사람들이 당신이
길거리에서 똥을 싸도 박수 받을 것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아니 똥 싸는 데 박수를 왜 쳐?’ 싶어 고민해보았지만,
살다 보니 점점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똥도 누가 싸느냐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
냄새는 똑같이 나는데 받이들여지는 것도 다르다.
(회사생활도 상급자와의 관계에 따라 누가 쌌는지
반응도 처리 방법도 달라진다.)
조선 시대에는 ‘매화틀’이라는 도구가 있었다.
왕이 똥을 누면 신하들이 그걸 은밀하게 확인해
‘오늘도 성상께서 건강하셨다’며 기뻐했다.
일종의 ‘왕의 건강 리포트’였던 셈이다.
그 시절엔 왕의 똥이 곧 국가의 정보였고, 그 정보를
다루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기묘하다.
누군가의 똥 냄새를 맡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직업이 당당히 존재했다니...
아이를 키우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갓 태어난 아기가 기저귀에 첫 응가를 하면 그걸 들고 아내에게 보여주며,
“이거 봐, 색 너무 예쁘지 않아?” 하고 묻는다.
냄새는 당연히 나지만, 신기하게도 전혀 불쾌하지 않다.
그건 사랑의 냄새였으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저귀를 갈면서 똥의 색, 농도, 양을 체크하던 시절엔 그 냄새조차도 아이의 성장 기록처럼
느껴졌다.
장모님도 말했다.
“이게 다 지나가면... 그 똥냄새도 가끔 그리워질 거야.”
그리고 정말로, 그 시절은 지나갔다.
아이가 자라고, 어느새 나는 중년이라는 단어에 발끝을 걸친다.
지금은 누가 나의 배변 상태를 궁금해 하지도 않고,
내가 아프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조차 줄어들었다는 걸 느낀다.
중년의 똥은 관리의 대상이지, 관심의 대상은 아니다.
직장에서 자주 화장실을 드나들면 ‘어디가 아픈가?’
가 아니라,
‘어제 술을 얼마나 마셨으면...’ 소리가 먼저 나오고,
집에서는 ‘아빠 화장실 또 오래 있네’라는 말에 살짝 민망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인이나 권력자가 똥을 싸는
얘기를 하면 언론이 “인간미가 넘치는 소탈한 매력” 같은 말까지 덧붙이며 칭찬한다. 그걸 보며 든 생각.
“똥냄새도 평등하지 않구나.”
하지만 진짜로는 어떨까?
사실 '똥냄새' 의 냄새 자체는 평등하다.
권력자든, 갓난아이든, 평범한 아줌마 아저씨든 냄새는
코로 맡으면 똑같이 찡하다.
대신 우리는 그 냄새를 피우는 '똥'이 누구의 것인가에
다른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누군가의 똥은 사랑이고, 누군가의 똥은 정보고,
또 누군가의 똥은 그냥 ‘민폐’일 뿐이다.
그 기준은 결국 관계와 마음의 거리에서 생긴다.
사랑하면 냄새도 참아지고,
지겨우면 향기도 짜증이 난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내 똥냄새에 대해 누군가 반응하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누가 냄새를 맡아주든, 안 맡아주든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잘 비워내는 게 중요하니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똥냄새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아보려고 한다.
그건 그 사람을 진짜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으니까.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누군가의 똥을 닦아주고,
누군가에게 똥의 뒷처리를 맡기고 살아간다.
그건 참 부끄럽지만, 참 따뜻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똥냄새는 평등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모두가 똥을 싼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더 평등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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