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누군가는 내가 똥싼얘기를 하겠지?
■ 아이 셋을 키우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듣게 되는 말 중 하나가 있다.
“아빠, 우리 반 민준이가 오늘 또 연필 뺏어갔어.”
“엄마, 예린이가 말 안 듣고 계속 소리 질렀어.”
“근데 나는 안 그랬어! 나는 가만히 있었어!”
듣고 있으면 살짝 웃음이 나온다.
그건 그냥,
“오늘 나도 좀 혼났지만, 일단 다른 애 얘기부터 할게”
라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우리집에서는 특히 막내.
막내는 그야말로 서사와 변명의 천재다.
자기가 실수했을 때도 그걸 그대로 말하지 않고 늘 어딘가
다른 사람의 실수를 먼저 꺼낸다.
“아빠, 민준이가 그랬다니까!
진짜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처음엔 민재가 밀었어!”
물론, 끝까지 듣다 보면 결국 본인도 같이 밀고, 고함도
지르고 선생님한테 혼나기도 했다는 걸 슬쩍슬쩍 실토하긴
한다. 하지만 핵심 스토리는 언제나 남의 이야기다.
생각해보면 어른도 크게 다르지 않다. 회의에서 실수가 나도
“그거 원래 받은 파일 정리가 안 돼 있었던 거예요.”
“사실 지난번에 팀장이 제대로 확인 안 해줘서…”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실수보다는 남이 똥 싼 이야기가
더 쉽고, 더 재밌고, 더 부담이 없다.
심지어 누군가 큰 돈을 손해 봤다는 얘기에는 ‘어머, 어떡해’
하면서도 속으로는 안도감이 들 때도 있다.
남의 실수는 이야기감이고, 남의 실패는 반면교사라고들
하지만, 때론 그 반면교사를 슬쩍 희화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아이에게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해”
라고 말하면서도 그게 남의 실패를 소비하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걸 통해 내가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배우고 조심하라 는 의미였다.
하지만 아이는 그 차이를 아직 모른다.
“쟤는 오늘 또 지각했대~”
“걔는 시험 망쳤대~”
하면서 웃고 떠드는 아이를 보며 나는 가끔 불안해진다.
행여 아이가 뒷담화를 하는 사람이 되거나, 그런 일로
후에 낭패를 볼까 싶어서이다.
“근데, 네가 그 얘기하면서 기분이 좋았어?”
“만약 네 얘기를 누가 그렇게 하면 어떨 것 같아?”
말로는 이렇게 하지만 나 역시 가끔은 누군가의 실수를 듣고
안심하기도 하고, 그 사람보단 낫다고 위로받기도 하니 결국
나도 남의 똥 싼 얘기를 듣고 재미있어 하고 있는 셈이니
아이에게 하는 질문은 나에게 하는 가르침과도 같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말해준다.
“다른 사람이 똥 싼 얘기를 할 땐 ‘그 똥을 내가 안 밟도록
조심해야지’ 마음속으로 생각만하는 거야 . 근데 그 똥 싼
사람을 놀리거나 다른 사람에서 함부로 말하지는 말자.
그건, 좀 치사하잖아.”
실수는 누구나 한다. 그걸 덮는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고,
남의 실수만 들춰낸다고 내가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내가 싼 똥은 내가 닦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남이 싼 똥은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다.
오늘도 아이가 또 다른 친구의 똥 얘기를 들고 올 거다.
그때 나는 조용히 묻을 것이다.
“오늘 너는 어떤 하루를 보냈어?”
그리고 그 대답 속에서 조용히 아이의 하루와 진짜 마음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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