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에서 해방되기
수술 후 프리다이빙을 하루 배울 기회가 있었다. 산소통을 매고 들어가는 스쿠버다이빙과 다르게 프리다이빙은 맨몸으로 숨을 참고 물속 깊이 들어가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해녀들의 물질과 수영 방식이 똑같다고 보면 된다. 자신의 숨이 허락하는 곳까지만 들어갈 수 있고 그 한계는 본인만 알기에 물에서 나오는 타이밍 역시 스스로 조절해야 한다.
프리다이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퀄라이징(equalizing)이다. 우리말로 압력 평형이라고 하는데 인간의 몸은 수심이 10m 내려갈 때마다 1기압씩 낮아진다. 그래서 콧구멍과 입을 막고 숨을 세게 쉬어서 먹먹해진 귀가 펑 뚫리도록 이퀄라이징을 계속해 주어야 한다. 이 행위를 귀가 막힐 때마다 해주어야만 조금씩 물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속에 들어가기 전 숨 참는 시간을 재보았는데 1분이 훌쩍 넘었다. 10m 바닥을 찍고 올라오는 데는 30초도 채 걸리지 않는다. 내 숨으로 두 번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두려움 때문에 10m를 찍지 못하고 허둥대며 올라온다.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도저히 그 두려움이 극복되질 않았다. 이퀄라이징이 익숙하지 않아 귀가 아픈 것도 있고, 꾸물댔던 시간 때문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시간까지 숨이 모자랄까 봐 무섭기도 했다.
강사는 말했다. “물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평정심입니다.” 사람은 물속에서 두려움이 생기면 평정심을 잃고, 갑자기 숨이 가빠지면서 남은 숨을 모조리 써버린다는 것이다. 자신의 숨 길이도 알고, 한계도 알고, 무조건 동행해야 하는 버디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두려움이 생기는 순간 허둥지둥한다고 했다.
평정심 유지. 물속에서뿐 아니라 삶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만큼 평안하게 사는 방법이 있을까?
암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이 깨지면서 교감 신경세포 과부하로 정상적인 자가 면역세포들이 공격받아 비정상적인 세포가 증식하면서 발병한다. 분노, 공포, 긴장 등이 교감신경을 활성화하는데 이때 부교감신경이 작동하여 몸이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부교감신경의 대응 역량을 넘어설 만큼 과도하고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자율신경계 자체에 장애가 생기면서 암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부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것도 우울, 무기력증과 같은 질환을 가져올 수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이 외부 자극에서도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말은 곧 평정심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크게 흥분하지 않고, 슬픈 상황에서도 극도로 우울감에 빠지지 않는 것. 말이 쉽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다. 물속에서 평정심만 잘 유지하면 몇 분이고 안정적으로 바닷 속을 구경할 수 있다. 삶에서도 평정심만 유지하면 몇 년이고 평안하게 지낼 수 있다.
새로운 경험에서 지혜를 배우고 삶에 대한 내 자세를 또 한 번 고쳐 잡는다. 글을 쓰면서도 여러 걱정이 밀려오지만 결국 어떤 모양으로든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평정심을 찾는다.
정신 승리만큼 정신건강에 좋은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