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어느 날엔가 혼자 뮤지컬을 보고 서울에서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퇴근 시간도 훨씬 지난 시간인데 버스가 줄지어 멈춰 서서는 1시간째 서 있기만 했다. 기사님은 내려서 지하철을 이용하라고 했고 어쩔 수 없이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지하철이 없어 버스로 다시 갈아타야 하는데 배차시간이 계속 엇갈리면서 12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집에 도착했다.
세 시간 만에 집에 오는 길에 난 이미 녹초였다. 비까지 온 데다 몸은 피곤하고 정류장에서 집은 왜 이리 먼지. 하필 오늘 도로가 왜 말썽이며 버스 운도 더럽게 없다고 투덜대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집 앞에 택배 차량 하나가 서 있는 것이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짐을 한가득 옮기는 택배 기사님을 보는데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내가 또 감사함을 잊었구나. 이 시간까지 일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고작 실컷 놀다가 돌아오는 길이 좀 힘들었다고 그렇게 불평불만을 가졌구나. 감사함은 하루 중 어딘가에 늘 숨어있었고, 밤이 돼서 빼꼼 얼굴을 드러낸 날이었다.
이 일을 동생에게 얘기하자 그럼 택배기사는 어떻게 자신의 상황을 감사하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수당 한 푼 없이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도 있는데 일한 만큼 돈 벌 수 있는 내 사업이 있음에 감사하겠지?” 동생은 “그럼 월급쟁이는?”하고 물었다.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신체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겠지?” 계속해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럼 몸이 아픈 사람은?” “그래도 생명이 있고 살아있음에 감사하겠지?” 동생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결국 생명이 있는 한 죽기 전까지 우리는 감사한 것을 어디서든 언제든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유튜브에 신체장애나 희귀 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의 영상이 많이 떴다. 알고리즘이 내 상황을 알고 너보다 힘든 상황을 이겨낸 사람도 많으니 힘내라고 매일 영상을 툭툭 던져주는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영상들을 보며 ‘그래, 가슴 한쪽 잘라내는 게 팔 하나, 다리 하나가 없는 것보다는 낫지.’ 하며 끊임없이 자기 위로를 했다. 하지만 이 위로는 가짜 토닥임이었다. 소위 약발이 며칠을 못 갔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통해 간신히 위로를 얻으려는 나 자신이 무지 못나 보일 뿐이었다. 다른 이의 불행은 전혀 나를 위로해 주지 못했고 행복하게 해주지도 못했다.
비교는 다른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과거의 나와만 하면 된다. 20대 때의 나보다 성장했는가, 작년의 나보다 성숙해졌는가? 다른 이들의 경험은 참고용일 뿐 고난을 극복하고 안정을 찾는 법은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하지만 아픔을 딛고 일어난 사람들에게 얻을 수 있는 딱 한 가지는 나도 다시 웃을 수 있다는 확신이다.
다른 유방암 환자들의 안 좋은 소식을 카페 글이나 유튜브 영상으로 보는 날엔 기분이 축 처지고 걱정이 된다. 나도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포함한 많은 감정이 소모된다. 그래서 유방암 카페와 같은 커뮤니티나 유튜브 영상은 되도록 보지 않는 편이다. 대신 비슷한 기수의 환우들과 작은 모임을 만들어 궁금한 점이나 좋은 정보들을 공유하고 있다. 유방암을 잘 이겨내기 위해서는 평정심이 중요하다. 일희일비하면 금방 지친다. 타인보다는 내 삶에 집중하면서 살려고 한다.
암을 이기려면 암에게 주도권을 뺏겨서는 안 된다. 내 몸에 있는 모든 세포는 내가 조절할 것이다.
암! 너도 마찬가지야.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아직도 나는 치유 중이고 긴긴 여정 중 이제 한 모퉁이 하나 돌았을 뿐이다. 여전히 의연하지 못하다. 하지만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것만큼 나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없다.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할 것임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이 길을 계속해 나갈 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