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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사라 Jul 14. 2024

유방암에서 해방되기(1)

흉터에 갇히지 않는 법

 유방암 수술을 하고 나서 목욕탕 가기가 참 꺼려졌다. 목욕탕, 사우나, 찜질방에 환장하는 사람이었는데 나도 적응이 안 되는 수술한 가슴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몇 개월간은 샤워하려고 옷을 벗으면 거울을 보지 못했다. 아무리 봐도 적응되지 않는 가슴 모양이며 깊고 짙은 수술 자국, 아직 빠지지 않은 멍 자국 때문에 정말 보기 싫었다. 

 수술해 준 성형외과 의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처럼 수술과 동시에 복원을 해서 수술실을 나오는 사람과 한쪽 가슴으로 살다가 나중에 복원 수술을 하는 사람의 만족도가 완전히 다르다고. 전자의 경우 예전 가슴과 비교하면서 속상하고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동시 복원이 어려워 한쪽 가슴으로 한동안 있다가 몇 년 뒤 복원술을 하는 사람은 모양이 어떻든 가슴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만족하고 기뻐한다고 한다. 사람은 참 재밌다. 

 조삼모사가 바보 같은 일인 걸 알면서도 아침에 많이 받냐, 저녁에 많이 받냐에 따라 기분이 다르다. 처음부터 없는 건 괜찮아도 줬다 뺏는 건 용서하기 어렵다.



 일단 사랑까진 아니지만 지금 가슴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첫 번째 단계로 용기 내어 목욕탕에 갔다. 가장 구석진 락커로 달려가 얼른 옷을 벗고 수건으로 가슴을 가린 채 목욕탕 맨 끝에 자리를 잡았다. 혹시 오지랖 넓은 아줌마가 가슴에 관해 물어보면 그런 거 물어보는 거 무례한 거라고 대차게 대꾸해야지 다짐하고 있었다. 탕을 오가고 때를 미는 동안 아무도 나의 가슴에 관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아무도 나의 가슴에 관심이 없었다. 유방암 환우 단톡방에 수술 후 처음으로 목욕탕에 갔고,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말하자 자기는 유두가 없는데도 아무도 묻지 않더라고 했다. 


 맞다. 상처를 숨길 필요도 내가 숨을 필요도 없다. 오히려 이 상처가 아물 때까지 인고의 시간을 버텨냈다고 자랑할 만하다. 아프고 나면 위축되기 쉽다. 하지만 나만 괜찮다면 남들의 시선 따윈 중요치 않다. 

 넘어졌다 벌떡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바닥을 짚고 천천히 일어나서 걸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다시 뛸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어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계속 넘어져 있는 건 허락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부추김을 받고서라도 일어나야 한다. 


나는 아픈 가슴을 안고 또 한번 단단한 알을 깨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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