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부터 난 미술시간이 가장 두려웠다. 무언가를 그려야 색칠로 넘어갈 수 있는데 선 하나라도 잘못 그을까 봐 나는 스케치조차 어려웠다. 지금은 '지우개로 지우면 되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지우개로 아무리 지워도 흐릿한 연필 자국이 남아 하얀 도화지를 더럽힐까 봐 아무것도 그려내지 못했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모양도 조금씩 바뀐다. 작은 차이는 큰 결과를 가져온다. 동그라미도 세모도 네모도 그리는 사람에 따라 크기, 굵기, 모양이 다 다르다. 채색까지 하면 차이는 더욱 현저해진다.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했던 어린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였다. 내게 가장 안정감을 주는 것은 텅 빈 도화지다. 차라리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편했다. 내가 그러고 있는 사이 다른 친구들의 도화지는 그들만의 개성 있는 그림과 다채로운 색깔로 화려해지고 있었다.
나이가 30살이 넘어가도록 선택하는 것이 두렵다. 선택에 따른 결과가 더 무겁고 중대할수록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실패해도 돼. 안 죽어.' 스스로 되뇌어보지만 연필을 들었다 놨다 하는 어린 시절의 나처럼 여전히 망설이고 있을 뿐이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가 어떨지는 대부분 예측 불가능하다. 인생의 숙제는 직접 가봐야만 아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결혼, 이직, 이사, 진로 등 수많은 중대한 결정 앞에서 '혹시 이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법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내가 택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의 방법을 실행하고 결과가 좋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두렵다.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더 어리석어지는 기분이다. 두려움의 근원은 잃을 것에 대한 불안감이다. 가진 게 많아질수록 상실의 리스크도 커진다. 그래도 이제는 텅 빈 도화지를 낼 수는 없다. 선이라도 하나 그어보고 점이라도 하나 찍어봐야 한다. 그것이 내게는 꽤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일지라도. 뭐라도 휘갈겨보려고 펜을 든다. "뭐 어때. 틀리면 지우고 다시 쓰면 되지." 삶도 그래야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