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연 Nov 24. 2021

내가 너무도 사랑했던 '춤' 이야기.

춤추는 인생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춤'을 좋아했다. 아마도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아니 글 쓰는 것보다 더 많이 춤을 좋아했을 것이다. '춤'을 좋아했다는 말은,  무대에 올라 직접 춤을 추는 행위뿐만 아니라  춤추는 사람을 보는 것, 춤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음악에 어우러지는 춤을 창작하는 것 등 춤에 관한 모든 것들을 좋아했다는 뜻을 내포한다.


자연스럽게 춤 판에 뛰어들어 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스트릿댄스로 시작했던 춤은 클래식 무용을 배우는 것으로 발전해나갔다. 발레와 현대무용은 몸의 바른 정렬, 춤의 기본기를 익히는 것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음악을 더 다양한 동작과 감정으로 표현하는 것에 큰 도움을 주었다.

 

최근  방송사 엠넷의 댄스 경연 프로그램인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예상치 못한 성황리에 방송을 마쳤다. 많은 대중들이 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연예인이 아닌 댄서들에게 스팟라이트가 비쳤다. 사람들이 댄서들의 춤에 담긴 다양한 감정과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현대무용을 전공하여 무용학과를 진학했지만 20대 초반부터 시작된 투병에 학업을 끝마치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도 '4년제 대학교 중퇴'가 내 학력이다. 하지만 갑작스레 중단된 학업과 그로 인한 가슴 아픈 최종학력보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그토록 사랑했던 춤과 작별해야만 했던 순간이었다.


"더 이상 춤을 추면 안 됩니다."


내게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말이었다. 누군가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다른 일을 하면 되지 않냐고 말이다. 내게 춤은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멋을 부리기 위한, 무대 위에 서기 위한, 혹은 돈을 벌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춤은 나의 삶 자체였고, 형성된 모든 가치관이었고, 인생의 위로이자 소통의 창구이자 내가 가진 전부였기에 이런 감정을 느낄만한 대상이 없었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란 걸 충분히 이해한다.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더 이상 춤을 추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집과 병원만 오가는 생활 속에서 나는 글 쓰기와 피아노에 집중했다. 그렇게라도 메말라가는 내 영혼을 달래야 했다. 그래야 하루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절망과 싸워가면서. 그때 나는 춤에 대해 처음으로 깊은 고찰을 했다. 도대체 춤이 뭐길래 이토록 내 삶 전체를 쥐고 흔드는가 말이다.


'춤이란 뭘까?'


우선 춤에는 연속성이 있다. 춤은 포즈가 아니다. 포즈는 정적인 것이고 춤은 동적인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한 발을 내딛고 그다음 발을 내딛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움직임이 있다. 관객들은 무대가 끝나면 기억나지도 않을 그 찰나의 동작을 좀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무용수들은 끊임없이 거울 앞에서 연습하며 그렇게 해서 좀 더 다듬어지고 완벽해진 찰나의 움직임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이 된다.


춤에는 무용수의 감정이 들어가 있다. 누가 추느냐에 따라 관객은 같은 동작에서도 다른 감정을 전달받곤 한다. 그래서 때로는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많은 말들을 춤에 담을 수 있으며 음악을 시각화하여 표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춤은 정직하다. 하루에 8시간씩 춤을 연습하면서도 전혀 힘들지 않고 오히려 즐거웠던 이유는 춤의 정직성 때문이었다. 땀을 흘리고 노력한 만큼 춤으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추구하는 인생의 이상과 너무도 닮아있지 않나. 이것이 내가 춤을 사랑하는 이유였다. 춤이 뭐 별거인가. 우리의 일상 곳곳에 춤은 언제나 존재한다. 누군가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는 그 찰나의 순간, 신이나 옆 사람과 손을 맞잡고 방방 뛰는 사람들, 부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들, 떨어지는 빗방울에 흔들리는 꽃들... 일상과 자연의 모든 움직임들이 내 눈에는 다 춤으로 보인다.


춤은 사랑스럽다. 감정이든 기술이든 정직하게 표현되는 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과 위로, 열정과 영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의 인생에 희와 락만 있는 게 아니라 노와 애가 존재하듯이 춤 또한 그러하다. 춤추듯 살자, 춤추며 살자. 잘 다듬어진 댄싱은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댄서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가볍게 춤추는 인생을 살아가자. 어떤 동작이든 어떤 템포와 리듬이든 당신이 추는 것이 당신만의 춤이다.   


 

작가의 이전글 텅 빈 도화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