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새로운 불만족이 생겼다. 내게 안락함을 제공해야 할 이 집에 대한 불만족이다. 결혼 전 혼자 살았던 브랜드 27평의 신축 아파트는 단지 내 커뮤니티, 자재, 마감, 공간감 등 모든 것들이 만족스러웠는데 사실 지금은 그렇진 않다.
나름 이 지역에서는 신축 아파트에 속하면서도 날림공사의 흔적이 역력한 벽지, 저렴한 자재, 협소한커뮤니티 공간,실외기조차 설치가 힘들어 에어컨 없이여름을 지새게 한 주제에거실에 보란 듯이 튀어나와있는 에어컨 배관 등사랑하는 남편과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심리적 안정감 외에 '거주공간'으로써의 매력은 전혀 없다.
호박에 줄 긋는 심정으로 인테리어 소품들을 하나둘씩 사들였다. 수박은 못 돼도 줄 그은 호박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못 본 척 화분으로 대충 가려놓았던 거실에어컨배관을 가릴 콘솔,분위기 있는 조명으로 바꿔 단 식탁등,따뜻한 느낌을 위한 원목 소품들과 팬트리 안을 정리할 수납장도 샀다. 창고에 그냥 쌓아둔 물건들 정리도 했다.보이지 않는 곳이라고 마음대로 쌓아뒀지만눈에 보이지 않아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그것들을 정리하는 것은 내 마음 정리에도 꽤 도움이 되었다.
인테리어 소품들을 사들이면서 다른 사람들의 인테리어도 구경했다.화이트/우드로 깔끔하고 따뜻함을 추구한 인테리어,블랙/다크 우드로 단정하면서도 무거운 느낌을 낸 인테리어,낮은 천장, 엔틱 느낌의 소품들로 어수선하지만다채로우면서도 조화롭게 꾸민 인테리어 등다양한 모습의 집들을 구경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 취향은 아니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예쁘고, 저것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그러므로 틀린 인테리어는 없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남편의 후배분이 집에 놀러 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그분이 나와는 꽤나 다른 성향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불편했다기보다는, 낯설었다.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와 방향은 크게 특별할 것 없이 비슷비슷하다.안정감, 발전, 성장, 사랑. 뭐 이런 것들.하지만 간혹 색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장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모험을 즐기는 것. 또 다른 가치도 있다. 안락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서도 그것을 포기하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삶이 그것이다.
어떤 가치가 더 우월하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그냥 '가장 우선시하는 것' 이 다를 뿐이다.마치 인테리어 같이 자신의 삶을 자신만의 색깔과 디자인과 감각으로 꾸민다.디퓨져 하나를 골라도 각자의 발향이 다르다. 때문에수많은 가전 가구의 배치, 인테리어 소품, 색상, 디자인 등이 모여그 사람만의 독특한 인테리어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