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Would you be my girl friend? (오늘부터 1 일 할래? 의 미국식 표현)
4. 서로 합의 하에 동거 시작 (응답자의 78%가 혼전동거에 긍정적)
5. 프러포즈 (약혼) 전 여자 측 부모님께 결혼 승낙을 구함 (미국 응답자의 67%가 약혼 전 부모님의 축복을 필수 조건으로 생각. 이태리나 스페인에서는 10% 미만으로 약혼 결정에 부모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에 비해 미약)
6. 프러포즈 (“Will you marry me?”에 “Yes!” 면 공식적으로 약혼관계가 성립. 이때 프러포즈 반지는 약혼반지의 역할)
7. 결혼식
2022 년 봄. 우리 딸은 상기한 단계 중 4번 위치에 있었고 우리는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결혼을 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한국에 있는 우리 부부에게 인사를 드리러 오겠다는 연락이 온 겁니다. 그래서 딸아이를 통해 미래의 사위(브라이언)에게 프러포즈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오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사실 브라이언은 미국의 전통대로 한국에 와서 우리의 승낙을 받은 후 프러포즈를 할 계획이었는데 우리의 성화에 그 계획을 앞 당겼습니다. 그러니까 사위될 아이의 등을 떠밀어 프러포즈를 받게 한 셈입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브라이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프러포즈를 받았으니 공식적으로 약혼관계가 되었고 우리 부부는 그때서야 이제 드디어 딸이 시집을 가는구나 하며 맘을 놓았습니다.
서양식 프러포즈도 이제 한국 결혼문화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38가지 프러포즈 아이디어, 창의적인 프러포즈 방법, 예스를 얻어내는 프러포즈 법, 재미있는 낭만적인 프러포즈 법 등 프러포즈 방법에 대한 조언들이 넘쳐나며 관련 컨설팅 업체들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런데 정작 프러포즈의 자세에 담긴 의미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프러포즈의 자세를 보면 남자가 한쪽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 반지를 들고 “Will you marry me?”를 외치죠. 한쪽 무릎을 꿇는다는 의미는 여성 즉 미래의 아내에 대한 헌신, 존경, 복종 그리고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하는 자세입니다. 그 프러포즈 자세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면 영국 낭만주의 시인인 존 키츠가 페니 브라운에게 보낸 편지가 생각납니다. (편지는 1819년 10월 13일 자로 되어있으며 페니와 약혼 전 혹은 직후에 보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난 사람들이 종교로 인해 순교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었습니다. 온몸이
떨렸었죠. 지금은 떨리지 않아요. 나도 나의 종교로 순교자가 될 수 있어요.
나의 종교는 사랑입니다. 난 사랑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어요. 당신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어요. 나의 신조는 사랑이고 당신이 유일한 교리입니다.
사랑하는 여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 자세를 취하는 그 순간 남자의 마음만은 다 이렇지 않을까요? 그 마음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별도의 문제이지만 말입니다.
2022 년 봄 브라이언과 첫 대면을 했습니다. 브라이언과 우리 딸의 미국 절친(오나)과 같이 왔으며 우리 집에 거의 한 달간 머물면서 경복궁, 설악산, 단양, 안동, 경주 등지를 여행하였습니다. 브라이언과 오나를 만나보니 한국 문화의 위력이 새삼 실감 났습니다. 오나는 K-pop의 광팬으로 우리말도 수준급이고 한국문화도 꽤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브라이언은 K-drama를 좋아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그때 『꽃 보다 남자』가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브라이언은 그날 방영된 에피소드의 내용을 우리 부부에게 설명해 줄 정도로 줄거리를 꿰차고 있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 아이들이 미국으로 다시 가게 되었을 때 브라이언에게 결혼 철학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마디로 “Happy wife, happy home.”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한 달간 같이 지내보니 둘이 지난 3 년 동안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연인이나 부부가 싸우는 이유는 주로 의견 충돌 때문입니다. 아이 교육을 놓고 남자는 국내 교육을 여자는 해외 유학을 원하면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딸과 브라이언의 케이스는 모든 의사 결정을 여자가 다 내립니다. 딸이 리드하며 (3 년의 나이 차이 때문인지) 남자가 무조건 따르는 구조입니다. 의견 충돌이 생길 수 없는 구조이니 싸울래야 싸울 수도 없습니다. 이제는 대망의 결혼식만 남았습니다. 결혼식은 2023 년 3월 31일 미국 달라스 소재의 웨딩홀에서 하기로 정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미국 결혼식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존 키츠가 그의 약혼녀 페니 브라운을 생각하며 쓴 시(「밝은 별이여」)를 읽으며 마치겠습니다.
밝은 별이여, 내가 그대 같이 한결같을 수 있다면
밤하늘에 높은 곳에서 떠서
마치 자연의 환자처럼 잠 못 이루는 은둔자처럼
영원히 눈을 뜨고 우리를 지켜보며
성직자가 세정식 하듯이 인간들이 사는 해변을 정화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혹은 산들이나 황무지에 새로이 쌓여 부드럽게 덮인
마스크 같은 눈을 응시하는 그런 별 말고
그건 아니고, 그럼에도 한결같고 변함없기를
부풀어 오르는 그대의 가슴에 머리를 얹고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느낌 속에 영원히 살리라
그 달콤한 불안에 영원히 깨어
그녀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끊임없이 들으리라
그렇게 영원히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기절해 죽으리라
Bright star, would I were stedfast as thou art—
Not in lone splendour hung aloft the night
And watching, with eternal lids apart,
Like nature's patient, sleepless Eremite,
The moving waters at their priestlike task
Of pure ablution round earth's human shores,
Or gazing on the new soft-fallen mask
Of snow upon the mountains and the moors—
No—yet still stedfast, still unchangeable,
Pillow'd upon my fair love's ripening breast,
To feel for ever its soft fall and swell,
Awake for ever in a sweet unrest,
Still, still to hear her tender-taken breath,
And so live ever—or else swoon to death.
존 키츠는 1820년 10월 이태리로 향하는 배 위에서 이 시를 완성합니다. 일 년 전 1819년 가을 비밀리에 약혼한 페니 브라운을 염두에 둔 시였습니다. 둘은 1818년 11월 처음 만나 곧 사랑에 빠집니다. 키츠는 23세 페니는 18세였습니다. 키츠의 형이 결핵으로 사망한 지 일 년 후였고 당시 외과 수련의였던 시인도 죽은 형과의 접촉으로 자신의 건강상태도 심상치 않다는 점을 느끼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자신의 건강문제로 페니를 거부하려 애를 썼지만 큐피드가 쏜 화살의 힘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그가 열렬히 사랑한 페니와 약혼한 일 년은 시인으로서 키츠에게 최고의 해였습니다. 사랑의 힘으로 시적 영감이 더욱 풍부해진 키츠는 그의 걸작(" Ode on a Grecian Urn, " "Ode to a Nightingale")을 이때 탄생시킵니다. 그는 이 시기 약혼녀인 페니에게 수백 장에 달하는 사랑의 메모와 총 39통의 편지를 보냅니다. 그러나 그의 병세는 곧 악화되어 피를 토하기 시작했고 페니는 곁에서 그를 정성으로 간호합니다. 시인은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페니 브라운을 떠나 친구와 함께 이태리 여행을 결심합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페니는 꼭 건강을 회복해서 다시 보자 했지만 키츠는 이미 회복 불능이라는 사실을 인지했습니다. 존 키츠는 상기한 시를 완성한 이듬해인 1821년 2 월에 로마에서 사망합니다.
존 키츠와 페니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 밝은 별
「밝은 별이여」는 생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쓴 시입니다. 기침으로 피를 토하며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는 시인의 창백한 얼굴을 생각하면 키츠가 왜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되기를 소망하는지 쉽게 이해가 갈 겁니다. 그러나 시인에게 별은 자연의 창백한 환자이며 뜬 눈으로 밤을 새우는 수행자이자 인간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관찰자에 불과합니다. 키츠가 원하는 형태의 영원이 아닙니다. 시인은 사랑하는 연인과 한 몸이 되어 서로의 움직임을 탐닉하는 상태의 영원을 소망합니다. 연인의 몸을 베개 삼아 누워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달콤한 불안("a sweet unrest")이 끝없이 지속되기를 꿈꿉니다. 상하로 움직이는 달콤한 불안은 육체적 결합으로 인한 신체의 “소요”(성적인 행위?)가 연상됩니다. 영원하기를 바라지만 그 달콤한 절정은 순간입니다.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시인의 선택은 기절 후의 죽음입니다. 기절은 순간적인 죽음으로 육체적 오르가슴의 자연스러운 마침표입니다. 그는 그 요동치는 순간 이후 잠시 죽은 후 다시 깨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영원히.
키츠와 페니가 서로 사랑한 기간은 2 년 정도입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랑의 밀도로 따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40 년 50 년을 함께 살아도 서로 진심을 다해 사랑한 순간은 2 년이 채 안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키츠같이 곧 죽게 되지는 않겠지만 결국은 언젠가 죽게 됩니다. 우리 사실상 모두 시한부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가끔 청혼 시 취했던 프러포즈 자세에 담긴 의미--사랑, 존경, 헌신--를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키츠가 페니에게 준 약혼반지. 페니는 키츠가 죽고 12 년이 지나 결혼을 했다. 그녀는 1865년 죽을 때까지 이 반지를 꼈으며 사망 후 그녀의 딸에게 물려주었다. 지금은 영국 햄스테드에 있는 존 키츠의 생가에 마련된 페니 룸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