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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연극 (트럼프와 윤석열)

by 유꼭또

“윤석열 후보는 우리가 해준 대로 연기만 해달라.” (김종인 or 명태균?)


우리는 항상 진실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들을 내편으로

만들기 위해 진실로 가장된 우리의 근거 없는 주장 (hot-take)으로 설득

합니다. 우리는 기분이 더 좋아지기 위해, 더 좋게 보이기 위해, 그리고

우리와는 거리가 먼 신처럼 보이기 위해 진실을 왜곡합니다.

(글렌 게허, Psychology Today)


플라톤은 연극을 싫어했습니다. 연극은 사람들을 미혹해서 진실과 도덕 그리고 이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연극을 좋아하는 정치가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여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상대방을 맹목적으로 비난하게 만드는 데 연극 보다 더 좋은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건 영화입니다.” “트럼프는 작가이고 제작자이고 감독입니다.

팝콘을 준비하세요.” (2024 트럼프의 대선 중 텔레그램에 올라온 댓글)


게다가 트럼프는 주연 배우이자 재정 후원자입니다. 그는 훌륭한 시나리오를 썼고 각본대로 연기를 잘했으며 흥행 성공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썼습니다. 결코 실패할 수 없는 공식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그가 일인 사역으로 만든 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제목의 드라마입니다.

다트머스 대학교의 교수이자 저널리스트인 제프 살렛(Jeff Sharlet)은 2016년 오하이오 영스타운의 한 비행기 격납고 앞의 비행기 활주로 앞에서 벌어졌던 그의 유세 장면을 다음과 같이 분석합니다.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 트럼프의 비행기가 도착하는 걸 기다리면서 이야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기억하세요. 그는 그 당시 대통령이 아닌 그 자신의 모습으로 오는

거였죠. 사람들은 모두 트럼프가 소유한 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타고 있는 비행기는 글자 그대로 금으로 쳐 발라놓았죠. 그때 저는 사람들이

번영신학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트럼프 역시 번영

신학 목사처럼 연설합니다. “나의 비행기를 보아라. 나의 부를 보아라. 나의 이

아름다운 옷을 보아라. 나는 분명 너희들보다 더 축복을 받았다. 나의 뒤를 따라오며 내가 간 길에 동참하면 너희들도 그 축복을 함께 누릴 수 있다.”

(『미국은 크리스천 파시스트 국가가 될 것인가?』 중에서)


제프교수는 2016년 MAGA의 주제는 번영신학 (트럼프를 찍으면 부자가 된다), 그의 유세장은 예수의 수난극을 위한 무대, 그리고 트럼프는 번영신학 목사를 연기했다고 분석합니다. 트럼프는 비행기 접근이 곤란한 유세장은 자신의 자가용 헬리콥터를 타고 나타납니다. 한 트럼프의 지지자는 이를 본 후 소설미디어에 다음과 같은 댓글을 남깁니다.


“이것이 내가 20 주년 고등학교 동창회에 도착하려는 방법이다. 비록 그

빌어먹을 헬리콥터를 돌려주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2016년 MAGA는 하나님 이야기를 하며 사람들에게 물질적 욕망을 부추기는 데 성공한 셈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는데 말입니다.

2024년 MAGA의 주제는 복음주의자들의 소망-- 위대한 화이트 크리스천 국가의 건설--이며 이 소명을 실현할 자 바로 트럼프입니다. 이젠 그는 번영신학 목사에서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 신분이 상승합니다. 이집트의 노예로 신음하고 로마의 노예로 핍박받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기 위해 모세나 예수님을 선택하셨던 하나님께서 2024년에는 트럼프를 선택하셨다는 콘셉트입니다. 그래서 만든 MAGA의 부제,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 트럼프는 나의 대통령” ('Jesus is my saviour, Trump is my president.)입니다. 예수와 트럼프, 구원자와 대통령은 이제 동격이며 하나님께서 트럼프에게 내린 명령은 “사탄(이민자, 성소수자)으로 신음하는 미국을 구하고 하늘의 영광을 재현하라”입니다.

이제 트럼프의 연극은 크리스천 콘셉트의 애국 드라마입니다. 타고 다니던 737 보잉을 일억 달러짜리 최신 점보 757 보잉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금색 위주의 외관을 미국 국기를 연상시키는 푸른색과 붉은색 계열의 디자인으로 변경했습니다. 물질적 축복에서 애국심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말입니다. 유세 무대로 비행기 격납고 앞의 비행기 활주로를 선호하는 트럼프. 하나님 드라마 세팅에 하늘보다 어울리는 공간은 없습니다. 저 멀리 들리는 비행기 엔진소리는 무대 위에서 올라가는 막입니다. “구세주”를 애타게 기다리던 관객들은 일제히 하늘을 보고 술렁거립니다. 잠시 후 푸른색과 붉은색 바탕에 대문자의 트럼프 로고가 선명한 757 점보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합니다. 비행기 문이 열리고 주인공이 나타나면서 손을 흔들자 활주로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밴드에서 음악이 연주되고 방송장비와 카메라를 든 기자단석에서 카메라 후레시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지지자들이 트럼프를 찍으려 핸드폰을 든 손을 일제히 하늘로 뻗는 모습은 두 손을 들고 할렐루야를 외치는 신도를 연상케 합니다. 글자 그대로 하늘에서 내려온 구세주를 환영하는 장면이 자연스레 연출됩니다. “예수님은 자신보다 더 유명한 분이지만” 하면서 은근히 자신을 예수와 비교하며 성령 부흥회 같은 선거 유세를 시작합니다.


트럼프는 성경 10 계명을 사랑하여 도덕성 회복을 강조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하나님이 요구하는 삶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미 7 계명 (간음) 9 계명 (거짓 증언)을 어겨 법정에 섰으며 이 두 건에 대해 이미 유죄판결까지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강간과 문서위조 혐의에 대한 유죄는 종교적 박해이며 사탄 마귀들의 간교한 음해의 결과라고 외칩니다. 그는 두 번의 암살 위기를 넘긴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이자 축복임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께서 날 살리신 것은 나로 하여금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들라는 목적 때문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재건에 걸림돌이 되는 외부의 적 그리고 사탄들과 싸워야 할 때임을 상기시킵니다. 외부의 적은 이민자이며 사탄은 성소수자(LGBTQ)입니다. 이때 사용하는 그의 언어는 시적이고 극적인 연극 대사를 방불케 합니다. 2016년에는 “뱀”이란 제목의 시를 슬픈 목소리로 낭송합니다. 이 시는 한 여성이 반쯤 얼어 다 죽어가는 뱀을 살려주었는데 그 뱀이 생명의 은인인 여성을 물어 죽였다는 내용입니다. 배은망덕이 주제이지만 트럼프는 여성을 미국으로 뱀을 이민자로 해석하여 이 시를 이민자 악마화에 이용합니다. 2024년이 되자 이민자들은 “고양이도 먹고 개도 먹으며” 미국의 마을도 습격하는 야만족도 됩니다.

이민자들이 갈수록 위험해지고 있다. 미국에 들어와서 특히 이 중서부지역 전역에

걸쳐서 도시와 마을들을 공격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만 이제는

끝날 것이다.


3 개월 간에 걸쳐 계속된 연극은 끝났고 이제는 현실의 시간입니다. 트럼프 임기가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경고음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트럼프를 선택한 보수파들과 복음주의자들은 개의치 않습니다. 그들은 조국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했으며 그들의 목표--크리스천 전통에 입각한 국가의 건설--가 최우선입니다.


우리는 영국의 보수 정치가들이 영국을 유럽연합에서 탈퇴시킨 브렉시트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전에도 브런치에서 글을 쓴 바 있지만 영국의 정치인들은 테니슨의 시 “율리시즈”를 읊으며 이타카의 왕이 그의 부하들을 다시 바다로 이끌었듯이 영국인들을 가보지 않은 길로 인도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 후 4 년. 영국의 모든 경제적 지표는 브랙시트가 영국인들에게 재앙을 초래했음을 가리킵니다. 정치가의 선동이 영국인들에게 비극을 선물한 케이스입니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연극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검찰 출신의 초짜 정치인 윤석열. “연기만 하라”는 연출가의 지시대로 하늘에 어퍼컷도 날리고 앞치마를 두르고 김치찌개도 끓이며 정치보복도 낙하산 인사도 없다는 등 온갖 달콤한 대사들만 골라 여기저기 읊고 다니다 당선된 윤석열. 보수의 개념도 모르는 채 보수당 보스가 된 윤통은 보수의 핵심가치인 대한민국의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고 애국심 일도 없이 무조건 일본편만 들다 입만 벌리면 소중하다 강조했던 국민의 자유마저 빼앗으려 계엄까지 선포합니다. 2024년 12 월 3일 저녁 10시 30분. 번개처럼 여의도로 달려간 국민들이 저항한 건 계엄에 대한 부당성뿐만 아니라 지난 2년 반 동안의 국민들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였던 윤통의 불공정과 몰상식한 국정운영에 대한 분노의 항거이고 윤석열 김건희 부부사기단에 속은 울분의 폭발이었습니다. 탄핵가결에 환호 지르며 춤추며 얼싸안고 열광하며 눈물까지 흐르는 국민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계속 돌려봅니다. 우리가 살면서 언제 한 명의 정치인 때문에 이토록 온 국민이 기뻐한 적이 있는가? 새삼 놀라게 됩니다. 2022년 시작된 윤석열 주연의 사기극은 다행히도 축제 분위기의 해피엔딩입니다. 그러나 4 년 혹은 5 년마다 전국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정치 연극은 계속됩니다. 정치 연극에 속으면 국가전체가 순식간에 나락으로 빠지는 비극을 경험하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이 비극의 주인공은 온 국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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