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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Jan 24. 2024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재판  (4)

타르트  vs 날리면

    이상한 나라에서 엘리스의 마지막 모험은 법정체험 (11 장: 누가 여왕님의 타르트를 훔쳤나?)이며 그 시작을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왕과 여왕은 왕좌에 앉았고 그 주변에는 많은 군중들—온갖 새들과

     짐승들 그리고 카드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네이브(잭) 카드가 쇠사슬에

    묶인   채 왕과 여왕 앞에 서있었고  죄인의 양 쪽에는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왕  가까이에  토끼가 한 손에는 트럼펫을 또 한 손에는 둘둘 말린 양피지를 들고  있었습니다.

      ...       


     엘리스는 법정에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책에서 읽어본 적은 있었습니다. 그녀는 법정에 있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이름을 알고 있어 기뻤습니다. 저분은   커다란 가발을 쓴 걸 보니 판사고. 판사는 왕이었습니다. 가발 위에 왕관을             썼기 때문입니다. 가발을 쓴 그는 전혀 편안해 보이지 않았고 전혀 어울리지도   않았습니다. (162)               



재판을 다룬 책을 읽은 적이 있는 엘리스에게 이 재판의 참관은 일종의 현장학습입니다. 그러나 이 재판도 예외 없이 이상합니다. 여왕이 만든 타르트(파이형태의 과자)를 훔친 범인으로  (아무 증거 없이) 네이브 카드를 잡아가둔 후 법정에 세우고 또 재판은 시작도 안 되었는데 왕은 이미 네이브를 범인으로 단정한 듯 평결부터 주문하는 등 모든 게 이상합니다. 왕은 불려 나온 증인들에게 증거를 대라고 호통을 치면서 그러지 않을 경우 목을 치겠다고 위협합니다.     

  

   재판 도중 엘리스의 몸이 점점 커집니다. 너무 커져 옆에 앉아 있던 겨울잠쥐의 작은 몸을 압박해 숨도 쉬기 힘들게 만듭니다. 겨울 잠쥐가 불평하자 엘리스가


   

   “내 몸이 자라는 걸 내가 어찌할 수 없잖아.”라고 항의합니다. 그러자

     겨울잠쥐가 “ 넌 여기에서 자랄 권리가 없어”라고 맞받아칩니다. (169)



여러 명의 증인들이 호명되어 차례로 나오지만 네이브가 타르트를 훔쳤다는 증언과 증거는 전무합니다. 왕은 또 다른 증인을 부를 것을 명령합니다. 이에 토끼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증인 명단을 살피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호명합니다. “엘리스!”

  


    재판현장 학습 중인 엘리스에게 주어진 증인체험(12장: 엘리스의 증거)의 순간입니다. 법정에 있는 동안 몸이 얼마나 커졌는지 까먹고 있었던 엘리스는 “여기요” 하면서 자리에서 점프를 하고 나가다가 그녀의 치마 끝으로 배심원들의 머리 부분을 건드려 이들을 바닥에 넘어지게 만듭니다. 왕은 배심원들이 제자리에 착석할 때까지 재판을 멈춘다고 말하며 엘리스를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그리곤 엘리스에게 물어봅니다. “이 건에 대해 무얼 아는가?” “아무것도 모릅니다.” 엘리스가 대답합니다. “전혀 모른다고?” 왕이 재차 물어봅니다. “전혀요.” 엘리스가 대답합니다. 이 순간 왕은 규칙 42조를 들먹이며 엘리스를 향해 키가 일 마일 이상인 사람은 법정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엘리스는 자신의 키는  일 마일이 되지 않는다고 항의하며 규칙을 급조하는 왕을 비난합니다. 못 나가겠다고 대드는 엘리스를 보고 왕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배심원들에게 평결을 내리라고 다그칩니다. 그때 토끼가 죄인이 감옥에 있을 때 쓴 것으로 추정되는 시를 들고 옵니다. 그러나 네이브는 그 시는 자신의 필체도 아니고 자신은 그런 시를 쓴 적도 없으며 맨 아래 자신의 서명이 없는 게 그 증거라고 항의합니다.  그러자 왕이 한마디 합니다.  


     네가 사인을 안 했다면 그건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야. 넌 뭔가 혼선을 주려고

     그랬겠지. 그렇지 않았다면 넌 정직한 사람처럼 사인을 했겠지. 왕이 이 말을 하자

     법정 내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날 왕이 한 말 중 최고로 똑똑한

     말이었습니다. (182)



왕은 그 글이 유력한 증거라고 시사하자 여왕은 네이브를 유죄라고 단정 짓습니다. 엘리스는 내용도 안 읽어보고 유무죄를 판단할 수 없다고 하자 왕이 “읽어보라”는 주문을 합니다.  토끼는 안경을 끼고 읽기 시작합니다.  아무 의미 없는 시인데 그중 이런 연이 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하나를 주었고 그들은 그에게 둘을 주었어

       당신은 우리에게 셋 아니 그 이상을 주었지

      그들은 모두 그를 떠나 당신에게 돌아갔지

        그들은 전에 내 소유였지만 말이야  (183)



왕은 이 시에서 언급한 “하나, 둘, 셋”은 타르트를 의미한다고 지적하며 이는 네이브가 범인이라는 가장 중요한 증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엘리스는 이 시는 증거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장난(none sense poem)에 불과하다며 반박합니다. 왕은 배심원들에게 평결을 내리라고 주문하고 여왕은 형량을 먼저 정하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엘리스는 평결을 먼저 내려야 형량을 정할 수 있다고 항의합니다. 여왕이 닥치라고 소리치지만 엘리스는 그럴 수 없다고 맞섭니다. 이때 여왕이 엘리스를 “참수하라고” 외치자 이미 몸이 커질 대로 커진 엘리스에게 법정에 앉아있던 카드들이 날아들기 시작합니다. 엘리스는 이를 두 손으로 막다가 낮잠에서 깨어납니다. 그녀에 얼굴에는 나무에 매달려있던  앙상하게 마른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엘리스가 우연히 가게 된 이상한 나라는 어린 주인공이 미리 경험해 본 사회생활입니다. 대부분 을로 태어나 눈물로 시작해야 하는 사회생활. 가는 곳마다 끊임없이 “넌 누구냐?”라는 질문에 대답해야(자신을 증명해 보여야)하며 의사소통 문제로 고통을 받으며 또 사회초년생이라고 무시(“너는 아무것도 몰라 그건 팩트야”)도 당합니다. 이상한 나라에 온 후 늘 상 작은 몸을 유지하고 있었던 엘리스. 3인치까지 작아진 엘리스의 키는 그녀가 얼마나  소심해졌는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엘리스는 자신의 몸을 애벌레가 준 버섯을 먹고 몸집을 키운 후 (즉 약의 기운을 빌려 자신감을 어느 정도 찾은 후) 여왕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들어가지만 그녀의 실망은 계속됩니다. 그러다가 실망의 클라이맥스를 경험하는 곳. 이상한 나라의 법정입니다. 그녀가 책에서 이론적으로만 배운 사법정의. 그러나 그 실제는 어떠한 공정 질서 상식도 존재하지 않고 왕과 왕비의 맘대로 결정합니다. 온 나라가 이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머리(지배자)가 이상하니 몸(나라)도 이상하게 움직이는 격입니다. 체셔 고양이 말대로 미친 사람만이 살 수 있는 이상한 나라가 돼버린 겁니다. 엘리스의 신체가 재판도중 커지는 현상은 이상한 문제 해결을 위한 루이스 캐럴의 처방입니다. 지배자의 독선, 독재, 불공정에 대항해 이길 수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몸이 커지는 길 (정신적 성장) 뿐이라는 말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타르트 재판”은  우리나라의 “바이든 vs 날리면” 재판을 떠올리게 합니다. 재판의 원인이 된 “입으로 들어가는 파이”와 “입에서 나온 말”은 어찌 보면 둘 다 하찮은 사안들입니다.  그러나 한나라의 지존 격인 여왕과 대통령과 연관이 있으니 (권력 근처에 계신 분들에 의해) 국격 혹은 국가의 이익에 관계된 중차대한 일로 커집니다. 결국 이 두 사건은 법정까지 가게 되니 어린이 판타지/ 어른 코미디입니다. 또한 유무죄를 가리는 과정도 똑같습니다.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재판을 한다는 말입니다. 타르트 범인은 재판 전부터 이미 네이브로 정해놓았으니 아무 할 말 없는 증인들을 부르고 아무 의미 없는 시의 문구를 증거로 채택하는 재판 과정은 그저 형식일 뿐입니다. 사실상 왕이 내린 결론을 받드는 재판입니다. 왕이 말 같은 말 한마디 했다고 법정에서 박수를 받는 분위기에서 다른 결론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의 “바 vs 날”재판의 결론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재판부는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판정불가”라고 결론을 내리곤 “날리면”을 유죄로 공표합니다. 재판부 스스로 재판 전에 이미 결론을 내렸다고 자백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날리면”으로 방송한 방송국이 유죄라는 판결이 신문에 보도되자 한 독자분이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았습니다. “판정불가인데 왜 유죄지? 우린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네.” 150년 전 여왕의 나라 빅토리아 사회를 풍자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잘 보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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