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시인이자 극작가인 예이츠가 자신의 첫사랑 모드 곤을 향한 25 년간에 걸친 사랑과 끈질긴 구애 그리고 반복되는 실망과 좌절을 기록한 시들을 읽어봅니다.
어느 날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나 젊은 시인의 삶을 송두리 채 흔들어 놓은 운명의 여인 모드 곤. 예이츠가 그녀에게 느낀 사랑은 한마디로 활을 든 아기 천사 큐피드입니다. 아기 천사 큐피드의 피부같이 부드럽고 달콤한 사랑의 순간은 쏜 살처럼 지나가고 큐피드에게 맞은 화살의 고통만 지속되었기 때문입니다. 1889년 1 월 30 일. 큐피드가 한 번 맞으면 결코 스스로 뽑을 수 없는 황금화살을 준비하고 예이츠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예이츠의 첫사랑이 시작된 날입니다. 당시 아일랜드 문단에 막 데뷔한 젊은 시인 예이츠의 자택으로 23세의 젊은 여성이 시인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방문합니다. 훗날 아이리시 독립운동가, 여성주의자이자 배우로 활동하게 되는 “사과나무 꽃같이 눈부신 미모”에 넘치는 에너지 그리고 직선적인 성격의 모드 곤이 면도날 같은 감수성에 다소 내성적인 젊은 시인과 처음 만나는 순간입니다. 모드 곤은 1886년 돌아가신 부모로부터 불과 21세의 나이에 1만 3천 파운드(지금 가치로 약 200만 파운드)의 재산과 어머니가 소유한 부동산을 물려받았으니 그녀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엄청난 자산가였습니다. 예이츠는 그녀의 첫인상을 훗날 자신의 자서전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나는 살아있는 여인 중 그런 아름다움을 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녀는
유명한 그림, 시 혹은 전설적인 과거에나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모드 곤은 한 살 연상의 예이츠와의 첫 만남에서 배우의 꿈을 비치자 예이츠는 아일랜드 국립 극단 설립 필요성을 언급하며 흥분합니다. 만나자마자 모드 곤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 예이츠는 정치적 스승인 존 오리어리에게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제가 얼마나 곤 양을 존경하는지 말했던가요? 그녀는 그녀가 추구하는 정치적
신념으로 노선을 갈아탈 많은 신도들을 거느릴 겁니다. 그녀가 지구가 평평하거나
혹은 달이 공중에 떠 있는 벙거지 모자 같다고 말한다고 해도 난 자랑스럽게
그녀의 편이 될 겁니다.
아이리시 독립운동가 존 오리어리를 만난 후 민족주의적인 시를 쓰기 시작한 예이츠. 모드 곤을 만난 이후 예이츠는 첫사랑에게 바치는 사랑의 시를 쓰며 자신의 뮤즈 모드 곤과 함께하는 평생을 꿈꾸기 시작합니다.
1891년 어느 날. 예이츠 앞으로 모드 곤이 쓴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됩니다. 그녀는 편지에서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꿈속에서 자신과 예이츠는 남매사이로 아라비아 사막 어느 곳에선가 살고 있었는데 함께 노예로 팔려가 그 끝도 없는 사막을 배회하고 있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편지를 읽자마자 런던에 살고 있던 예이츠는 즉시 모드 곤이 머물고 있던 더블린의 나소 호텔로 달려갑니다. 예이츠는 그녀의 손을 잡고 다소 격정적인 어조로 청혼을 합니다. 모드 곤은 예이츠가 잡은 자신의 손을 슬그머니 빼면서 당신을 좋아하지만 결혼은 할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결혼은 안 할 생각이라고 말하면서 서로 좋은 친구로 지내자고 제안합니다. 다음날 둘은 모드 곤의 유모가 아직도 살고 있는 베일리의 등대 근처 작은 식당에서 식사를 합니다. 예이츠와 모드 곤이 데이트를 하는 모습을 본 늙은 유모가 모드 곤에게 약혼을 했냐고 물어보자 시인은 마음 깊이 상처를 받습니다. 2년 전 큐피드에게 맞은 황금화살. 사랑의 달콤함은 사라지고 화살에 찔린 부위에 피가 고이기 시작합니다.
첫 프러포즈에 거절을 당한 후 예이츠가 쓴 시들을 읽어 봅니다. 먼저 「그대가 늙었을 때」(“When you are old”) (1891)입니다.
그대가 늙어 머리는 백발이 되고 졸음이 눈에 달려
화롯가 옆에서 끄떡끄떡 졸게 되면 이 책을 꺼내
천천히 읽으면서 한때 가졌던 당신의 두 눈의
부드러운 모습과 그 안에 담긴 깊은 그림자를 떠올려보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우아한 순간들을 사랑했고
진실 혹은 거짓으로 당신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던가요.
그러나 한 사람이 당신의 순례자 같은 영혼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변해가는 얼굴의 슬픔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점차 뜨거워지는 화로가 옆에 몸을 구부린 채
중얼거릴 거예요, 약간은 슬프게 어떻게 사랑이 도망갔는지
그리고 저 편의 산 위를 거닐다가
그 얼굴을 별무리 틈에 감추었는지를
When you are old and grey and full of sleep,
And nodding by the fire, take down this book,
And slowly read, and dream of the soft look
Your eyes had once, and of their shadows deep;
How many loved your moments of glad grace,
And loved your beauty with love false or true,
But one man loved the pilgrim soul in you,
And loved the sorrows of your changing face;
And bending down beside the glowing bars,
Murmur, a little sadly, how Love fled
And paced upon the mountains o'erhead
And hid his face amid a crowd of stars.
시는 자신의 청혼을 거절한 모드 곤이 세월이 지나 할머니가 된 상황을 가정합니다. 머리는 파뿌리처럼 하얗게 변하고 눈꺼풀이 무거워진 노파로 변해 난롯가 옆에서 머리를 끄덕거리는 날이 오면 시인은 자신이 젊은 시절에 바친 책-모드 곤의 젊은 날의 미와 영광을 노래한 시-을 꺼내 읽어 보라고 권유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좋은 혹은 나쁜 의도로 미의 여신 모드 곤을 사랑했지만 오직 시인만이 “길 위의 영혼,” “갈구하는 영혼”(the pilgrim soul in you)을 사랑했고 “세월이 지남에 따라 변하게 될 얼굴의 슬픔”조차도 사랑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니 나를 거절한 당신은 먼 훗날 사랑이 산으로 도망가 별 속에 숨었다고 투덜대며 후회하는 날이 올 거라는 아쉬움 반 협박 반의 예언을 합니다. 자신의 청혼을 거절한 모드 곤의 맘을 돌리기 위한 최후의 통첩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먼 훗날 나이 들어 “약간은 슬프게 사랑이 도망갔다”라고 중얼거리는 주인공은 모드 곤이 아닌 예이츠가 됩니다.
청혼에 실패했지만 예이츠는 모드 곤과의 만남을 이어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드 곤은 파리에 급하게 볼 일이 생겼다고 말하며 다시 예이츠 곁을 떠납니다. 자신이 속한 정치적 비밀 모임의 소환이라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다른 이유에서였습니다. 모드 곤은 자신보다 16살 연상의 기혼남이자 극우파 저널리스트인 루시엔 밀레보예의 정부였으며 그와의 관계에서 태어난 18개월짜리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뇌수막염에 걸려 아프다는 연락을 받았고 죄책감과 두려움에 모든 일을 제치고 파리로 갔던 겁니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가 도착한 후 며칠 있다가 사망을 하고 맙니다. 예이츠에게 결코 말할 수 없었던 사실이며 그녀가 예이츠의 청혼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였습니다. 어쨌든 모드 곤은 여전히 예이츠가 맘에 둔 연인이었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첫사랑이었습니다.